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안도 히로시게의 ‘쇼노(庄野)’
35. 안도 히로시게의 ‘쇼노(庄野)’
  • 손태호
  • 승인 2020.07.28 10:51
  • 호수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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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 침울함과 사람들 조급함의 절묘한 울림

그림으로 시 쓰고 산천 노래한 우끼요에 작가 히로시게 작품
가느다란 선 목판에 새겨 표현한 비는 팽팽한 긴장감 전달해 
이웃나라 장마로 큰 피해…미리 잘 살펴서 무탈하기를 기원
안도 히로시게 作 ‘동해도53차’ 중 ‘쇼노(庄野)’, 21.9×34.6cm, 1833년, 일본 동경국립박물관.
안도 히로시게 作 ‘동해도53차’ 중 ‘쇼노(庄野)’, 21.9×34.6cm, 1833년, 일본 동경국립박물관.

밤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장마철이니 내내 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합니다. 장하게 쏟아지는 비를 보면 왠지 내 마음의 시끄러움도 쓸려 내려가는 듯해 조금 편안해지기도 하지만 남부지방에는 비 피해가 있다하니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조금 다행이다 싶습니다.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은 엄청난 비로 큰 재해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중국 남부는 거의 한달 내내 내린 비로 대규모 홍수가 발생하여 4000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14조원이 넘는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재난 대비가 철저하다는 일본도 역대급 장맛비로 70명 이상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 중 규슈지역의 피해가 가장 심한데 101개 하천이 범람하여 엄청난 농경지가 황폐화되었다고 하니 자연의 무서움을 새삼스레 느끼게 됩니다. 원래 일본은 여름에 남동계절풍의 영향으로 고온다습하고 비가 자주 내리지만 이번처럼 오랫동안 계속해 많은 양에 비가 쏟아진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고 합니다. 일본에 무시무시한 비가 내렸다니 생각나는 그림이 한 점 있습니다. 바로 우키요에 대가 안도 히로시게(安藤廣重, 1797~1858)의 ‘쇼노(庄野)’입니다. 

화면 가득히 빗줄기가 사선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우측에는 갑작스런 빗줄기에 우산을 앞으로 내리고 걸어가는 사람, 도롱이를 입고 모자가 날아갈까 손으로 누르며 허리를 굽혀 황급히 뛰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좌측으로는 맨 앞에 도롱이를 뒤집어 쓴 사람과 그 뒤 가마꾼들이 있는데 이들은 미쳐 도롱이도 입지 못한 채 모자만 쓰고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가마꾼 중 앞선 사람은 상의를 걸쳤으나 뒤 가마꾼의 상반신은 나신, 아래는 일본식 기저귀 훈도시(褌)를 차고 있어 엉덩이가 훤히 보입니다.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서양식 팬티가 보급되기 전까지 남녀를 가릴 것 없이 이런 훈도시를 많이 입었습니다. 가마 위 인물은 천으로 덮여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손으로 가마 옆을 잡고 있어 급하게 이동하는 가마 위에 앉은 자의 불안한 심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길 양쪽의 나무들과 멀리 숲의 나무들은 비의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몸을 누이고 있습니다. 저 멀리 나무들의 실루엣을 이으면 청록색의 길과 화면 좌측에서 만나 일점투시 효과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좌측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림이 한쪽으로만 쏠리면 안 되니 두 사람은 황급한 모습으로 반대방향을 향하여 팽팽한 긴장감이 느끼게 하였습니다. 이런 구성은 작품의 긴장감을 높여 기운생동(氣韻生動)하게 합니다. 

비는 아주 가느다란 선을 연속으로 그었는데 이 작품이 목판화임을 감안하면 원판에 얼마나 가늘게 선을 새겼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안도 히로시게는 일본 판화 우끼요에의 대표적인 서정적 풍경화가로 ‘그림으로 시를 쓰고 산천을 노래한 풍경화의 천재’라 불렸습니다. 그는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시대에 에도성을 화재로부터 보호하는 낮은 사무라이 계급 소방조(消防組) 대장 안도 겐에몬의 큰아들로 태어나 어렵게 자랐습니다. 설상가상으로 13세 때 부모를 잃어 소년가장이 됐고 소방조 가업을 이어 집안에 생계를 떠맡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림에 꿈을 버리지 않고 오랜 노력 끝에 간신히 우타가와 도요히로(歌川豊廣, 1773-1828)의 도제 문하생으로 들어가 스승이 죽을 때까지 17년 간 그림 수업에 매진합니다. 

스승이 세상을 떠나고 화가로서 독립한 히로시게는 소방조 대장 자리도 아들에게 물려주고 전업 화가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1832년 그는 쇼군(將軍)의 공식 사자를 수행하는 기회를 갖게 되어 도카이도(東海道)를 따라 에도에서 교토까지 490km에 달하는 거리의 53개 역참(驛站)에서 하룻밤씩 묵는 경험을 합니다. 그때 수많은 풍경과 역을 스케치하였습니다. 이듬해 도카이도의 시발점과 종착점 및 각 역참을 그린 연작 판화 ‘도카이도 고츄산츠기(東海道五十三次)’를 발표하며 자신의 천재성을 일본 전역에 알리게 됩니다. 

당시 우끼요에의 거장 호쿠사이(葛飾北斎,1760~1849)의 넘치는 기백과 격정적인 묘사와 달리 히로시게는 부드러운 서정적 풍경화를 추구하여 사람과 자연의 조화로움을 강조하는 시적 호소력이 충만한 작품으로 일본인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45번째 역 ‘쇼노(庄野)’에서도 검정 색조를 많이 사용한 하늘과 검은 실루엣으로만 표현한 대나무 숲이 비오는 날의 침울한 감정을 표현했으며 인물들의 소란스러운 행동은 소나기 내릴 때의 급한 마음들과 절묘하게 같이 울립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에 자연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큰 홍수나 재해가 닥치면 두려운 마음이 들고 움츠러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마나 홍수 등은 자연 입장에서 보면 그 자체로 꼭 필요한 활동이고 피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태풍은 적도 근처의 응축된 에너지를 북반구 전역으로 분사시키는 과정으로 적도 바다의 풍부한 플랑크톤과 이를 먹고 사는 수많은 생태자원을 태평양 전역으로 보내 생태계의 순환을 이룹니다. 만약 태풍이 없다면 적도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무지가 되고 북반구 생태계는 심각하게 교란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선배 동양미술작가이신 조정육 선생님은 자신의 글에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고 비가 그치면 비가 그쳐서 좋다며 행복해하는 사람.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싫고 비가 그치면 비가 그쳐서 싫다며 불행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비가 온다 하여 불행한 것도 아니고 해가 뜬다하여 행복한 것도 아니다. 다만 불행하다고 느끼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 마음이 있을 뿐이다. 그 마음은 무엇인가”라고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에 대해 말했습니다. 저는 언제 이런 경지를 따라갈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장마철 미리 잘 살펴 피해 없이 무탈하시길 기원합니다.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thson68@hanmail.net

 

[1547호 / 2020년 7월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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