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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인연 ➁

기자명 박희택

불교는 인연과 인과 논리 위에 구성

불교는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
선악의 저편에 민감하게 반응
연기의 존재론, 인과의 인식론
인연의 실천론 등 논리적 구성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에서 “그대 위대한 별이여! 그대가 빛을 비추어준다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존재가 없다면, 그대의 행복은 무엇이겠는가!”하고 노래하고 있다. 차라투스트라가 나이 서른이 되었을 때 고향을 떠나 산으로 들어가 십 년 수도한 후, 어느 날 동이 트자 일어나 태양을 향해 외친 소리이다.

태양의 빛(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일 존재(연)가 없으면 태양의 행복(과)이 있을 리 없다는 인연법을 말하고 있다. 또한 같은 책 제1부 제6장에서 “생각과 행위 그리고 그 행위의 표상(表象)은 서로 별개의 것이다. 그것들 사이에는 인과의 수레바퀴가 돌지 않는다”고 갈파하고 있다. 행위의 표상과 행위의 괴리, 행위와 생각의 괴리를 드러낸 것인데, 여기서 ‘인과의 수레바퀴’란 표현은 ‘진리의 수레바퀴[法輪]’를 구체화한 표현으로 니체의 불교를 향한 찬탄을 예비하고 있다.

니체는 몇 년 후 ‘안티 크리스트교’(1888)를 출간하였는데, 그 제2장에서 불교를 매우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단 하나의 종교라고 절찬하고 있다. 

위의 두 인용에서 볼 수 있듯이, 니체는 인연과 인과의 불교논리와 용어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니체는 불교를 논리적이면서 객관적이며 현실적이라고 부연하고 있기도 하다. 불교는 신을 말하지 않고, 인간의 이기주의[我相]를 직시하기에 객관적이라 보았다. 또한 죄에 대한 싸움을 말하지 않고 고에 대한 싸움을 강조하고, 선악의 이분법이란 고착성을 넘어서 선악의 저편에 민감성을 가지고 반응하기에 현실적이라 하였다. 이러한 객관성과 현실성은 말할 것도 없이 인연법과 인과법의 논리성 위에 전개된 것이다.

편리하게 선험적(a priori) 초월자를 설정하여 비객관적이고 비현실적으로 호교론(apologetics)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불교는 엄밀하게 주관적 조건(인)과 객관적 조건(연)의 화합과 그 결과(과)라는 논리성 위에서 신이 아닌 인간, 인간의 이기주의와 고, 선악의 초극(超克)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사성제(四聖諦)의 고-집-멸-도의 논리구조만 보아도 이 점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니체가 당시 기준으로 유럽이 아직 불교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성숙되지 못했다고 한 것은, 초월자(신)에 매몰된 나머지 인연법 내지 인과법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없었다는 판단에서 그러하였다고 여겨진다.

여기서 ‘인연’과 ‘인과’와 ‘연기’의 개념적 초점이 각기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인연’은 조건을 갖추는 것에 초점을 둔 실천론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주관적 조건과 객관적 조건을 갖추기 위한 실천수행의 방법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인연이다. 이에 비해 ‘인과’는 인식론적 개념이다. <인 + 연 ➝ 과>의 논리구조 위에서 인과 연의 화합으로 과가 이루어진다는 인식론적 개념이 인과이다. 자신이 지은 인에 따라 자신이 받는다는 자인자과(自因自果), 선한 인에는 선한 과가 따른다는 선인선과(善因善果), 악한 인에는 악한 과가 따른 악인악과(惡因惡果) 등의 불교인식론은 인과의 용어와 개념으로 설해진다. 자업자득(自業自得), 자업자박(自業自縛)으로 부르기도 하는 자인자과는 우리 삶의 자기책임주의를 불교인식론으로 명확하게 강조한 개념이다.

한편 ‘연기’는 존재론적 개념이다. 모든 존재는 인연생기(因緣生起)하는데  그 존재론적 개념을 두 자로 줄여 연기(緣起)라 한 것이다. 붓다는 12연기의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을 설하였다(잡아함경15). 순관은 무명의 존재가 노사의 존재로 향하는 것(유전연기)에 관한 관찰이고, 역관은 노사의 존재가 무명의 존재로 향하는 것(환멸연기)에 관한 관찰이다. 연기의 불교존재론은 ‘아함경’의 12연기설, 유식종(법상종)의 뢰야연기설, ‘능가경’의 여래장연기설, 화엄종의 법계연기설, 진언종의 육대연기설 등으로 발전하여 왔다. 일본 일련종에서는 불계연기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철학의 3대 영역을 존재론과 인식론과 실천론으로 볼 때, 불교철학은 연기의 존재론, 인과의 인식론, 인연의 실천론을 구축하고 있다. 연기와 인과와 인연은 동일한 맥락에 놓여 있는 것이면서도 개념적 초점을 달리하여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박희택 열린행복아카데미 원장 yebak26@naver.com

 

[1546호 / 2020년 7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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