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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수행

기자명 금해 스님

세상 무상함을 알려주는 죽음
수행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
우리 욕망 허망함을 직관해야
죽음·신의 세계 뛰어넘게 돼

불교대학에서 공부한 지 17년이 되는 노보살님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고, 상대 마음도 잘 헤아립니다. 항상 즐거운 분이라 주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가끔 결석이라도 하면, 모두가 심심해 할 정도입니다.

어느 날, 공부 후에 ‘불교 공부하기를 참 잘 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당장 내일 죽어도 미련 없다며 웃습니다. 보살님의 그 미소가 참으로 자유로와서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정말 공부 참 잘 하셨다’며 안아 주었습니다.

수행은 삼매의 마음을 유지하는 일입니다. 쉽게 말하면, 일체 번뇌를 여의고 고요하고 흔들림 없는 깨어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번뇌는 욕망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번뇌를 제어하거나 욕망을 제어하는 것은 같은 길에 있습니다. 욕망을 제어하면 번뇌도 쉬어지고, 번뇌가 쉬어지는 것은 욕망을 여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불타오르는 갖가지 욕망을 제어하는 일은 어렵지만, 무상(無常)함을 깊이 체득하면 가능합니다. 이 또한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죽음’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무상하여 아침 이슬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번개와 같음을 체득하는 방법 중에 가장 직접적인 것은 ‘죽음’을 관(觀)하는 것입니다.

스님들의 출가 발심에서 ‘죽음’과 연관된 이야기가 유독 많은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겁니다. 이렇게 세상의 무상함을 가르쳐 주는 것으로 ‘죽음’만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루살이 벌레, 반려동물이나 사랑하는 사람들…, 이 모든 생명이 다 겪는 흔하디 흔한 죽음을 수행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보기 힘듭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의 죽음조차 수행과는 상관없이 헛되이 사라집니다.

대부분 병상에 누워, 본인의 죽음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평생 키워온 욕망의 허망함을 봅니다.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육신은 고통에 스러지고, 정신은 온전하지 않으며, 육친의 애정은 헛되이 멀어지고, 죽음을 맞설 수행은 방법조차 모릅니다.

기원전 336년, 알렉산더 대왕은 20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 이집트, 아프리카, 인도 서북부에 걸쳐 많은 땅을 정복해 불과 10년 만에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는 동서양의 영토와 문화를 통일한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반면 잔혹한 전쟁 후유증과 병사들의 반란 등 대내외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열병에 걸려 불과 33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았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마지막 유언은 자신의 두 손을 관 밖으로 내놓고 장례를 치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천하를 한 손에 쥐었던 알렉산더도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간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유언을 할 수 있었던 33세의 위대한 젊은 왕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특별한 통찰을 얻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20세 왕이 되었을 때 이 사실을 체득했다면, 세상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욕망으로 일구어 낸 삶들이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로 허망한 것임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지금 이 순간 본인의 죽음을 마주한 것처럼, 그렇게 직관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12세 때, 농경제에서 벌레나 새들의 약유강식(弱肉强食)의 모습과 죽음으로 깊은 삼매에 들었습니다. 어린아이가 한낱 미물들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처럼 동일화 할 수 있음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일입니다.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의 영원한 스승, 붓다가 되셨겠지요.

금해 스님

‘죽음’이 세상에 널려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죽음을 뛰어넘을 기회를 주기 위함입니다. 참된 수행자야말로 이 세계와 죽음의 세계, 신의 세계를 정복합니다. 부처님의 12세와 알렉산더왕의 33세, 그 외 수많은 시기를 이미 놓쳤지만, 지금이야말로 바로, 정진할 때입니다.

금해 스님 서울 관음선원 주지 okbuddha@daum.net

 

[1548호 / 2020년 8월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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