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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탁수정의 ‘내 꿈은 자연사’

기자명 박사

고통 연결된 이들과 사랑 나누는 삶

성폭력 고발 후 상처뿐인 영광
성폭력 피해자 위한 연대 활동
우린 누군가에게 사랑의 대상
부처님은 고통 주목해 해법 제시

‘내 꿈은 자연사’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 5‧18엄마가 4‧16 엄마에게 보냈던 이 메시지는 오래도록 회자되었다. 사람의 마음을 울컥하게 하는 동병상련의 메시지. 부처님은 나와 남이 둘이 아닌 진리를 말씀하시면서 고통에 주목하셨다. 남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고통 받는 존재라는 것, 남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것은 결국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증거다. 우리는 고통으로 연결된다. 고통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깊이 잠겨보는 통로다. 결국 우리는 세계라는 커다란 환우회의 회원들 아닐까. 고통에 대해서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서로에게 스며든다.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임을 통렬하게 깨닫는다.

이 책을 쓴 저자는 2013년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고발하면서 그의 말대로라면 ‘개처럼 싸웠다.’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2년 뒤 그의 손에는 가해자도 아닌 회사 대표가 보낸 사과문 한 장, 쥐꼬리만 한 위로금이 들려있을 뿐이었다. 그는 그 후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연대자로 활동하게 된다. 싸움의 과정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듣고 너무 많은 고통을 목격한 그는 “우리”와 함께 하기로 마음먹는다. 고통 받는 우리. 상처받은 우리. 싸우는 우리. 

그러나 그의 이미지는 한껏 깃발을 치켜든 여전사는 아니다. 옹색한 방에 티비 놓을 곳을 못 찾아 벽걸이 티비를 사려다가 가벽이라 티비를 못 건다는 사실을 알고 울어버리고, 어릴 때 잠깐 카페에서 알바했던 경험 덕분에 집에서 맛있는 커피를 평생 먹게 되었다고 기뻐하며, 불안과 우울을 다스리기 위해 강제로 걸으려고 포켓몬고 게임을 하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일상을 사는 한 사람이다. 그에게 있어 싸움은 ‘오지랖’이고 ‘계모임’이다. “결혼하지 않은, 직장이 탄탄하지 않은, 대단한 백이 없는, 갑자기 아플 수도 있는 우리 존재들”을 위해 추락할 때 받쳐줄 매트리스가 있다고 자꾸 주장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그는 어머니가 생활비 하라고 보내준 60만원에서 50만원을 뚝 떼어 기부하고, 성폭력 피해자의 입원비를 해결하기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서류를 제출하고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돕는다. 변호사비가 없는 피해자에게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무료상담과 변호사지원에 관한 정보를 주고, 궁지에 몰린 아티스트를 구하기 위해 지지공연을 연다.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소송비와 의료비를 만들기 위해 책을 만들고 후원을 받는다. 그는 말한다. “‘곗돈 타는 날’은 빙글빙글 돈다. 중간에 계주가 튀는 사건 사고가 있기도 하다지만, 별일 없다면 빙글빙글 돌아 내 차례가 온다. 타인을 도우며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면, 그러다 타인의 도움을 받아보게 되면, 그들에게 감사해하다 보면, 나도 곧 그런 사람이 된다.”

그러나 실상은 그리 안온하고 평화롭지 않다. 폭력을 당하고 계란으로 바위치기의 기세로 싸우면서 받는 정신적 상처는 상상 이상이다. 그는 적응장애 진단을 받고 폐쇄병동을 들락거리며 본의 아니게 부모의 짐이 된다. 상태가 심각할 때는 가족에게 패악을 부리기도 한다. 정신이 아주 멀리까지 간 어느 날, 그는 엄마에게 고함을 지른다. “엄마도 싫잖아. 실컷 키워놨더니 이따위인 딸 끔찍하잖아. 하나도 재미없잖아. 지긋지긋하잖아. 고생만 하고 계속 왜 낳았나 싶잖아.” 그러자 그의 엄마는 더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나는 좋았다 왜! 계속 좋았는데 왜!!”

우리는 고통 받는 존재이기에 서로에게 닿고, 또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기에 살아간다. 우리를 연결시키는 것은 고통이지만 나누는 것은 사랑이다. 함부로 다뤄지고 폭력에 시달리고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순간에도,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끊어지지 않는 사랑의 대상이다. 사성제의 첫 글자가 ‘고’라면 부처님이 끝끝내 하시는 말씀은 자비와 연민이다. 그래서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546호 / 2020년 7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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