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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인연 ③

기자명 박희택

인연 없이 법 없으니 인연법이 불법

‘자인자과’이고 ‘선악응보’이니
운명 결정론 해설은 불교 무관
붓다가 인연으로 운명 밝힌 건
숙명론‧결정론을 넘어선 법음

인연(인과, 연기)이 불교철학의 3대 영역을 포괄하기에 인연이 없으면 법이 없다고 경전에서는 강설한다. “모든 법은 인연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으며, 만일 인연이 없으면 법도 없을 것이니, 하늘과 나쁜 갈래에 태어남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런 사람은 인연을 알지 못한 것이다(諸法無不因緣成, 若無因緣無諸法, 說無生天及惡趣, 如是之人不了因)”는 ‘심지관경’ 보은품의 말씀이 그것이다.

또한 ‘화엄경 80권 본’ 이세간품에서는 법을 지니게 되는 법소섭지(法所攝持) 십종 중 네 번째로 “법은 인연으로 생기고, 인연이 없으면 생기지 않음을 알면, 법을 지니게 된다(法從緣起, 無緣則不起, 法所攝持)”고 설하고 있다. 인연이 없으면 법이 없다. 인연법이 불법(佛法)이다.

불법을 심법(心法)이라 할 때도 인연법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심법은 인(因)으로서의 심왕(心王, 오온 중 識)이 연(緣)이 되는 대상(오온 중 色)을 만나 과(果)로서 심소(心所, 오온 중 受想行)라는 마음작용을 일으킴을 총칭하는 것이므로, 인연법의 체계와 함께한다.

따라서 인연(인과, 연기)이 없다고 하면 그것이 대사견이 된다. “인과가 없다고 하면 대사견이니, 죄와 복의 유래를 알지 못해 망령된 생각을 낸 것이다(無因無果大邪見, 不知罪福生妄計)”는 ‘심지관경’ 보은품 설법은 이를 일컫는 것이다. 삼독심 중 어리석은 치심(癡心)은 다른 게 아니라 인과이치 곧 인연법을 모름을 말한다. 죄와 복이 자신의 인과에 기인한 것인 줄 모르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는 것이다.

불교는 숙명론적인 맥락에서 말하는 ‘운명’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인자과이고 선악응보이니 자신이 자주적으로 지은 선과 악의 업(業, 因)에 따라 복과 죄의 보(報, 果)를 받는다는 불교인식론을 갖게 되면 숙명론을 벗어날 수 있다. 운명을 결정론(determinism)으로 해석하는 것은 불교와는 전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자신의 명(命, 생명)을 운(運, 운영)하는 것이 운명이다. 이것은 인(因=命, 1차적 조건)에 연(緣=運, 2차적 조건)을 합일하는 것이므로 ‘인연’과 같은 개념이 된다. 운명이란 다름 아닌 인연이라 보는 것이 불교의 적확(的確)한 관점이 된다. 중국의 국학대사라 불린 인도학 석학 지셴린도 저서 ‘인생’에서 운명이 인연이라고 적시한 바 있다.

서양의 정신의학과 짝을 이루는 동양의 명리심리학 또한 인간의 운명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 기제로 삼은 오행의 ‘행(行)’에는 인간의 운명이 결정론적이지 않고 변화가능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자신의 천명을 알고 이에 따라 합당한 운영을 해나간다는 것은 불교의 인연설과 접점을 이룬다.

‘장자’ 대종사편에 “부모가 어찌 내가 가난하기를 원했겠는가? 하늘은 사사로이 덮어줌이 없고(天無私覆), 땅은 사사로이 실어줌이 없으니(地無私載), 천지가 어찌 사사로이 나를 가난하게 하겠는가? 이렇게 한 자를 찾아봤지만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런 극단에 이르게 한 것은 운명이로다(然而至此極者命也夫)!”란 구절이 보인다.

운명임을 알고 담담한 마음을 유지할 것을 장자의 안목으로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장자’ 추수편에서는 시절인연[時運]을 설하여 운명의 시간적 수용도 권면하고 있다. 불교는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에서 나아가 1차적 조건[命]에 2차적 조건[運]을 부가함으로써, 주어진 1차적 조건을 새롭게 개선해 나가도록 깨우쳐 준다.

‘불설노여인경’에는 한 노파가 붓다께 “태어남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늙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며, 병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죽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갑니까? (…) 땅 물 불 바람 허공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갑니까?” 하고 여쭈는 광경이 나온다.

붓다는 “이 모든 것이 오는 곳도 없으며 가는 데도 없으니, 모든 법이 모두 이와 같다. (…) 인과 연이 합하면 생기고, 인과 연이 떨어져 흩어지면 없어지는 것이니, 법도 또한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다”고 명료하게 교설하여, 존재하는 개별자(존재자)의 운명을 다름 아닌 인연으로 밝혀 나가도록 가르치고 있다. 숙명론과 결정론을 넘어서게 한 위대한 법음이라 하겠다.

박희택 열린행복아카데미 원장 yebak26@naver.com

 

[1548호 / 2020년 8월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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