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일념무심’과 ‘인욕‧정진’
29. ‘일념무심’과 ‘인욕‧정진’
  • 선응 스님
  • 승인 2020.07.28 09:25
  • 호수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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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념에 성냄 생기하면 장애 문 열려

번뇌 중 화‧교만함이 가장 심해
성냄은 나와 남 해롭게 하는 독
인욕은 깨달음 향해 정진케 해
참된 마음 지키는 게 제일 정진

‘신‧해‧행‧증’에서 ‘행‧증’은 ‘붓다’의 길(6바라밀, Ṣatpāramitā)’이다. 이전 장에서 ‘적멸심(무분별지)’은 ‘3학(계율‧선정‧지혜)을 성취하며, ‘동체대비’의 보시행이라고 설했다. 

이 장에서는 ‘인욕(忍辱)’과 ‘정진(精進)’을 밝힌다. 

47장은 “어떤 사람이 와서 해치더라도, 스스로 ‘마음’을 거두어야 한다. 성내서 원한을 내지 말라. ‘일념’에 ‘성내는 마음’을 생기하면 많은 장애의 문이 열린다”이다. 본문은 징관(738~839)의 ‘수소연의초’와 실차난타(Sikshananda, 652~710)가 한역한 ‘80화엄경(699년경)’의 내용이다. ‘진노(嗔)’는 노여워서 기가 차서 오르는 것이고, ‘에(恚)’는 원한으로 분노하는 것이다. 즉 원망하면서 타인을 해하고 사회와 나라를 재난에 빠뜨리게 할 수 있다. 

해석하기를 “‘번뇌’가 비록 헤아릴 수 없이 많을 지라도 ‘화’내고 ‘교만함’이 가장 심하다. ‘열반경’에서는 “(향을) 바르거나 (살을) 베어도 모두 ‘무심’하라”고 한다. ‘화를 내는 것’은 마치 찬 구름 가운데 천둥과 번개가 쳐서 불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대지도론’에서 “‘노여움’은 ‘3독’ 가운데 가장 무겁고 그 책임이 깊어서 각종 마음의 ‘병’ 중에서도 가장 고치기 어렵다”고 한다. ‘성냄’은 ‘청천벽력’, 파랗게 갠 하늘에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는 상황과 같이 ‘욕망’에 따라서 ‘어리석은’ 마음이 지속되다가 표출되어 자신과 타인을 해롭게 하기에 ‘독(毒)’이다. 

‘대반열반경’에서 “여래는 ‘원한’이 있거나 ‘친한’ 사람에 대해서도 그 마음이 ‘평등’하다”고 한 것으로, ‘적멸심’은 ‘희노애락, 우비고뇌, 칭찬‧비난’의 상황에서의 ‘평정심’이다. 

48장은 “만일 ‘참는 행’이 없으면 만 가지 ‘행’을 이루지 못한다”이다. 이통현(635~730)의 ‘신화엄경론’을 인용한 내용이다. ‘인욕’은 큰 깨달음을 향해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정진’하게 되어 ‘향상일로’하게 한다. 

해석하시길 “‘수행문’이 비록 헤아릴 수 없을지라도 ‘자애함’으로 ‘참는 것’이 근원이 된다. ‘참는 마음’은 ‘허깨비 꿈’과 같고, ‘치욕의 경계’는 거북의 털과 같다”고 했다. 부대사(497~569)의 ‘금강경송’ 내용이다. ‘금강경’에서 “가리왕에게 몸의 한 부분을 잘리어도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었으면 화를 내었을 것”이라고 한 것과 같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적멸심’에서 ‘상’이 없는 마음에는 ‘성냄’이 없다. ‘능엄경’에서 “‘마군’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평등심’이며, ‘자성청정심’의 마음이다”고 한 것은 ‘선정’으로 발현된 마음이다. 

49장은 “근본 ‘참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제일의 ‘정진(精進)’이다”이다. ‘수본진심(守本眞心)’은 5조 홍인(弘忍, 602∼675)이 강조하는 선법이다. ‘정진’은 ‘선’을 향해서 ‘한 마음’으로 집중해서 나아가는 노력으로 ‘악’을 방지하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최상승론’에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제일이고, ‘열반’의 근본이며, ‘불도’에 들어가는 중요한 문이고, ‘불법’의 뜻이며,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다”고 한 내용이다.

해석하시길 “만약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이것은 ‘거짓’이고 ‘정진’이 아니다. 옛 사람이, “망상하지 마라, 망상 하지 마라”고 한 것은 ‘게으른 자’는 항상 훗날을 기약하니, 스스로 버린 사람이다”라고 했다. ‘화엄경수소연의초’의 내용과 ‘경덕전등록’의 ‘분주무업(汾州無業 760~821)전’에서 제자를 지도했던 법어다. 

‘망상(vikalpa)’은 허망하고 전도된 마음으로 제법의 현상에 대해서 ‘사실’의 본질을 볼 수 없어서 ‘오류’를 발생한다. ‘망념’은 ‘아집’을 생하게 된다. ‘성내는 마음’으로 ‘고통’을 받고 ‘탐욕’으로 ‘자신의 분수’를 알지 못하며, ‘깨달음’을 증득하지 못해서 중생의 ‘본능’만 따르게 된다. ‘무량수경’의 아미타불 48원에서 “다시 ‘악한 길’에 가지 않기를 발원한 것”은 큰 ‘자비심’이 근원이다. ‘관보현보살행법경’에서 “참회하려면 단정히 앉아서 ‘실상’을 관하라”하시니, ‘선법’에서는 ‘화두일념’으로 ‘한 생각’ 청정한 것이 ‘정진’이다.

선응 스님 동국대 불교학 박사 sarvajna@naver.com

 

[1547호 / 2020년 7월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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