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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김윤환의 ‘평화의 소녀상’

기자명 신현득

우리역사 반성의 의미로 세운 소녀상
어린이가 그 앞서 나눈 대화 모은 시

소녀는 단발에 한복차림 맨발
고생으로 지친 듯한 누나 모습
누나는 꽃핀도 꽃신도 다 싫고
“죄 지은 자 눈물 사죄면 용서”

동심의 어린이가 공원에 와서 소녀상 앞에 섰다. 동심은 공원에 소녀상이 왜 세워졌는가를 안다. 일본이 이웃 나라인 한국 국토를 빼앗고, 국권을 빼앗았다.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두고 한국 사람을 짓눌렀다. 그러다가 욕심을 더 내어 전쟁을 일으켰다. 이것이 태평양전쟁이다. 그들은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이라 했다.

‘미영 격멸(米英擊滅)!’이라는 전쟁 구호를 내세웠다. 미국과 영국을 쳐서 없애자는 이 구호를 ‘베이에이 게끼메쯔’라 읽었다. “조선 사람을 짓눌러라. 짓누르면 나온다!” 소리치면서 총독부 하수인들이 집을 뒤졌다. 뒤져서 빼앗아가는 것을 ‘공출(供出)’이라 했다.    

‘밥그릇 공출’이다! 베이에이 게끼메쓰! 총알을 만들어야 한다며 놋기명을 빼앗아 갔다. 놋화로, 놋대야 할아버지 제사에 쓰는 제기를 모두 거두어 갔다. 뚝배기에 밥을 담아 먹는 수밖에 없었다.

농산물 공출이다! 베이에이 게끼메쯔! 군량미를 한다며 벼와 잡곡을 모두 공출로 거두어 갔다. 그래서 농사를 지어도 굶주려야 했다

아들공출이다! 베이에이 게끼메쯔! 징병제도를 만들어 젊은이들을 일본군으로 끌고 갔다. 징병 나이가 넘은 남자는 징용으로, 보국대로 끌고 가서 군수공장에서 일을 시켰다. 

그러다가 처녀 공출이 있을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처녀 공출! 

그 말이 들리자, 딸을 둔 집안에서 서둘러 딸을 결혼시켰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처녀, 그 밖의 사정으로 결혼을 서두를 수 없었던 소녀들이 처녀 공출에 잡혀갔다. 이것이 ‘정신대(挺身隊)’다. 그들의 말로는 ‘데이신따이’라 했다. 일본은 이렇게 죄를 지었다. 죄 값으로 전쟁에 진 것이다. 

“우리는 ‘데이신따이’ 그런 거 한 일 없으무니다!” 우리의 과거사 사과요구에 일본 수상의 뻔뻔스런 대답이다. 너무도 엄청난 국제 문제요, 인권문제요, 죄를 크게 지었으니 오리발 내밀기를 할 수밖에.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우리역사를 뉘우치는 뜻으로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것이다.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하며 세운 소녀상이다. 동시 한 편을 살피면서 모두 같이 “다시는…”을 마음에 다지자.

 

평화의 소녀상 / 김윤환

그 작은 주먹에/ 꽃을 주고 싶어요.
그 눈물 꽃수건으로/ 닦아주고 싶어요. 
그 잘린 머리카락에/ 꽃핀을 달아주고 싶어요
그 맨발에/ 꽃신을 신겨주고 싶어요.

하지만 누군가/ 눈물로 마음 깊이/ 사죄할 때까지
그 꽃도 꽃수건도/ 꽃핀도/ 싫어요/ 싫어요.      
소녀는 말해요./ 나는 나는/ 용서할 거야. 

그들이 눈물로/ 편지를 써온다면
마음의 꽃을 가져 온다면 
웃으며 맞이할 거야. 
김윤환 동시집 ‘내가 밟았어’(2018)에서
 

 

평화의 소녀상 앞에 선 어린이와 소녀상이 나눈 대화를 모은 대화법의 시 한 편이다. 소녀의 모습은 단발을 하고, 옷고름을 맨 한복 차림에 맨발이다. 스무 살이 못 된, 고생으로 지친 누나의 모습이다. 정신대에 끌려간 소녀들이 이러했다.

어린이는 지친 듯한 누나에게 말을 걸었다. “누나의 손에 꽃 한 송이를 쥐어주고 싶어요. 꽃수건으로 누나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요. 누나의 잘린 머리카락에 꽃핀을 꽂아주고 싶어요. 누나의 맨발에다 꽃신을 신겨줄까요?” 하고 말을 걸었다. 누나는 아니란다. 꽃도, 꽃수건도, 꽃핀도, 꽃신도 모두 싫다 한다. 죄지은 자가 눈물로 뉘우치는 편지 한 장과 마음의 꽃 한 송이라면 모두 용서하겠단다. 

시의 작자 김일환 시인은 안동 출신으로 ‘실천문학’에 시로(1989), ‘아동문학세상’에 동시로(2017) 등단, 시집 ‘그릇에 대한 기억’ 등과, 전기한 ‘내가 밟았어’ 등 동시집을 냈으며, 나혜석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549호 / 2020년 8월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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