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은 오온개공을 조견하지 않고 반야완성의 행 실천하며 조견했다
보살은 오온개공을 조견하지 않고 반야완성의 행 실천하며 조견했다
  • 심정섭 전문위원
  • 승인 2020.08.18 14:11
  • 호수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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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의 바른 이해’ / 김진태 지음 / 민족사
‘반야심경의 바른 이해’

“관자재보살께서는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의 수행을 실천하시면서 세간[五蘊]을 확실하게 잘 가려서 객관적으로 관찰하시었다. 그리하여 오온이 있는데, 그것들이 실체가 공하다[없다]고 확실히 보시고서, 모든 괴로움과 재앙을 극복하신다.…”

‘반야심경’ 첫 구절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에 대한 번역이다. 대부분 번역이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실 때 오온이 다 공함을 비추어보고 일체의 고액을 건넜다.…”로 시작되는 것과 차이를 보이는 이 해설은 15년 동안 미얀마의 여러 수행센터에서 위빠사나와 사마타 수행을 해온 김진태 박사가 산스크리트 원전에 근거해 풀어냈다.

“‘반야심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불교의 핵심 내용들을 정확하게 보게 되어 불교계가 교학과 수행, 그리고 신행생활의 내용들이 붓다의 바른 가르침으로 돌아가길 소망”하면서 펴낸 ‘반야심경의 바른 이해’는 첫 구절의 ‘조견’부터 기존 해석과 궤를 달리하고 있다.

저자는 산스크리트 원전에 근거해 조견이 뒷문장의 ‘오온개공’이 아니라, 앞문장인 ‘행심반야바라밀다시’에 연결되어 ‘조견’이라는 용어에서 이 문장이 끝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관자재보살은 오온개공을 조견한 것이 아니라, ‘반야완성의 행을 실천하시면서 조견하셨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조견’의 해석에 주목했다. 기존에 해왔던 것처럼 ‘비추어 보고 밝게 보아’ 정도로 해석하고 넘어가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고, 바른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왜곡된 경전해석이 정설처럼 굳어진 것은 동아시아에서 위빠사나 수행의 전통이 끊어진 때문”이라고 진단한 저자는 “조견이란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을 수행주제로 하여 제3자의 견지에서 예리하게 관찰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사띠를 기반으로 하는 위빠사나 수행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반야를 얻는 수행, 즉 위빠사나는 실재의 본성을 보기 위한 것이며 실재의 본성이 무상‧고‧무아라는 것을 통찰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기 위해 바로 지금 찰나의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을 잘 가려서 예리하고 분명하게 관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견’에 대한 해석을 이렇게 바로잡아야 ‘반야심경’이 제시하고 있는 열반을 향해가는 프로세스가 정립될 수 있다고 강조한 저자는 이와 함께 ‘공’과 ‘공성’이 다른데도 ‘공’이라는 한 글자로 한역됨으로써 빚어지는 혼란들을 원전에 근거해 정리했다. 

책은 ‘경전의 명칭’을 시작으로 ‘관자재보살의 반야완성의 수행’ ‘공의 관찰에 의한 괴로움의 극복’ ‘오온의 본성은 공성이다’ ‘공성의 특징을 가진 것들은 발생과 소멸 등이 없다’ ‘오온‧십이처‧십팔계의 본성은 공성이다’ ‘십이연기의 본성은 공성이다’ ‘사성제의 본성은 공성이다’ ‘반야의 완성에 의한 보살의 구경열반’ ‘반야의 완성에 의한 붓다의 무상정등각’ ‘반야바라밀다주의 효과’ ‘반야바라밀다의 주문’ 등 13개장으로 구분해 ‘반야심경’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을 읽은 후 불교를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질 수 있을지는 오롯이 독자 몫이다. 1만2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549호 / 2020년 8월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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