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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봉화사 주지 원상 스님

부처님이 세운 ‘불교’ 학교서 스스로 지혜 완성해 행복 얻어야

우리 사는 세계는 번뇌 망상 참고 견뎌야 하기에 사바라 불려
수승한 복 많이 지어 인간 세상 왔으니 원력 세워서 수행해야
염불이 바로 극락왕생 지름길이고 부처님 되는 최고 수행법

반갑습니다. 나무아미타불. 합장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시방삼세 부처님과 팔만사천 큰 법보와 보살 성문 스님들께 지성 귀의하옵나니 자비하신 원력으로 굽어살펴 주옵소서. 여러 생 지은 업장 크고 작은 많은 허물 삼보전에 원력 빌어 일심참회 하옵나니 바라옵건데 부처님이 이끄시고 보살님네 살피옵서 고통바다 헤어나서 열반 언덕 가사이다.”

사찰에서 조석으로 올리는 ‘이산 혜연선사 발원문’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방금 얘기했듯이 “열반 언덕 가사이다.” 여기에 있습니다. 불교 수행을 하는 목적입니다. 열반 언덕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금생에 명심견성(明心見性), 나의 마음을 청정히 해서 본래 성품을 보게 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열반 언덕에 이릅니다. 또 한 가지는 극락세계 아미타부처님 세계에 태어나면 바로 거기에서 열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극락세계는 아미타부처님이 계신 곳입니다. 극락세계는 일체 고통이 없고 즐거움만 있는 세계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온통 번뇌 망상이 들끓고 고통이 쉬지 않습니다. 그래서 “참고 견뎌내야 산다”라고 해서 사바(娑婆)라고 합니다. 이 고통스러운 세계에 왜 왔습니까? 일체 고통이 없는 극락세계를 놔두고 왜 여기 오셨습니까?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업력으로 온 것입니다.

그래도 인간 세상에 오신 것은 굉장히 수승한 복을 많이 지으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원력이 없으면 금생을 마치고 나서 어느 생에 어떠한 몸을 받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말씀드려도 먹고 살기가 바쁘다며 원력을 세워 수행할 겨를이 없다고 합니다. 조금 먹고살게 되면 또 놀기 바빠서 수행의 원력을 세울 겨를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목적을 행복이라고 합니다. 세상에서는 건강하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그런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사람이라도 늙음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병도 피해갈 수 없고 죽음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또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피할 수 없고 번뇌 망상은 죽 끓듯이 해서 하루라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행복이라고 추구하는 게 행복의 반쪽도 안 됩니다. 이 반쪽도 안 되는 행복을 평생 구하지만 결국 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박복한 중생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전생에 보시와 인욕 또 다겁생 동안 정진하셔서 복을 많이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는 복을 다 갖고 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생각하실 때, 우리가 바라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님을 아셨고 출가를 하셔서 마침내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이루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도 않고,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모든 것을 얻으신 분입니다. 이것을 열반(涅槃), 영원한 행복이라고 합니다. 어원적 의미는 불길이 꺼진 상태를 말합니다. 타오르는 불길을 끄듯이 지혜로 우리의 내면에 일어나는 번뇌 망상 일체를 소멸해서 고뇌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열반의 뜻으로 경전에서는 섬이라 쓰기도 하고 피난처라 쓰기도 하고 안전이라 쓰기도 하고 평화, 불사, 죽지 않음, 이런 뜻으로도 쓰입니다. 정리하자면 열반은 절대 편안함, 조금도 고통이 없는, 불편함이 없는 편안함 그리고 절대 즐거움, 최고의 즐거움, 이 상태입니다. 

여러분께서도 바로 그런 것을 해보고 싶으십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 세우신 학교가 있습니다. 바로 ‘불교’입니다. 이 사바세계의 고통받는 중생을 위해서 부처님께서 세우신 학교입니다. 불교라는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우리도 부처님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졸업장을 받기가 힘듭니다.

불교 학교의 특징은 스스로 지혜를 완성해서 영원한 행복을 얻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그냥 주는 것이 아닙니다. 팔정도(八正道), 육바라밀(六波羅蜜) 이렇게 지혜를 완성할 수 있는 구체적인 수행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수행을 하기 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건물을 지으려면 기초 공사를 먼저 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로 발보리심(發菩提心)입니다. 

발(發)은 보리심을 낸다는 의미입니다. 즉 보리심이 있어야 합니다. 보리심은 부처님과 같은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수행한다, 부처님과 같은 행복을 이루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보리심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저 앞산을 보기만 하고 가겠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보리심이 없으면 열반의 언덕에 오를 수 없습니다. 보리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입니다. 다겁생 동안 하다못해 미물이라고 할지라도 부모, 형제, 친척, 친구가 아닌 분이 없었다고 보는 겁니다. 다행히 우리는 인간 몸을 받았지만, 이 삼악도에 떨어진 중생이 정말 우리 부모라고 생각했을 때 어떤 마음이 일어나겠습니까? 구제하겠다는 마음이 일어나겠지요. 그래서 보리심은 바로 자비심(慈悲心)에서 생깁니다. 

