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피켓을 든 이유
내가 피켓을 든 이유
  • 원영상 교수
  • 승인 2020.08.24 11:16
  • 호수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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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연 매연이 눈을 따갑게 한다. 수많은 차들이 내 앞을 지나간다. 익산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원광대사거리에서 나는 지난주부터 피켓을 들었다. 아침 8시에서 9시 무렵, 대중의 출근길목인 이곳에서 직접 호소하기 위해서다. 저번 주는 ‘1.5℃를 기억하자’, 이번 주는 ‘기후 위기⇒인류 멸종’이다. 말 대신 행동으로 나서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기후 문제의 원인은 드러났다. 화석연료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현상이다. 한 마디로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 

북극의 만년설과 빙하가 녹고, 호수에서 물고기가 떠오르며, 남태평양의 작은 나라가 물에 잠기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겪는 폭우, 폭염, 혹한, 대형 산불, 폭풍 등 자연재해는 기후 변화가 원인임은 이제 명백한 사실이다. 이러한 재난은 이미 상승한 온도로 인해 일상의 현상이 될 것이다. 코로나19 전파도 자연파괴와 기후변동 때문이다. 기후변동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이 권고한 2050년 전 세계의 탄소중립(이산화탄소 순배출 제로)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국립기상과학원 통계에 의하면, 한반도는 지난 100년간 세계의 두 배인 1.8도가 올랐다. 이대로 가면 지구는 2040년에 온도 상승의 마지노선인 1.5도를 넘어선다. 그 이후 지구의 몸부림은 상상이상이 될 것이다. 전문가들이 예측하듯 금세기말 5도 이상이 올라가면, 지구는 인간이 살 수 없는 불모의 땅으로 변해간다. 

저 멀리 넓은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출근 차량을 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일어난다. 끝없이 밀려오는 차들은 하나하나가 욕망을 대변한다. 어릴 때, 선생님들은 나뭇가지 하나, 나뭇잎 하나를 소중하게 대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이러한 가르침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국에 거미줄처럼 놓인 도로는 싹둑싹둑 잘린 산허리를 통과한다. 수많은 풀과 나무가 사라졌다. 국토건설이라는 명목 하에 산을 거침없이 훼손했다. 물의 흐름에 순응하며, 자연의 젖줄기인 강을 존중해야 함에도 이리저리 마음대로 헤집어 놓았다. 도대체 무엇이 자연에 대한 참된 윤리며 보은이란 말인가. 산사태로 사람이 묻혀 죽고, 강둑이 무너져 온 마을이 물에 잠기며, 자동차와 가축들이 떠내려가는 이 부조리한 현실은 왜 일어났는가.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지구를 거덜 내는 시스템이다. 자본의 욕망에 대한 비판이 봇물 터지듯 하여도 혁명적 전환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지구가 고통 받고, 세계대전만큼이나 인류가 죽어나가는 이 정도의 판국이면 세계의 종교와 정치 지도자들은 비상회의를 개최해야 함에도 말만 요란할 뿐이다. 모든 지표가 보여주듯 머지않아 파국에 이른다. IPCC 보고서는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연구 내용을 총망라하고 있다. 인류가 그렇게 신봉하는 과학을 왜 인간은 회피하고 있는가. 원인은 자명하다. 돈이다. 돈이라는 기호를 쟁취하는 욕망 때문이다. 이 허망한 기호에 중독된 인간은 지구의 자원을 착취하다가 스스로 소멸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긴 장마 동안 한없이 쏟아지는 창밖의 빗줄기를 보며, 나는 문득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골판지가 연구실에 있어 매직으로 글자를 썼다. 자존심은 버리자. 급조한 피켓이라도 들고 비상상황임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피켓을 든 지 며칠이 지나고 나서는 나 자신부터 참회해야겠다는 반성이 생겼다. 이 현실은 다 내가 저지른 것이 아닌가. 나의 욕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저 눈앞의 이익만 생각했지, 진정으로 제불제성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고 실천하며 살아왔던가. 아, 나는 나 자신에 대해 피켓을 들고 있다. 배기가스를 내뿜는 저 자동차 행렬 속에는 나도 들어있다. 의정불이(依正不二), 환경과 내 마음은 둘이 아니다. 지구의 환경은 내 마음이 만든 것이다. 심기일전하여 파괴의 힘을 재생의 힘으로 바꾸자. 무작정 서고 보니 끝을 기약하지 못했다. 인류가 독선에서 벗어나 오직 무아와 대아의 길로 갈수만 있다면 언제까지라도 피켓을 들고 서있을 생각이다.

원영상 원광대원불교학과교수 wonyosa@naver.com

 

[1550호 / 2020년 8월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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