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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동체대비’와 ‘보시 바라밀’

기자명 선응 스님

동체대비가 진정으로 참된 보시다

부모가 자식의 고통 애민하고
남 고통 같이하는 게 동체대비
재가는 재물과 법, 출가는 설법
보살은 무상 깨달음 전해 보시

현재 ‘신‧해‧행‧증’에서 ‘행‧증’을 설하고 있다. 45장은 “‘3학’을 닦아서 ‘열반’을 증득하는 것은 ‘참’이 아니다. ‘심법’의 근본이 ‘적정’해야 ‘참 열반’이다. 그래서 ‘제법’은 본래부터 항상 스스로 ‘적멸상’이다”라고 ‘법화경’에서 설한다. 

‘도를 닦는 것’은 ‘3학(계‧정‧혜)’이고, ‘적멸심’은 ‘4성제(고‧집‧멸‧도)에서 ‘멸’이며 ‘열반’이다. ‘성문‧연각’은 생사는 고통이고 열반은 낙이기에, 번뇌를 끊어서 열반을 증득한다. ‘대승’은 3학과 6바라밀로 성불한다. ‘선법’은 마음이 적멸한 것이 열반이다.

해석은 “‘눈’은 스스로를 보지 못한다. ‘눈’이 ‘눈’을 본다는 것은 삿된 것이다. 그러므로 ‘묘수’는 사유하고, ‘유마’는 침묵했다. 이 아래는 자세하게 ‘수행’을 설명한다”이다. ‘대반열반경’과 ‘대혜어록’ 등의 설이다. ‘묘수(妙首)’란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사리(文殊)’다. ‘영락경’에서는 ‘묘덕(妙德)’이라 하고, ‘대일경’ 등에서는 ‘묘길상(妙吉祥)’이라 한다. ‘유마경’에서 문수사리가 “‘보살’이 어떻게 ‘둘이 아닌’ 법에 들어가는가?”를 묻자 유마(維摩)는 ‘침묵’했다. 

여기서 문수보살이 “‘문자와 언어가 없는 것’이 진실로 ‘둘이 아닌(不二)법문’에 들어가는 것이구나!”라고 하니 이것이 곧 ‘불립문자’ ‘불이법문’이다. 규봉(780~841)의 ‘원각경약소’에서 “‘동체대비’는 ‘대원력심’이다. ‘마음’에 본래 있어서 새롭게 ‘증득’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차별 없는 적멸지가 열반이고, 돈오돈수이다. 

46장은 “‘가난한 사람’이 와서 구걸하면, 분수에 맞게 베풀어 주되, ‘동체대비’가 참된 ‘보시’다”이다. ‘동체대비’란 ‘대반열반경’에서 설한 ‘부모가 자식의 고통을 마음에 애민하는 경지’이고, ‘마하지관’에서 “‘공’에 들어가서 ‘대자비심’으로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과 같이 하는 것이다”고 한 것이다. ‘보현금강의궤’에서는 “‘내 몸’은 ‘보현(행원)’이다.’ 이 ‘마음’을 생 할 때 ‘가변 없는 해탈’을 성취하고 ‘유정’이 나와 다름이 없다”고 했고, ‘법화현의’ 등은 “‘부처님’의 ‘법신(法身)’과 중생의 ‘법신’이 같아서 ‘많은 존재’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본다”고 한 것이다. 

‘보시’는 6바라밀의 첫 번째다. ‘보살선계경’에서 “‘재가보살’은 ‘재물’과 ‘법’을, ‘출가보살’은 ‘설법’으로 ‘생사’의 두려움이 없게 하며, ‘대보살’은 ‘형상이 없는(無相)’ 깨달음을 전해서 ‘보시’한다”고 했다. ‘잡보장경’에서는 “‘가난한 자’의 보시는 미소, 칭찬, 겸양, 정성, 도움, 양보로써 ‘보시’하라”고 하고, 보시의 방법은 지극한 마음으로 때에 맞고 법답게 하며, 그 과보는, 건강‧수명‧안락‧명예와 함께 자신감이 생긴다는 것을 경들에서 설한다. 

‘월등삼매경’에서 “‘보시’는 인색함과 두려움의 마음이 없게 하고, ‘환희’와 ‘평등’한 마음이 되어 권속이 ‘공경’하고 ‘화합’하여 ‘선지식’을 만난다”고 한다. 또 ‘유마경’에서 “‘욕심’을 버리게 해서 ‘지혜’에 들게 한다”고 하며, ‘심지관경’에서 “‘과보’를 ‘원하지 않는 마음(無願)’의 ‘공양’은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고 하고, 영명(904~975)선사가 “비록 ‘달’이 천개의 ‘세계’를 비추어 가르칠지라도 ‘허공’은 만 가지 ‘인연’을 제도한다”고 했던 것 등은 ‘허공’과 같이 ‘분별’이 없는 ‘마음’은 많은 중생을 장생하고, ‘적멸심’은 ‘인연’에 ‘수순’해서 ‘공간’과 ‘시간’에 자유로워 ‘자타’를 ‘성불’하게 한다. 그래서 ‘지혜’와 ‘복덕’을 구족하려면 ‘적멸상’을 증득해야 한다.

서산대사는 “‘자신’과 ‘대상’이 ‘하나’가 되는 것을 ‘동체’라고 한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것이 ‘선종’의 ‘수행방법’이다”고 하셨다. ‘원각경약소’에서 “’자타’가 ‘둘’이 아닐 때 ‘동체대비’가 생하게 된다”고 하며, ‘공수래공수거’는 일본 난뽀쇼묘우(南浦紹明, 1235~1309)에게 ‘임제선’을 전한, 남송 ‘양기파’ 허당지우(虛堂智愚, 1185~1269)의 법어다. ‘조사선’에서 ‘보시’는 ‘무상’, ‘무원’, ‘동체대비’의 ‘마음’이다.

선응 스님 동국대 불교학 박사 sarvajna@naver.com
 

[1546호 / 2020년 7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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