이렇게 되어야 불교라는 학교에 들어온 학생으로서 기본적인 자격이 갖춰집니다. 일체의 중생을 불쌍히 여기고 일체의 중생을 향한 보리심을 내는 것 그리고 부처님 같은 깨달음을 얻겠다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경배하고 절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현재의 마음을 스스로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전생에 지어 놓은 인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가르침이 바로 불교라는 학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문제입니다. 학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공부입니다. 더군다나 부처님 공부는, 열반에 이르는 이 공부는 어렵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응병여약(應病與藥), 대기설법(對機說法)을 하셨습니다. 응병여약이라는 것은 병에 따라서 약을 주었다, 대기설법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능력에 맞춰서 설법하셨다, 이것입니다. 

바로 수많은 수행법이 있는 이유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눈높이 교육을 부처님께서 하신 겁니다. 참선도 좋고 염불도 좋고 절도 좋습니다. 많은 수행법 중에서 무엇인가 하나를 갖고 정진을 하시기 바랍니다. ‘법화경’에 보면, 상불경보살품이 있습니다. 상불경보살은 경전도 안 읽었습니다. 참선도 안 했고 절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하신 것이 딱 하나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을 존경합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하고 공경하셨는데 성불하신 겁니다. 

저는 기복 불교에서 수행 불교로 바뀌어야 하고 산중 불교에서 가정 불교로 바뀌어야 하며 초하루나 입재와 회향이 있는 특정 법회보다는 일상생활 속 불교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불교가 첫째 쉬워야 합니다. 집에서 혼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재미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간단해야 합니다. 복잡하면 어렵습니다. 물론 세상에도 그런 것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법에 어긋나지 않는가, 정법에 맞는가를 따져야 합니다.

‘자비송 염불명상’에는 이 같은 특징을 담았습니다. 첫째 정법에 맞는 자비심과 보리심을 계발할 수 있습니다. 둘째 쉽고 간단하고 재미있어서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유치원생도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적든 많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요일별로 세상과 나를 보는 관점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요일별 자비의 실천을 목적으로 삼아 염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자비송 염불명상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자기 연민의 날입니다. “내가 행복하기를, 나무아미타불.” 일요일은 나의 행복을 위하는 날입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를, 나무아미타불.” 월요일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날입니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화요일은 어떤 것에도 감사하는 날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냥 감사를 찾으면 감사할 일이 있습니다. “얼굴의 미소 마음의 평화, 나무아미타불.” 수요일은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입을 귀에 걸고 다니는 날입니다. 

그다음 목요일과 금요일은 타자를 위한 연민입니다. “당신이 행복하기를, 나무아미타불.” 목요일은 당신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날입니다. 이제 주위를 돌아보는 날입니다. 당신을 위해서, 바로 자신의 옆 사람을 위해서,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 배려하고 봉사하는 날입니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나무아미타불.” 금요일은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날입니다. 이 우주 전체 중생을 위해서 자비심을 내는 것입니다.

마지막 토요일은 보리심을 키우는 날입니다. “원왕생 친견미타(願往生 親見彌陀) 나무아미타불.” 즉 염불하는 날입니다. 불교 학교 학생들의 본분이 무엇입니까? 바로 열반 언덕에 이르는 것,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금생에 명심견성을 해서 자신의 본성을 보면 열반 언덕에 도달하는데 우리는 그런 근기가 못되니까 평생 성질내는 것 하나 버리기도 바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수행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서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이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극락세계는 한번 태어나면, 윤회하지 않습니다. 거기서 성불하여 중생을 구제하고 싶으면 관세음보살처럼 지장보살처럼 원력을 가지고 사바세계에 다시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주일 단위로 반복해서 수행하면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일주일이 편안하면 한 달이 편안합니다. 한 달 한 달이 편안하면 일 년이 편안하고 일 년이 편안하면 평생이 편안합니다.
이 수행법은 유튜브에도 올려 두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전통 수행법의 고수도 좋지만,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의 목적, 열반에 이르는 것, 성불하는 것은 변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 부처님을 롤모델로 삼아야 합니다. 부처님을 롤모델로 삼은 사람은 부처님을 한시라도 잊지 않습니다. 염불은 부처님을 기억하고 한시라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염불이 바로 극락왕생의 지름길이고 부처가 되는 최고의 수행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상으로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8월2일 하동 봉화사에서 봉행된 ‘1000일 염불명상기도 회향법회’에서 주지 원상 스님이 설법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550호 / 2020년 8월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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