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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른의 진면목 보여준 한암 스님을 만나다

  • 불서
  • 입력 2020.08.31 12:02
  • 호수 1551
  • 댓글 0

‘시대를 초월한 성자, 한암’ / 자현 스님 지음 / 불광출판사

‘시대를 초월한 성자, 한암’

1925년 왜색 승려들이 설치는 꼴을 보다 못해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춘삼월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며 오대산으로 들어가 26년간 동구불출하며 ‘오대산 학’으로 불린 한암 스님. 스님은 1876년 3월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유교경전을 공부하며 세상과 인간의 근원에 대한 의문을 갖고 살다가 22세에 금강산 유람 중 돌연 입산 출가했다. 

금강산을 떠나 성주 청암사에서 운명처럼 근대 선의 중흥조 경허 스님을 만났고, 경허 스님의 ‘금강경’ 설법 중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다. 만일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닌 줄을 알면 곧바로 여래를 볼 것이다(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는 대목에서 깨달음을 맛보고 수행정진을 이어갔다. 이후 해인사에서 경허 스님이 “원선화(遠禪和, 한암)의 공부가 개심(開心)의 경지를 지났다”고 공표함으로서 인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스님은 그렇게 선 수행으로 경지를 인정받았음에도 후학들에게 “경은 노정기(안내서)요, 선은 행함이니 오랫동안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며 열심히 경을 읽고 수행할 것을 독려했다. 그리고 자신의 깨침이 경전 열람이라는 계기에서 나왔음을 밝히면서도 “참선을 거쳐야만 교학의 진수를 얻을 수 있다”며 선 수행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도록 지도했다.

스님의 수행정신은 이처럼 교와 선을 일치하는 교선일치, 정혜쌍수의 특성이 두드러진다. 때문에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쌍수를 계승한 선지식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렇게 교선일치, 정혜쌍수의 특성을 드러내면서 대중의 존경을 받아온 스님은 조계종 창종 때 초대 종정으로 추대되는 등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종정(교정)을 역임하며 근대 한국불교 기틀 확립을 이끌었다. 또한 스님은 이른바 승가오칙이라 하여 “참선, 간경, 염불, 봉사, 포교 등 다섯 가지를 잘해야 한다”며 시대를 앞서 불교의 나아갈 바를 강조했었다. 

더불어 스님이 “절집을 떠나지 말아라. 대중처소에서 생활해라. 인과를 분명히 하는 생활을 해라. 중으로서 지켜야 할 다섯 가지를 참여하지 못하면 중이 아니다”라고 당부했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깊이 새기고 따라야 할 지남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선과 교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으며, 출가수행자의 삶을 오롯이 보여 온 스님은 말 그대로 선지식이요, 대중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어른이었다.

한암 스님은 선교일치·정혜쌍수의 특성을 드러내며 삶 자체로 후학들을 지도했던 참 어른이었다.
한암 스님은 선교일치·정혜쌍수의 특성을 드러내며 삶 자체로 후학들을 지도했던 참 어른이었다.

‘시대를 초월한 성자, 한암 : 조계종의 초석을 정립하다’는 바로 어른이 사라진 오늘날 한국불교에서 영원한 어른으로 기억되는 한암 스님의 삶과 가르침을 조명하고 있다. ‘종교는 사회를 계몽하고 맑혀야 한다’는 본질에 근거해, “경허의 가르침은 배우되 행실은 답습하면 안 된다”고 스승을 비판할 정도로 출가수행자의 본질을 강조하고, 스스로 본보기를 보여 온 한암 스님을 오롯이 만날 수 있도록 자현 스님(중앙승가대 불교학부 교수)이 엮었다.

‘한암의 생애와 활동’ ‘한암의 깨달음과 선관(禪觀)의 특징’ ‘한암의 교육관과 실천방식’ 등을 주제로 엮은 책에서 태평양전쟁을 벌이던 일본 총독부가 전쟁의 승리 여부를 묻자, “덕 있는 나라가 이긴다”며 “마음을 바르게 하라”고 했던 이야기, 국군이 후퇴하면서 상원사를 불태우려 할 때 가사‧장삼을 수하고 법당에 정좌한 후 “군인은 명령을 따르면 되고, 승려는 죽은 후 화장하는 것이니 어서 불을 지르라”고 했던 이야기 등의 일화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아침 새벽예불에 빠지지 않고 선 채로 2시간의 관음정근에 참여하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선원 대중방에서 반듯하게 앉아 지내고, 일생을 계율에 맞춰 오후 불식했던 스님의 면모에서 진정한 선지식의 삶을 만날 수 있다. 

어른은 사라지고 꼰대만 가득한 세상에서 스승의 발밑이 시원하고 가르침의 그림자가 포근한 어른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엿볼 수 있는 기회다. 3만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551호 / 2020년 9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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