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대한민국

헌법에는 국가를 통치하는 기본적인 원칙과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규범이 명시되어 있음에도 요즘 우리 현실을 보면 법에 관한 시비와 논란이 그치지 않고, 법 자체에 대한 불신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왜 국가의 기본질서를 세우는 법이 통째로 흔들리고 법에 대한 회의가 이토록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성찰해 본다.

지금까지 기본법인 헌법만 해도 9차례나 개정되었고 수없이 많은 법이 새로 만들어지고 개정되고 있다. 그런데 법을 제정하고 개정하는 동기나 목적에 사가 깃들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철저히 공을 지향하는 법의 정당성과 권위가 적지 않게 훼손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 심각한 폐단은 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보편적 엄밀성이 지켜지지 않고 소위 내로남불식으로 법을 자의적으로 취급하는 사례가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법이 흔들리고 사회가 혼란을 거듭하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법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가치와 목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못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면서 늘 듣고 말하는 것이지만 그냥 흘려보내는 중요한 구절을 새삼 상기했으면 한다. 우리가 가꾸어야 하는 영광스런 대한민국의 모습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곳이다. 우리가 꿈꾸는 살기 좋은 사회의 모습은 개인이 자유롭게 살고 사회에 정의가 실현되는 곳이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자유는 국민 개개인이 합리적인 이성과 윤리의식을 갖춘 인격적으로 독립된 존재라고 존중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래서 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다. 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은 그 사람을 믿고 자유롭게 두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에 대한 이러한 기본적인 믿음과 존중이 없는 경우 국민을 무시하게 되고 그래서 자꾸 통제하고 사육하려 들게 되는 것이다.

정의의 핵심은 각자에게 자기 몫을 정당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노력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에게는 그에 합당한 평가와 보상이 주어지고, 의미 있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사회에 대한 기여도 없는 사람에게 부당한 이득이 주어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구성원들이 선한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는 삶을 살 수가 있다. 붓다가 신의 의지나 숙명 같은 선험적 원리로써 인간과 세상의 모든 변화를 설명하는 당대의 사상들을 비판하고 부정했던 이유도 바로 그렇게 되면 인간의 의지나 노력이 설 곳이 없게 된다는 데 있었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분배의 방식을 보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조건이 너무 크게 작용하고 살면서 이룬 노력과 성취에 따르는 분배는 너무 보잘것없다. 금수저·흙수저 얘기가 우리 사회 젊은이를 절망하게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인권을 누릴 만큼의 보편적 복지를 시행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의 중요한 가치들이 산술적 균등이나 추첨 등 우연적 요소가 아니라 성과에 따라 분배되어야 공정하다고 할 수 있다. 대중의 인기에 편승하여 왜곡된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정작 더 중요한 자유와 정의라는 가치를 훼손하는 일을 당연한 듯이 자행하는 우리의 현실은 정의나 공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어떻게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 것인지 구체적 방법을 찾는 것이 당면한 현실에서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이지만, 어디로 갈 것인가의 근본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잊지 않는 것 또한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돈을 버느냐는 당면한 문제에만 매달리는 경우 돈을 벌려고 하는 근본 목적이 행복한 삶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개인의 삶이나 국가의 운영에서 지향하는 근본 목적을 새삼 뚜렷이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혼란한 현실을 벗어나 나아갈 방향과 질서를 회복하는 길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정영근 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yunjai@seoultech.ac.kr

 

[1547호 / 2020년 7월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