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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박사 삶에서 한국불교 희망 찾아야

기자명 이병두

정권과 그 권력을 집행하는 관리뿐 아니라 관료의 공급 기반인 양반 사대부들의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도 조선불교가 500년을 버텨낸 것은 기적에 가깝다. 그 뒤 일제강점기 35년과 미군정 3년, 이승만 정권 12년과 수십 년 이어진 군부 독재정권을 거치며 겪은 한국 현대불교의 굴욕과 치욕은 ‘숭유억불’을 국정 지표(?)로 내세운 조선시대에 비해 작다고 할 수 없었다. 그리고 1987년 이른바 민주화 진행 이후에도 ‘전통과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수백 년 쌓여온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한참 동안 권력에 끌려 다니거나 자청해서 권력을 따라다닌 것이 우리 현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비록 ‘제1종교’의 자리를 내주기는 했지만 이만큼이라도 불교 인구를 유지하고 핍박받지 않게 된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본다.

그러면 누가 이 기적을 이룩해 냈을까. 물론 그 첫 번째 공로자는 온갖 어려움 견뎌내며 꿋꿋하게 절을 지켜온 스님과 신심 깊은 불자들이다. 종단 권력과는 아무 관계없이 오로지 불보살님에 대한 존경과 믿음, 가족과 이웃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진심을 담아 기도를 드리는 정성…. 이 순수한 마음들이 국민들의 정서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이들을 이끌어주는 선지식이 없었으면 언제든 이웃 종교로 빠르게 끌려가서 불교의 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일제강점기는 논외로 하고, 해방 이후 불교의 현실과 미래를 고민하는 선지식들이 많았다. 출가자 그룹에서도 어떤 분은 참선 정진으로, 어떤 분은 교학으로, 또 다른 분은 경전 번역으로, 어떤 분은 종단의 주춧돌을 바로 세우는 일로, 또 다른 분들은 젊은 세대 포교로…. 각기 화급(火急)하다고 판단하는 분야에 매진하여 일정한 성과를 냈다. 그런데 재가 선지식들의 협조와 지원 없이 이분들의 불사가 가능했을까.

최근에 와서 출가와 재가 양쪽에서 상대를 멀리 하며 차별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지만, 1960~1980년대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운허‧성철‧탄허‧광덕‧숭산‧법정 스님과 덕산 이한상 거사, 이기영‧박성배‧서경수 교수 등은 오랜 친구처럼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오로지 한국 불교의 미래를 밝게 만드는 일에 마음을 함께 하였다. (이제는 서로 탓을 하거나, 앞에서는 공손하지만 진심으로 존경하지는 않는 풍토가 굳어져가고 있어서 이런 모습을 꿈도 꾸기 어렵게 되었다.)

이기영이 세계적인 석학 에띠엔 라모뜨의 지도를 받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강의를 시작했을 때 한국 학계에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학자의 길로만 나갔다면 개인적으로 안락을 맛보며 스승을 이어 세계적인 불교학자의 명예를 누릴 수 있었겠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불교학자로서 원효의 진면목을 밝혀내 세상에 알리는 일에 매진하는 한편으로, 운허‧성철‧탄허‧광덕‧숭산‧법정 스님 그리고 이한상‧박성배‧서경수와 함께 대학생불교연합회 창립에서부터 부처님 가르침을 바르게 전하는 일에 정성을 쏟았으며, 국내에서도 잘 모르고 있었던 경주 남산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 세계불교 교류와 국내외의 종교 대화에 적극 참여하며 한국 불교를 제대로 알렸다.

대학 시절 이기영을 만나 스승과 제자가 된 인연으로 그가 떠나간 지 이십 수년이 지나도 아직 그의 숨결이 느껴진다는 70대 후반의 두 인사에게 불연에 대해 물었다. “선생님은 내게 부처님이고, 스승이고 아버지였다. 특히 ‘우리는 구도자, 보살의 길을 간다’는 구호 한 마디로 드러나는 그분의 가르침은 내 인생의 나침반이다.” “사회의 잘못에는 사자후를 아끼지 않았고, 질시와 배척에는 평정심을 지킨 인욕보살이었다. 사리불존자의 지혜‧보현보살의 행원, 선재동자의 구도 열정과 장자의 풍모를 함께 느꼈다.”

2년 뒤인 2022년, 불연 이기영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다. 출재가가 함께 마음을 모아, 현대 한국 불교의 기적을 일구는 데에 매진했던 ‘구도자‧보살행자’ 불연의 삶을 재조명하여 다시 한국 불교 희망의 꽃을 피워내야 한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48호 / 2020년 8월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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