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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제28칙 귀근득지(歸根得旨)

“종지 터득한다는 건 무엇입니까”

신묘한 기운 내뿜던 중운화상
수행·깨침 분별않고 경지 올라
보이는 것만 추구하면 알지 못해

한 승이 중운화상에게 물었다. “근본으로 돌아가서 종지를 터득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중운화상이 말했다. “벌써 죄다 망각하여 번뇌가 일어난 줄도 모른다.”

경조부(京兆府) 중운지휘(重雲智暉) 선사는 젊은 시절부터 사찰에 나가 놀기를 좋아했다. 규봉온(圭峰溫) 선사에게 참례하여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후에 동산양개의 문하인 백수본인(白水本仁)을 찾아뵙고 미묘한 가르침을 이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오한 경지에 대하여 깊이 통달하였다. 후에 중탄(中灘)에다 잡아 건물을 지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항상 깨끗한 물과 약초를 공양하는 것으로 일거리를 삼았다. 어떤 비구가 문둥병을 앓아 오랫동안 많은 고생을 하였는데, 중운과 함께 목욕을 하자 신령한 광명이 뻗치고 기이한 향이 풍기더니 문둥병이 사라지고 몸에서는 향기가 강렬하게 풍겼다. 이후부터는 사찰의 건립에 즈음하여 잡초를 벨 때마다 상서로운 구름이 하늘을 덮었는데, 봉우리 위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며 흩어지지 않았다. 그로 인하여 사찰에 중운사(重雲寺)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 연후에 그 곳에 살던 맹수들이 다 도망가고, 막혀 있던 용담이 뚫려 길이 트이자 용도 또한 사라졌다. 이후로 납자들이 모여들었다.

상당하자, 한 승이 물었다. “근본으로 돌아가서 종지를 터득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중운이 말했다. “벌써 망각하여 번뇌가 일어나는 줄도 모른다.” “보이는 것만 쫓다보면 끝내 종지를 상실하고 만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가난한 집이 도둑을 맞은 꼴이다.” “번뇌가 일어나는 줄도 모른다면 어떻게 수행을 하고 깨침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까.” “그대의 발밑에는 벌써 번뇌의 풀이 자라났고 그대가 가는 길에는 깊은 어둠의 구덩이가 나타날 것이다.”

일찍이 육조혜능은 임종에 이르러 대중에게 ‘낙엽이 뿌리로 돌아가는 때가 도래하면 입은 있어도 말이 없다’고 말했다. 천지자연의 운행처럼 납자 살림살이의 일체가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실행되며 마감되는 이치를 표현한 말이다. 일찍이 새싹으로 피어나서 푸르다가 가을이 되어 낙엽이 된 나뭇잎은 바람에 떨어져 자신이 매달렸던 나무의 뿌리로 돌아가 썩어 마침내 흙으로 돌아간다. 이야말로 여기 중운 자신의 살림살이와 딱 부합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중운의 살림살이는 참으로 순수하였기 때문에 수행과 깨침에 대하여 애써 분별적인 작위의 행위를 도모하지 않아도 저절로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경지에 계합되었다. 때문에 ‘벌써 깡그리 망각하고 있는 까닭에 자신에게 번뇌가 일어나는 줄도 그리고 번뇌가 사라진 줄도 모른다’고 말했다. 만약 질문한 승이 중운의 답변을 통해서 무엇인가 낙엽이 뿌리로 돌아간다는 이치를 조금이라도 알아차렸다면 깊은 어둠의 구덩이에 떨어진다는 평가는 받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중운의 경우에 비추어보면 너무나 명백한 이치인데도 불구하고 승이 그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한 까닭이었다. 가난한 집이 도독을 맞은 것처럼 참으로 딱한 모습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하여 투자의청은 게송으로 말했다.

집은 파산하고 사람조차 죽었으니 어디에 의지하랴/
마음도 없고 내키지도 않지만 귀향길만 언급한다네./
십년 내내 찾아오던 오솔길마저 모두 잊어버렸으니/
잠시 동안 그 시절을 추억해보아도 통 알지 못하네./

만약 현재 자신이 느끼고 있는 번뇌 망상을 단절하면 곧장 하나의 진여를 보고 깨침에 도달한다. 그것이 바로 자기의 고향이다. 그로부터 이제는 제방으로 교화의 길에 나서야 하는 까닭에 짚신을 넉넉하게 아껴두는 것이 좋다. 이와 같이 자비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납자는 산속에 홀로 거처하더라도 너무나 친절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 은혜와 고마움을 전혀 알지 못한다. 설령 알아준다고 할지라도 순수한 살림살이의 경지를 터득하지 못한다면 아직도 온전히 깨치지 못한 담판한(擔板漢)이라고 할 것이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48호 / 2020년 8월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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