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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문제의 본질

  • 법보시론
  • 입력 2020.08.31 11:44
  • 수정 2020.09.02 13:45
  • 호수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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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재난의 상황이 더욱 심각한 지경으로 접어들었다. 국가적으로 힘과 지혜를 모아 대처해야 할 마당에 우리의 현실은 견해와 주장의 차이로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정치와 종교적 신념의 차이에 따른 갈등과 혼란이 이제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방역의 문제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각자의 입장과 이해관계의 차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명백한 사실 자체를 다르게 보고 해석함으로써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은 어둡기만 하다. “사람들이 믿지 않으면 설 곳이 없다”고 하는 공자의 말이 실감나게 느껴지는 현실이다. 이처럼 극단적인 불신에 뿌리를 두고 있는 불통의 상황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할지 잠시 생각해 본다.

대체로 사람들 사이 견해의 차이는 사실에 대한 이해의 차이와 신념의 차이에 기인한다. 신념의 차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개인적 취향에 따른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각자 자신의 신념을 따르는 것을 이해하고 존중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 자체로 하나일 뿐 서로 다른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없으므로, 사실에 관한 견해의 차이는 관찰하고 따져서 증명하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분명하게 판명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실을 잘못 이해한 사람은 잘못을 인정하고 견해를 수정함으로써 공통된 이해의 바탕을 마련할 수 있다. 기본적인 사실에 대한 공통된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에 비로소 대화와 협력의 길이 열린다.

그런데 감염 여부와 같이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을 가지고 부정·왜곡·은폐·과장과 같은 반사실적인 언행들이 넘쳐나면 상황의 정리와 대처가 어렵게 된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갈등과 혼란은 이처럼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발단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공통된 이해를 확립한다면 금방 잠재울 수 있다. 고통이 있으면 먼저 고통의 증상을 숨김없이 정확하게 진단하여 밝힌 다음 그 원인을 과학적으로 추적해서 원인을 찾아내고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고통을 제거할 수 있다. 이것은 바로 붓다가 고통으로 가득한 현실의 문제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제시한 기본적인 가르침이다. 사실의 확인은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사실검증위원회 같은 기구를 통해서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쓸데없는 논쟁과 갈등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사적인 의도와 음모를 가지고 반사실적인 주장을 펴는 사람들 또한 횡행하지 못할 것이다. 상호불신으로 가득 찬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만들고 거짓을 추방하며 대화와 협력의 바탕을 여는 길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신뢰할 수 있도록 정확하게 밝히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방역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사실과 과학의 문제이다.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신념과는 본질적으로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혹은 종교적으로 문제를 해석하거나 다루지 않아야 한다. 또한 지금은 책임의 소재가 어디에 있느냐를 따지고 논할 때가 아니라,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과학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때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실을 정확하게 진단해서 밝히고 그 사실에 바탕해 과학적으로 해법을 찾아가야 한다. 우리나라가 초기에 방역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도 바로 사실 자체를 은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밝혔던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발표하는 사실 자체에 대한 불신과 이견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것을 불식하지 않고서는 방역에 힘을 모아 효과적으로 대처하기가 어렵다. 이 부분을 보다 설득력 있고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주었으면 한다. 문제상황을 해결하는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처방은 의학과 과학의 전문가를 중심에 두며 전체적인 영향까지 고려하는 열린 논의를 통해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전염병의 2차 대유행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처한 오늘의 상황에서 사실에 대한 정확한 공통된 이해를 기반으로 극단적인 불신과 갈등을 벗어나 힘과 지혜를 모아 함께 과학적으로 대처해 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영근 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yunjai@seoultech.ac.kr

[1551호 / 2020년 9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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