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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여덟 가지 힘(八力)

기자명 마성 스님

물직적 풍요‧정신적 발전 균형 이룰때 행복

‘여덟가지의 힘’이 주는 의미 각각 경마다 완전히 일치하지 않지만 
붓다는 지혜로운자·출가자·지식인이 갖춘 힘 본받을 것 강조
오늘날 능력‧재화 큰 위력 발휘하며 정신적 행복‧수행 가치 퇴색돼

스리랑카 폴론나루워 갈 위하라(Gal Vihara)에 새겨진 붓다의 열반상. 자세히 보면 오른쪽 발이 왼쪽 발보다 약간 앞으로 나와 있고 가사 끝자락이 땅에 떨어져 있다. 전형적인 열반상의 특징이다. 이 특징이 훗날 선종의 삼처전심에 나오는 곽시쌍부(槨示雙趺)의 모티브가 됐다.
스리랑카 폴론나루워 갈 위하라(Gal Vihara)에 새겨진 붓다의 열반상. 자세히 보면 오른쪽 발이 왼쪽 발보다 약간 앞으로 나와 있고 가사 끝자락이 땅에 떨어져 있다. 전형적인 열반상의 특징이다. 이 특징이 훗날 선종의 삼처전심에 나오는 곽시쌍부(槨示雙趺)의 모티브가 됐다.

‘앙굿따라 니까야’에 ‘힘의 경(Bala-sutta)’이라는 아주 짧은 경이 수록되어 있다. 이 경에서는 ‘여덟 가지 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필자가 직접 번역한 이 경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덟 가지 힘이 있다. 여덟 가지란 무엇인가? 어린아이는 울음이 힘이고, 부인은 잔소리가 힘이고, 도둑은 무기가 힘이고, 왕은 권력이 힘이고, 어리석은 자는 불만이 힘이고, 지혜로운 자는 성찰이 힘이고, 많이 배운 자는 숙고가 힘이고, 사문과 바라문은 인내가 힘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덟 가지 힘이 있다.”(AN.Ⅳ.223)

한역 ‘증일아함경’과 ‘잡아함경’에 이 경과 대응하는 경이 나타나는 것으로 봐서 경전성립사적으로는 고층(古層)에 해당된다. 그런데 니까야에는 이 경을 설하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러나 이 경과 대응하는 ‘증일아함경’ 제31권 제1경에서는 세존께서 사왓티의 기수급고독원에서 여러 비구들에게 설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필자가 “부인은 잔소리가 힘이다(kodhabalā mātugāmā)”라고 번역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여인은 성냄으로 힘을 삼고” 또는 “여자들은 화내는 것이 힘이다”라고 번역했다. ‘앙굿따라 니까야’를 영어로 번역한 하레(E.M. Hare)는 “(남편에 대한) 부인의 잔소리”로 번역했다. 문자 그대로 여성은 성냄으로 힘을 삼는다고 번역한다면,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 “도둑들은 무기(武器)가 힘이다”(āvudhabalā corā)라고 한 것은 단순히 남의 물건을 훔치는 좀도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듯하다. 여기서 말하는 도둑은 무기로 사람을 살상한 뒤 귀중품을 탈취해 가는 오늘날의 강도나 조직폭력배의 개념에 가깝다. 그래서 하레는 “도둑들의 힘은 싸우는 것”이라고 번역했다.

또 하레는 빨리어 발라(bala)를 문자 그대로 ‘힘(力)’으로 번역하지 않고,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갖고 있는 ‘속성(attribute)’이라고 이해했다. 따라서 위 경문을 다시 정리해 보면, 어린아이의 속성은 울음이고, 부인의 속성은 남편에 대한 잔소리이고, 강도의 속성은 싸움이고, 왕의 속성은 권력이고, 어리석은 자의 속성은 남을 헐뜯음(毁呰)이고, 지혜로운 자의 속성은 살피고 깊이 생각하는 심려(審慮)이고, 많이 배운 자의 속성은 철저히 검토하는 것이고, 사문과 바라문의 속성은 인내하는 것이다.

