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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속을 걷는 내내 마음은 비워졌다

김형규 대표 예비순례 동참기

대중들 함께했기에 어려움 극복
앞장서 이끄는 자승스님에 감동

폭우 속에서도 걷기순례는 계속됐다.

날마다 걸었다. 틈틈이 걷고 마음으로 매일 걸었다. 지난겨울 상월선원의 천막결사는 혹독했다. 아홉 스님들의 목숨을 건 정진력은 수행에 대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인고의 겨울을 나고 코로나19의 어수선한 봄을 보내고, 상월선원 정신을 잇는 두 번째 결사가 발표됐다. 인도만행결사였다. 인도만행결사는 인도로 떠나, 부처님께서 수행하고 전법했던 그 길을 따라 걷는 것이다. 45일에 걸쳐 1080km를 순례하는 구법의 여정이다. 척박한 인도의 땅과 기후를 견디며 매일 30km를 걷는 고행의 길. 그 길에 서겠다고 결심한 순간 순례는 시작됐다. 특히 공주 태화산 일대에서의 예비순례가 확정된 뒤로는 걷는 일은 화두가 됐다. 퇴근 시간과 휴일을 이용해 걷고 또 걸었다. 오래 걷는 일에 서툴러 마음은 내내 분주했다. 그래도 꾸준히 걷다 보니, 다리에 근육이 붙었다.

예비순례는 7월28일부터 3일간 진행됐다. 폭염을 우려했지만 오히려 폭우가 예고돼 있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예불을 모시고 상월선원 회주 자승 스님의 인도로 120여 대중이 길을 나섰다. 어스름 새벽이 대중들을 감싸 안을 때 공기는 싸하게 맑았고 정신은 명징하게 깨어났다. 대중들이 함께 걷는 길은 행복했다. 혼자서 걸을 때의 결코 익숙해지지 않았던 고됨과 가늘게 이어졌던 끈기는 스님들을 비롯한 대중들의 힘으로 극복했다.

첫날을 제외하고 만행 내내 비가 내렸다. 특히 이틀째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와 함께했다. 비가 세차게 내릴 때 세상이 빗소리로 가득했다. 걷는 나의 호흡과 땅에 딛는 발의 느낌과 빗소리가 하나가 돼 세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빗소리가 커질수록 마음은 고요해졌다. 길은 길고 느렸다. 아침과 점심을 길에서 해결하고 잠시의 숨 돌릴 틈을 제외하고 30km를 내리 걸었다. 비에 젖은 발가락은 견디다 못해 하나둘씩 부풀어 올랐다. 발가락은 내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함께 걷는 대중의 원력으로 아픔은 무뎌졌다. 무엇보다 만행 내내 상월선원 회주 자승 스님의 원력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30km의 만행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자승 스님은 앞장서 걸으며 모든 대중들의 무사 회향을 책임졌다. 나이와 약한 무릎관절을 스님은 초월해 있었다. 힘겹게 토해내는 나의 숨이 부끄러웠다.

걷는 것은 길을 가는 일이다. 길은 여러 갈래다. 사람의 길, 스님의 길, 선행의 길, 수행의 길, 행복의 길, 그래서 길은 그냥 길이 아닌 도(道)였다. 그럼에도 가장 확실한 도(道)는 발로 확인하는 그 길에 있었다. 숨이 턱에 차고 온몸에서 쏟아지는 성실한 땀 위에서 다른 길들도 함께 열렸다. 음식은 준비한 분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정도만 먹었다. 만행은 비워내는 일이었다. 몸을 비우니 생각도 비워졌다. 3박4일에 불과한 여정이지만 길은 멀고 시간은 항상 길 위에서 더디 갔다. 만행은 끊임없이 현재를 사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들과 미래에 대한 걱정은 걷는 걸음걸음 속 대지에 닿는 발의 힘겨움과 아픔 속에서 저 멀리 사라졌다.

120여명의 대중들이 같은 길을 걸었지만 각자의 길은 달랐을 것이다. 인도로부터 이어진 부처님의 전법이 우리에게 이어졌듯이, 이번 만행결사 예비순례의 끝은 인도로 향하고 있었다. 3박4일의 예비순례는 부처님께서 맨발로 걸었던 그 길에 서기 위한 구법의 여정이었다.

예비순례를 회향하고 나서는 길에 태화산을 돌아봤다.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봉우리들은 말끔했다. 3박4일의 예비순례는 결국 각자 가슴에 봉우리 같은 서원들을 하나씩 새기는 일이었다. 한국불교 중흥을 위한 염원, 그리고 그 염원의 끝에서 인도만행결사의 장엄한 구법의 길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형규 대표 kimh@beopbo.com

[1548호 / 2020년 8월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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