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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양기의 등잔과 보수의 생강

기자명 정원 스님

스님들이 돈 만져서 승가 오염되는 것 아니다

출·재가자 계율 이해 부족과
인과응보 믿지 않는 게 원인
공사 구분은 절집 기본 문화
불교개혁 출발은 율장 실천

승가가 오염되는 이유가 스님들이 돈을 만져서라는 주장은 일견 맞기도 하고 일견 틀리기도 하다. 해결책으로 스님들은 수행에만 전념하고 사찰재정은 재가자가 관리해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은 문제의 핵심을 꿰뚫지 못한 것이다. 스님들이 돈을 만져서 문제라면 늘 본받자고 하는 대만불교는 더 오염돼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인구는 우리나라 절반 밖에 안 되지만 승가나 스님들에게 보시되는 시주 금액은 훨씬 많다. 정확하게 말하면 스님들이 돈을 만져서 승가가 오염되는 것이 아니라, 출가자와 재가자 모두 계율에 대한 이해 부족과 인과응보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산문에 들어와 머리를 깎을 때는 누구든 세속적 욕망과 윤회의 굴레를 벗어버리겠다는 발원 한 번쯤은 했을 것이고 상구불도 하화중생에 대한 원력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 한때는 열심히 경전을 보고 나름 수행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법랍이 더해지고 역할이 바뀌면서 순수했던 출가의 마음이 약해진 것일까? 개개인의 오염 인연이야 무엇이든 간에 승가가 전체적으로 비난 받는 근본원인은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계율을 소홀히 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늘 깨어 있지 않으면 출가자조차 세속적 사고와 명리를 추구하는 욕망에 대적하지 못하고 금권과 이양을 따라가다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율장에 제시된 지계기준과 인과의 도리를 소홀히 하면 심지어 삼보정재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큰 죄업을 짓기도 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훔치는 죄에 대해 상세하게 규정해 경계시켰다. 일반적으로 돈의 거친 유혹은 재가자들을 더 무섭게 오염시킬 수 있다. 금액이 적을 때는 공정하기가 쉽겠지만 1억원, 10억원 등으로 단위가 높아져도 사심 없이 공정하게 잘 관리할 수 있는 일반인이 과연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과 포교를 하면서 시줏돈으로 건물불사도 하고 인재불사도 하고 있다. 대다수 스님들은 시주의 무게와 인과의 도리를 잘 알기에 아무리 적은 금액도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삼보를 위해 쓰므로 공덕을 쌓는다. 출가자는 삼보에 공양된 것들을 잘못 사용하면 삼악도에 떨어지는 업의 과보뿐 아니라 계를 범한 죄의 과보까지 합한 이중과보를 받아야 한다. 계율을 삶의 기준점으로 두고 인과의 도리를 확신한다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경계선은 너무나 명확해진다.

불교개혁을 논하는 이들이 율장의 실천을 담론 주제로 삼지 않는다면 누가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승가가 직면하는 숱한 문제들의 근본적 해결이 어려울 것이다. 계율제정의 목적을 제대로 인식하고 수행자로서 절대로 넘지 말아야할 선이 어디인지를 뼛속까지 깊이 각인시킨 후에 자신의 수행방식이나 환경에 맞게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불자들은 오계와 팔계를 형식적으로 받아 지닐 것이 아니라 불법의 생명수처럼 실천해야 한다. 이런 기본을 충실히 하는 풍토를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는 물질과 인간에 유혹당할 가능성은 출재가 어느 쪽에나 있기 마련이다.

공사의 구분이 철저했던 일화가 있다. “楊岐燈盞明千古하고 寶壽生薑辣萬年이라네. (양기의 등잔은 천고에 밝게 빛나고, 보수의 생강은 만년 동안 맵다네)"

선종의 양기파를 일으킨 방회 선사는 사중소임을 처리할 때 사용하는 등잔과 사적으로 쓰는 등잔을 구분하여 사용했다. 물품창고 관리소임을 보던 보수선사는 방장스님이 아파서 생강을 가지러 온 시자에게 상주의 공유물은 설사 방장스님이라도 그냥 내줄 수 없다하여 방장스님이 값을 치르고 나서야 내주었다. 이렇듯 명확하게 공과 사를 구분하고 살았던 선배들의 정신은 최근까지도 살아있던 절집의 기본문화였다. 지금이라도 이런 정신을 회복해야 스님들이 억만금을 만지더라도 삼보를 옹호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에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정원 스님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shamar@hanmail.net

 

[1550호 / 2020년 8월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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