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4. 육도중생과 더불어 살아가라

기자명 법장 스님

천도의식은 관계 맺은 모든 인연 기리는 것

모든 남녀는 조상이면서 부모
그들에 의지 않는 사람 없어
천도재는 인드라망 관계 속
생명 향한 존경과 감사의식

올해는 윤달이 있는 해여서 전국 여러 사찰에서 수륙재와 천도재를 올리며 돌아가신 영가와 여러 고혼들을 위로해주고 있다. 많은 불자님들도 자신의 가족과 자손들의 평안함과 행복을 위해 기도에 동참하고 계신다.

근데 일각에서는 천도의식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기복적이고 불교의 근본 가르침인 무상, 고, 무아라는 삼법인에 어긋난다고 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천도의식을 치러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우선 불교에서는 고정불변의 실체인 ‘자아(아트만)’의 존재를 부정한다. ‘나’라고 지칭할 수 있는 자아를 인정하는 순간 부처님께서 당시 인도의 신분제를 극복하고 모든 것은 연기법에 의해 변화한다고 하신 가르침과 그것을 따르는 승가를 부정하는 것이 되기에 불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사상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원리원칙에만 따르게 되면 불교가 종교로서 해야 하는 역할이 무의미해지게 된다. 이에 ‘범망경’ 제20경계인 ‘불구존망계(不救存亡戒)’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구하지 않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하여 살아 있는 후손들과 먼저 돌아가신 조상님들을 모두 제도하라는 계율을 말하고 있다. 특히 이 계에서는 “모든 남자는 나의 아버지이고 모든 여인은 나의 어머니이다. 나는 태어날 때마다 그들에 의지하여 태어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하여 앞의 논쟁에 대한 불교적 대답을 해주고 있다. 즉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의해 나고 자라는 것이 아닌 부모님, 나아가 부모님의 부모님들에 의해 지금에 이르러 태어나게 된 것이며, 우리의 후손들도 이와 같은 삶을 받고 태어나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계에서는 “육도의 중생은 모두 나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기에 죽이고 먹는 것은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이는 것이다. 또한 나의 옛 몸을 죽이는 것이니 모든 땅(地)과 물(水)은 나의 이전 생에서의 몸이고, 모든 불(火)과 바람(風)은 나의 본래의 몸이다”라고 하여 우리 모두는 윤회라는 틀 안에서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윤회하는 존재는 불교에서 말하는 기본원소인 지수화풍의 사대(四大)만이 있는 것이니 어떤 고정불변의 자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정확히 말하고 있다.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끝없이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인드라망과 같은 무수한 관계 속에 업이라고 하는 질긴 끈에 묶인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업의 힘에 의해 끝없이 육도 안에서 윤회하며 거듭 태어나고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부모님이나 이름 모르는 조상님들도 우리의 삶 속에서 반드시 우리(나)와 관계되어 있고 다시 언젠가 그들의 영향력을 반드시 받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이다. 그리고 천도의식을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조상님들로부터 우리와 우리의 자식에 이르기까지 전해진 생명에 대한 감사함과 소중함을 기리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미 돌아가신 조상님이시지만 그들의 정신과 생명은 다음 세대인 우리에게 온전히 전해져 있다. 때문에 그것을 무시하고 단순히 기복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무시하고 부정하는 것이 된다. 즉 불교에서 행하는 천도의식은 먼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것과 동시에 남겨진 우리의 삶에 위안을 받고 다음 세대에게 그 위안과 풍요를 고스란히 전해주기 위한 의식인 것이다. 

그리고 경에서 말하듯 육도의 중생 중에 우리와 무관한 존재는 단 하나도 없다. 우리도 언젠가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여 지수화풍으로 흩어지고 업의 인과에 의해 다른 어떤 존재로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살아있는 지금 모든 생명들을 존중하고 그들로 하여금 우리로 인해 안락함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구하려고 하는 삶의 행복은 언제나 우리 안에서 시작되고 다시 우리 안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법장 스님 해인사승가대학 교수사 buddhastory@naver.com

 

[1546호 / 2020년 7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