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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의 역설

기자명 민순의

내 유전자에 감사하게도, 그리고 그 유전자를 전해주신 부모님과 조상님들께 감사하게도, 나는 물욕이 없는 편이다. 새로운 물건을 보고 소유욕에 휩싸인 적이 별로 없다. 대신 지녀온 물건에 대한 애착은 강한 편이다. 혹자는 삶의 투영에 대한 과도한 의미화를 지적하기도 하나, 글쎄. 나의 애착은 오히려 애니미즘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 나를 잃고 홀로 남겨질 그 물건들의 쓸쓸하고 두려울 마음. 그것이 나는 그다지도 사무친다.

음식에 대해서는 이렇다. 식탐에 대한 자기 검열을 하곤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미식이나 과식에 대한 기호는 크지 않다. 다만 내 앞에 놓인 음식을 먹지 않고 버리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그는 제 존재를 내게 내어 주었는데, 내가 그를 온전히 먹지 않는다면 그의 존재를 건 희생은 어찌할 것인가. 하여 어지간히 배가 부르지 않는 한 가급적 내 몫의 그릇은 다 비우려고 한다. 동물성 단백질이라면 더욱 비장하다. 단 한 조각을 버리지 못한다.

과거에는 그랬을 것이다. 봄에 파종한 삼을 여름에 캐내어 줄기를 찌고 껍질을 벗긴 후 섬유를 빼 실을 뽑는다. 뽕잎을 주어 정성껏 기른 누에가 고치를 이루면 실머리를 찾아 가닥을 뽑고 여러 올을 꼬아 실을 만든다. 그 실들을 틀에 얹고 몇날며칠의 몸짓으로 씨와 날을 교차하여 천을 만든다. 풀이나 광물에서 어렵게 추출해 둔 염료에 담가 말리기를 또 여러 날. 그렇게 마련한 천 몇 조각을 자르고 기워 옷이 되었다. 그것을 어찌 쉽게 버리겠는가. 평생을 입고도 해지지 않으면 딸에게 손녀에게 물려주었을 것만 같다.

수제 두부의 공정 과정을 눈물겹게 지켜본 적이 있다. 밤새 불려둔 콩을 갈아 물을 넣고 끓인 뒤 베주머니에 넣어 짜낸다. 흘러나온 콩물에 다시 간수를 띄워 적당히 응어리지면 삼베를 덮고 돌로 눌러 굳힌다. 그렇게 해서 나온 두부가 고작 한 줌. 베주머니 속에 남은 콩 찌꺼기인 비지조차 너무나 귀하여 버릴 수가 없다. 모두가 늘 그랬을 것이다. 아마도, 과거에는.

아끼는 마음이다. 합리주의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애니미즘의 감성이든, 식재료가 된 그러나 한때는 살아있었을 그 만난 적 없는 동식물과의 난데없는 교감이든, 상상과 재현을 통해 구현된 노동의 결실에 대한 간절함이든, 모두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그래서 버릴 수가 없다. 낡거나 상하여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을 때 작별인사를 하고 보낸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더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필시 다른 모습으로 화할 너의 구성물과 에너지는 부디 이 세상 어딘가에서 다시 또 잘 살아가라고.

지난 몇 백년 동안 우린 너무 잊고 잃었다. 산업화와 대량생산은 인간을 편리하게 해주었지만 세분화된 분업 속에서 오직 눈앞에 놓인 물건만을 알 뿐 그 물건 이전의 존재를 망각하였다. 그들이 물품으로 가공되어 내게 오기까지의 시간과 과정을 잃어버렸다. 그 처음의 존재가 동물이든 식물이든 하다못해 광물이었다 할지라도, 모두는 저마다의 곳에서 자리 잡고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그 사실을 기억해낸다면 어찌 나의 소유품을 쉽사리 버리겠는가. 인간적 편익의 대가로 삼고자 어찌 그토록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애착의 역설을 생각한다. 아낌으로써 버리지 않고, 소중히 여기기에 도리어 쉬이 소유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는 애착을 버리라 하셨지만, 그분이 말씀하신 애착이란 보내야 할 것을 보내지 못하는 미련한 집착을 이르는 것이라 믿는다. 보내야 할 것만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아직 보낼 때가 되지 않은 인연이라면 곁에 두고 소중히 하여야 한다. 쉽사리 새 것으로 대체하려는 욕심 없이, 기존의 물건에 그리고 그 물건의 이전 존재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새 물건을 쉽게 많이 만들 수 없다. 소유의 책임과 무게가 그토록 무겁다.

민순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실장 nirvana1010@hanmail.net

 

[1549호 / 2020년 8월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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