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희대의 살인마를 교화하다
29. 희대의 살인마를 교화하다
  • 이필원 교수
  • 승인 2020.08.03 13:34
  • 호수 15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멈추란 한마디 사자후로 악행 제지

사람 죽이는 앙굴리말라 찾아
“나는 멈췄다, 그대도 멈추라”
한마디로 존재의 허울 깬 붓다
스스로 자기를 바로 보게 교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모순이다. 죄는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죄가 본래부터 있다면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렇다고 그 죄가 사람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죄가 사람에게 있다면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니 그 사람은 죄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원인과 조건’을 말씀하신 것이다.

불교사에서 주목되는 사건들이 많지만, 그중에서 TOP10을 꼽는다면 앙굴리말라(Aṅgulimāla)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앙굴리말라는 좋은 집안에 태어난 총명한 아이로, 이름은 아힘사까(Ahiṃsaka, 해를 끼치지 않는 자)였다.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명석하고 무예가 뛰어나 스승에게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 그는 동문수학하는 친구들로부터 시기질투의 대상이었다. 친구들은 그가 스승이 없는 사이 사모와 부정한 관계를 맺었다고 모함을 하게 된다. 이에 스승은 분노에 찬 나머지 그를 파멸시키고자 하였다. 스승은 그에게 천명의 사람을 죽이고 그 손가락을 잘라 오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면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속인 것이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스승은 교묘히 그의 해탈에 대한 열망을 이용하여 결국 설득시키게 된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힘든 일이다. 그것이 아무리 잘못된 일이라고 해도 일단 시작을 하게 되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그 일을 하게 된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어디 보통일인가. 하지만 일단 사람을 죽이면 미친 상태가 되어 자신이 하는 행위가 무슨 일인인지도 모르면서 반복적으로 사람을 죽이게 된다. 아힘사까는 이렇게 사람들을 죽여 어느덧 999명을 죽이기에 이르렀다. 그는 자신이 죽인 사람의 손가락뼈로 목걸이를 만들어 그것을 걸치고 있어, 앙굴리말라[손가락으로 만들어진 화환이란 뜻]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앙굴리말라의 경(Aṅgulimālasutta)”은 이 일을 배경으로 부처님이 앙굴리말라를 교화하는 내용을 전하는 경전이다.

어느 날 부처님은 앙굴리말라를 만나러 가기 위해 앙굴리말라가 있는 곳으로 가셨다. 그러자 길을 지나던 소치는 사람, 가축을 키우는 사람, 농부 등이 부처님을 만류하였다.

[소치는 자 등] “사문이시여, 이 길로 가지 마십시오. 이 길에는 앙굴리말라라는 흉악한 도적이 있습니다. 그는 잔인하여 손에 피를 묻히고 살육을 일삼고 생명에 대한 자비가 없습니다. … 그는 사람을 죽여서 손가락뼈로 목걸이를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그들의 만류에도 묵묵히 앙굴리말라가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을 보고 기이하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감히 이곳으로는 군사조차도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수행자가 그것도 혼자서 오고 있으니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윽고 천명의 손가락을 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바로 부처님을 향해 내달렸다. 하지만 힘껏 달려도 걸어가는 부처님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이에 앙굴리말라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앙굴리말라] “사문이여, 멈추어라. 사문이여, 멈추어라.”
[붓다] “앙굴리말라여, 나는 멈추었다. 그대도 멈추어라.”

여기에서 “나는 멈추었다. 그대도 멈추어라”라는 사자후가 앙굴리말라를 일깨우게 된다. 멈춘다는 것이 무엇일까? 어찌 가면서 멈추었다고 말하는가. 미쳐 날뛰던 정신이 이 한마디로 존재의 심연으로 떨어지며 “어찌하여 그대는 멈추었고 나는 멈추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이 터져 나왔다.

[붓다] “앙굴리말라여, 나는 언제나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 폭력을 멈추고 있다네. 그러나 그대는 살아있는 생명에 자제함이 없네. 그러므로 나는 멈추었고 그대는 멈추지 않았다네.”(MN.II, p.99)

이러한 부처님의 말씀은 앙굴리말라라는 존재의 허울을 깨뜨려버렸고,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그간의 악행과 영원히 결별하게 되었다. 오랜 혼돈과 어둠의 세계를 벗어난 앙굴리말라는 더 이상 앙굴리말라가 아니었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48호 / 2020년 8월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