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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지변보다 무서운 것

  • 데스크칼럼
  • 입력 2020.08.14 21:22
  • 수정 2020.09.04 19:22
  • 호수 1549
  • 댓글 2

구례 사성암 소떼 대피 화제
불교, 소와 인간 성품 동일시
식용이란 숙명선 탈출 어려워

호남지역에 폭우가 잇따르던 8월8일 소떼가 섬진강 범람을 피해 구례 사성암을 찾았다. 15마리가량의 소들이 침수된 축사를 탈출해 해발 531m의 사성암까지 피신해왔다. 축사와 사성암과의 거리는 약 1km.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올라오려면 1시간은 됨직한 거리였다. 물난리를 피해 뚜벅뚜벅 걸어 올라온 소들이 마애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는 유리광전 앞마당에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폭우를 뚫고 사찰을 찾은 이색 참배객들. 그들이 느꼈을 두려움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연신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에 지붕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기세고, 바닥에 고이기 시작한 물이 배 밑까지 차오를 때 소들은 탈출을 감행했을 것이다. 축사를 벗어나 난생 처음 마주하는 세상은 이들에게 호기심보다 두려움이 먼저 다가왔을 게 분명하다. 수소, 암소들이 바짝 붙어 이동하는 모습에서 대열을 이탈하는 순간 살아날 수 없다는 위기감과 서로가 서로에게 큰 위안이 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그 무리 곁을 따르는 앳된 송아지의 눈빛과 힘겨운 발걸음엔 공포가 뚝뚝 묻어난다.

불교에서는 온순하고 성실한 소를 인간의 성품으로 보았다. 소를 찾고 기르는 일이 곧 자기를 찾고 자기를 기르는 일과 동일시 여겼다. 부처님이 출가 전 불렸던 ‘고타마 싯다르타’에서 성(姓)인 ‘고타마(Gotama)’에도 ‘가장 뛰어난 소’라는 의미가 담겼다. 초기경전인 ‘생경(生經)’에 소와 관련된 일화가 나온다. 어느 먼 지방의 남자가 살찌고 힘센 큰 소 한 마리를 몰고 와서 사위성 사람들에게 팔고 있었다. 성 사람들이 소를 사서 제물로 바치려했다. 죽음에 내몰린 소가 쇠고리를 끊고 달아났다. 소는 곧장 부처님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부처님은 소의 전생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소 주인에게 자신이 직접 탁발해 두 배로 배상할 테니 소를 팔라고 부탁했다. 우여곡절 끝에 살아난 소는 부처님과 머물렀고, 7일 후 목숨이 다해 천상에 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삼국유사’에도 진표율사 앞에 달구지를 끌고 가던 소가 무릎을 꿇고 울었고, 이 소의 주인이 출가했다는 기록과 염불하다 승천한 노비 욱면이 전생에 소였다는 등 소와 관련된 일화들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집중호우로 사성암에 찾아든 소들뿐 아니라 폭우에 떠내려간 암소도 67km를 헤엄쳐 사흘 만에 구조됐다. 물난리를 피해 지붕으로 올라갔다가 구조된 소가 다음날 송아지 2마리를 낳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관련 보도나 댓글에서는 이들 소의 생명력에 감탄하며 이제는 안전하게 지내기를 바란다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면 이들 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얄궂게도 현대사회에서 소는 먹거리에 불과하다. 어미 뱃속에서 태어난 송아지는 축산업 발달로 28개월이면 300~420kg의 소로 키울 수 있다. 소에게 성장은 곧 죽음이다. 자연 상태에서 20년을 살 수 있지만 이제는 2~3년을 넘기기 어렵다.

축산업이 기상이변 및 온실가스의 주요 원인이고, 소 사육면적이 전 세계 토지의 24%라는 점, 소가 먹는 곡식으로 수억 명의 굶주린 사람을 먹일 수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부차적일 수 있다. 핵심은 그저 먹거리로 태어나 죽어가는 소가 매년 10억 마리가 넘는다는 무참한 현실이다.

편집국장
편집국장

소들에게 천재지변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어떤 모진 자연재해라도 살아날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인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소들의 비극적 숙명은 이번 폭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어미소나 앳된 송아지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소들에게 이 세상은 이미 탈출이 불가능한 공고한 아우슈비츠다. 그 지옥문을 여는 열쇠는 오로지 인간의 식생활이 채식으로 전환되는 데 있다. 그것은 오랜 세월 한국의 대승불교가 애써 채식을 지향해왔던 불살생 및 자타불이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mitra@beopbo.com

[1549호 / 2020년 8월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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