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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쾌한 선(線)과 농담(濃淡)으로 풀어낸 선(禪) 이야기

  • 불서
  • 입력 2020.08.24 11:46
  • 수정 2020.08.24 13:18
  • 호수 1550
  • 댓글 0

‘선의 통쾌한 농담’ / 김영욱 지음 / 김영사

‘선의 통쾌한 농담’

“왜 절에 있는 소중한 불상을 태웁니까?”
“부처를 태워서 사리를 얻으려 하오.”
“어찌 나무로 만든 불상에 사리가 있겠습니까?”
“사리가 없다면 왜 나를 탓하시오?”

석두희천에게 머리를 깎고, 문수보살상 머리위로 올라가 목마를 타듯 앉은 일로 마조도일에게 ‘천연’이라는 법호를 받은 단하천연이 추운 겨울 목불(木佛)을 태운 이야기는 ‘경덕전등록’과 ‘오등회원’에 실려 널리 알려졌고, 관련해서 적지 않은 그림이 전해지고 있다. 그 중 원나라 화가 인다라의 ‘단하소불도’는 선승 초석범기가 지은 “옛 절 추운 겨울 하룻밤/ 바람 차고 눈 날려 견디기 어렵구나/ 이미 사리가 없거늘 어찌 특별하리오/ 다만 법당의 나무 불상 태웠을 뿐일진대”라는 시가 그림의 본질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어 오늘날에도 특별하게 여겨지는 작품이다.

옛 선지식들의 호쾌함을 담아낸 이 그림처럼 선종의 교리나 선종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을 ‘선종화(禪宗畵)’라고 한다. 그러나 선종 이야기를 전하는 특성상 언뜻 보아서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기 쉽지 않다. 부처님 가르침이 담긴 경전이 그렇듯, 선사들의 이야기가 스며든 선종화 역시 아는 만큼 보이기에 그렇다.

이 책 ‘선의 통쾌한 농담’은 호쾌한 선(線)과 농담(濃淡)으로 그려낸, 농담(弄談) 같은 선(禪)의 통쾌한 가르침을 풀어냈다. 옛 그림과 옛 노래로 마음을 공부할 수 있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선종화는 마음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지기 때문에 주관적이고 암시적이다. 선종화 속 인물들은 단지 이야기만 나누고 있거나, 텅 빈 하늘이나 꽉 찬 밝은 달을 보고 있거나 잠만 자기도 한다. 특별한 사건을 그린 장면도 있지만, 일상 생활을 그린 장면이 대부분이다.
 

중국 원나라 때 인다라가 그린 ‘단하소불도’. 쪼그려 앉은 단하 스님이 불상을 태운 불에 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면 묘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다.
중국 원나라 때 인다라가 그린 ‘단하소불도’. 쪼그려 앉은 단하 스님이 불상을 태운 불에 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면 묘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다.

저자는 2018년과 2019년 2년에 걸쳐 법보신문에 옛 선사들의 선시를 빌려 옛 선종화에 담긴 이야기와 선종의 교리를 쉽게 풀어낸 ‘선시로 읽는 선화’를 연재했다. 연재를 하면서 점차 모든 그림이 마음에 관한 이야기임을 알게 된 저자는 마치 그림을 그린 화가가 “깨달음이란 이런 것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 느낌을 살려 쓴 연재 글을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선의 통쾌한 농담’이다.

‘왜 스님은 강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내를 보고만 있을까’ ‘왜 스님은 매서운 얼굴로 한 손엔 장검을, 한 손엔 고양이를 그러쥐고 있을까?’ ‘왜 사내는 경전을 찢으며 호기롭게 웃고 있을까?’ ‘왜 원숭이들은 물에 비친 달을 향해 손을 뻗고 있을까?’ 등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한중일 옛 그림 속에 숨은 이야기를 선사들의 시와 함께 흥미롭게 담아냈다.

선종화의 개념을 폭넓게 정의해 선종의 교리나 사상과 연관되는 몇 점의 도석인물화까지 추가해 전체 39편의 글을 엮은 책은 3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1장은 당나라 말기부터 오대 때 활동한 조사들의 여러 행적과 어록을 중심으로, 옛 선승이 자신의 제자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일화를 그린 선회도(禪會圖)와 선을 깨닫게 되는 계기를 그린 선기도(禪機圖)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어 2장은 ‘마음’을 주제로 13점의 선종화를 통해서 무엇이 마음이고, 어떻게 하면 마음이 어딘가에 얽매이거나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고심했던 옛 선지식들의 생각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3장에는 산성(散聖)과 일상적인 스님들의 모습을 그린 선종화를 모았다. 산성이란 법도에 구애받지 않고 기이한 행동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인물들을 말한다. 이 장에 제시된 그림들은 비록 중요한 경전이나 훌륭한 스승이 없더라도, 자연과 일상 속에서 마음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저자는 선종에 낯선 독자들을 위해 선종 법맥의 계보를 덧붙이고, 선종이 어떤 종교이며 선종의 이야기와 교리를 담아낸 선종화가 어떤 그림인지를 짧게 정리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때로는 엉뚱하고 때로는 지극히 당연하여 마치 농담을 주고받는 것 같은 선사들의 심오한 이야기를 수묵의 선과 농담으로 그려낸 선화를 선시와 함께 풀어낸 책에서 선의 통쾌한 가르침을 만날 수 있다. 1만78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550호 / 2020년 8월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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