한편 이 경과 대응하는 ‘증일아함경’ 권31 제1경에서는 여섯 가지 힘을 언급하고 있다. “여섯 가지란 무엇인가? 어린아이는 울음으로 힘을 삼아 할 말이 있으면 반드시 먼저 운다. 여자는 성냄으로 힘을 삼아 성을 낸 뒤에 말을 한다. 사문과 바라문은 참음으로 힘을 삼아 항상 겸손할 것을 생각하고 남들보다 낮춘 뒤에 자신의 말을 한다. 국왕은 권위로 힘을 삼아 그 큰 권력으로 자신의 말을 한다. 그리고 아라한은 골똘하고 정밀함으로 힘을 삼아 자신의 말을 한다. 모든 불세존께서는 큰 자비를 성취하고 그 큰 자비로 힘을 삼아 중생들에게 널리 이익을 주느니라.”(T2, p.717b)

이상에서 보듯, ‘앙굿따라 니까야’(AN8:27)와 ‘증일아함경’(EA38:1)의 내용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앙굿따라 니까야’에서는 어린아이, 도둑, 왕, 어리석은 자, 지혜로운 자, 많이 배운 자, 사문과 바라문의 힘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증일아함경’에서는 어린아이, 여자, 사문과 바라문, 국왕, 아라한, 불세존의 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두 경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어린아이, 여자, 사문과 바라문, 국왕 등 네 가지의 힘이다. 반면 ‘증일아함경’에서는 도둑과 어리석은 자가 빠지고, 지혜로운 자와 많이 배운 자 대신에 아라한과 불세존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 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에는 큰 차이가 없다.

한편 ‘잡아함경’의 ‘팔력경(八力經)’과 ‘광설팔력경(廣說八力經)’에서는 약간 다르게 기술되어 있다. ‘팔력경’에서는 “이른바 자재왕의 힘(自在王者力), 일을 결단하는 대신의 힘(斷事大臣力), 원한을 맺는 여자의 힘(結恨女人力), 우는 아이의 힘(啼泣嬰兒力), 비방하는 어리석은 이의 힘(毁呰愚人力), 자세하고 명료한 지혜의 힘(審諦黠慧力), 출가하여 인욕하는 힘(忍辱出家力), 많이 들어 깊이 생각하는 힘(計數多聞力)이니라”라고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다.

반면 ‘광설팔력경’에서는 ‘팔력경’에서 언급한 ‘여덟 가지 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충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이른바 자재왕의 힘이란 왕이 자재한 위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일을 결단하는 대신의 힘이란 대신이 일을 결단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원한을 맺는 여자의 힘이란 여인의 특성상 원한을 맺는 힘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는 아이의 힘이란 아이의 특성상 우는 힘을 나타내는 것이다. 비방하는 어리석은 이의 힘이란 어리석은 이의 특성상 일에 맞닥뜨리면 비방하여 말하는 것이다. 자세하고 명료한 지혜의 힘이란 지혜로운 사람이 언제나 자세하고 명료하게 살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출가하여 인욕하는 힘이란 출가한 사람이 항상 인욕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많이 들어 깊이 생각하는 힘이란 많이 들어 아는 사람은 언제나 생각하고 헤아리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상좌부에서 전승한 니까야와 설일체유부에서 전승한 아가마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여덟 가지 힘’ 중에서 지혜로운 사람, 출가한 사람, 많이 배운 사람이 갖춘 힘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 경을 설한 붓다의 본래 의도인 것 같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오늘날에는 각 개인이 갖고 있는 능력과 재화(財貨)가 힘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화보다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없다. 비록 남보다 뛰어난 재능과 인격을 갖추었더라도 재화를 획득하지 못하면 열등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세상 사람들은 재화의 유무에 따라 사람을 평가한다. 이 때문에 돈보다 소중한 정신적 행복이나 수행의 가치가 퇴색되고 있다.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 풍요와 함께 정신적 발전이 균형을 이루어야만 가능하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ripl@daum.net

 

[1547호 / 2020년 7월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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