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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모차르트의 ‘론도’

기자명 김준희

중립에서 자유로움 만끽…‘고전음악’ 대명사 구축

‘천재’의 어린 시절 연주여행 ‘화엄경’ 선재동자의 구도여정인 듯
스승·후원자 만나며 경험한 다양한 선율 ‘론도’에 차용하며 변주
다양한 장르 분석·풍부한 내용 등 작품 완성 위해 완벽주의 자처

선재동자와 문수보살(입법계품 판고려시대).

형식과 내용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작품들은 모두가 듣는 이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선율들이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던 모차르트는 곡을 써나가는데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소년시절 모차르트는 어느 귀족으로부터 연주회장에서 즉흥연주를 부탁받은 적이 있었다. ‘사랑의 노래’를 들려달라는 요청에 모차르트는 주저 없이 연주를 시작했다. 미묘한 사랑의 심리를 경험하지 못한 8세 소년의 연주는 예상 밖이었다.

음악의 표현은 청중에게 이해되기 위하여 약간의 관습적이고 일반화된 표현법의 옷을 입어야 한다. 모차르트가 음악사에 있어서 ‘천재’로 각인 되어 있는 이유는 그가 동시대의 관습적인 음악어법을 바탕으로 그 만의 한층 더 높은 표현과 풍부한 내용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작곡가들과는 달리 모차르트의 소년기 곡들은 후기 작품들에 비해 완성도 면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다. 작곡 공부를 정식으로 시작하지 않은 소년 모차르트는 본능적으로 그 음악 어법을 스스로 체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그만의 완성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모차르트는 16세까지 가족들과 함께 연주여행을 계속했다. 뮌헨을 비롯해 빈, 런던, 파리, 만하임 등에서 연주를 하며 각지의 음악을 접하고 음악가들을 만났고, 이것은 그의 음악인으로서의 삶에 큰 자산이 되었다. 특히 런던에서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아들인 크리스티안 바흐를 만나 작곡을 공부했고, 모차르트의 교향곡, 소나타, 실내악곡 등에서 그 결과가 나타났다. 아버지와 함께 떠난 이탈리아로의 두 번째 여행에서는 오페라에 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때 작곡된 곡들은 자주 연주되거나 크게 뛰어난 곡들은 아니지만, 모차르트의 잠재력이 점점 발휘가 되었고 몇 년 후 그의 대표적인 명작들을 탄생시키는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 고향 잘츠부르크에 머물렀다면 얻을 수 없었던 큰 소득이었다.

모차르트의 13세 모습(추정).

모차르트의 대표적인 피아노 작품들이 탄생된 시기의 피아노 작품을 살펴보면 1780년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모차르트는 총 17개의 피아노 소나타와 26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다. 그밖에도 변주곡, 환상곡 등 다양한 피아노 소품들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 론도(Rondo)라는 제목을 가진 곡은 두 곡이다. 론도란 한 주제가 계속 반복하여 나오는 사이에 새로운 에피소드가 추가 되면서 순환하는 형식을 말한다.

‘론도 D장조, K.485’는 1786년 빈에서 작곡된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론도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변주곡 내지는 소나타 형식을 겸하고 있다. 이 주제는 모차르트의 스승이었던 크리스티안 바흐의 실내악 작품에서 차용한 것으로 이미 ‘피아노 4중주 G단조, K.478’의 마지막 악장에서 이 선율을 사용했다. 모차르트가 이 곡을 작곡할 당시에는 불멸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피아노 협주곡 A장조, K.488’를 작곡할 무렵이었다.이렇게 작고 사랑스러운, 초심자를 위한 작품이라고 생각 될 정도의 음악은 상당히 의외이다.

이 선율을 ‘론도’라는 장르가 주는 형식의 어원(‘돈다’라는 뜻의 프랑스어)과 함께 어린 시절 연주여행을 통해 습득한 음악적 자산들을 생각해보게 한다. 파리에서 만난 작곡가 요한 쇼베르트와 런던에서 만난 크리스티안 바흐, 모차르트의 중요한 후원자가 되었던 폰 그림 남작 등 어린 모차르트 연주여행 중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과 귀중한 인연들을 구법여행을 떠난 선재동자의 이야기에 비유할 수 있을까. 모차르트 역시 이 곡에서 스승의 선율을 차용하며 어린 시절의 연주 여행을 회고 했을 것이다.

문수보살에서 시작되어 보현보살로 끝나는 입법계품(入法界品)은 문수의 지혜와 보현의 행과 덕을 상징하는 불교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문수보살을 만나게 된 선재동자는 문수의 상징인 ‘지혜’의 힘으로 도를 증득하였지만, 53선지식 모두 보현의 행과 덕을 내재하고 있다. 선재는 동자라고 하지만, 보리심을 일으킨 이상적인 보살의 표상이다. 현실의 모차르트는 역시 신동으로 불렸던 어린 시절에도 음악적으로 어린아이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또한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음악적인 순수성을 잃지 않는 어른이었다. 우리는 모차르트의 훌륭한 작품들을 접할 때 그의 내면의 목소리와는 상관없이 순수한 음악에 의해 감동을 받고 기쁨을 느낀다.

모차르트의 작품은 바흐처럼 종교적이지도 않고. 베토벤이나 브루크너의 음악처럼 인생을 털어 놓는 것도 아니고, 리스트나 바그너의 음악처럼 과시적이지도 않다. 듣는 이에게도 늘 즐거움과 행복을 주며 불가사의 할 정도로 중립적이다. 또한 밝음 속에서도 어둠을 느낄 수 있고 삶이 주는 기쁨과 행복, 그리고 그에 따른 슬픔과 아픔 또한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귀족이나 청중의 요청에 의해 작곡을 하면서도 스스로 내면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표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탐구했던 모차르트의 노력을 듣는 이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균형미 넘치는 작품의 완성을 위해 스스로 완벽주의를 자처했던 모차르트의 새로운 작품들은 사후에는 ‘고전음악’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가 얼마나 음악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그의 아름다운 음악 속에는 그의 슬픔과 갈등의 일부분도 표현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론도 A단조, K.511’은 D장조 론도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론도로서는 드물게 단조인 이 곡은 1878년 아버지를 잃고 작곡되었다. 그의 인생의 상당한 기간을 함께 했던 아버지와의 이별 후에 작곡된 이 곡은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작곡된 ‘A단조 소나타 K.308’의 비장함이나 애통함과는 달리 서글픈 감상을 무겁지 않게 담고 있다. 내용적으로는 모차르트가 그 시기에 관심을 가졌던 반음계적인 기법이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있다.

모차르트를 영원한 천재로 기억하게 하는 것은 그의 짧은 생애가 남긴 음악의 양과 질 덕분이다. 다양한 장르에 걸친 분석적인 명료함과 풍부한 내용, 일관된 높은 수준의 작품들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천재 모차르트를 ‘화엄경’ 제34입법계품에 나타난, 선지식을 찾아 구도의 길을 떠난 선재동자에 비유해 본다.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음악이 가진 표정 그 자체로 구현한 그의 작품세계는 우리가 바라고 성취하고자 하는 보편적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이고 행복한 음악을 남긴 모차르트의 구법 여행에서 만난 선지식, 두 곡의 론도를 들어본다. 그가 첫 곡에서는 모차르트가 남긴 긍정적인 확신이, 두 번째 곡에서는 나직한 메시지가 느껴지는 것 같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48호 / 2020년 8월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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