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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아들 라훌라를 교화하다 ①

선한 벗은 스승과 함께 깨달음의 전부

출가자 갖춰야 할 덕목은
꼭 선한 친구와 사귀는 것
선한 친구 사귈 수 없다면
무소 뿔처럼 혼자서 가야

옛말에 자식은 선생을 찾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아무리 학식이 높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도 자기 자식을 가르치는 일은 어렵다는 의미이다. 그 이유는 ‘감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감정이 앞서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면 말과 행동에서 어긋남이 발생한다. 그러면 가르치는 일은 물 건너가는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부처님에게는 출가 전 태어난 아들이 있었다. 이름이 라훌라(Rāhula)이다. 라훌라는 불교사 최초의 동자승이기도 하다. 라훌라가 7살 때, 부처님은 모국인 까삘라왓뚜를 방문하신다. 이때 유산을 달라고 하는 어린 아들을 출가시키게 된다. 

어린 라훌라에게 출가수행이란 것이 쉬울 리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무려 부처님이 아닌가. 어린 마음에 다른 수행자들의 말을 쉽게 들었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라훌라에게 부처님은 여러 차례 자비로운 가르침을 준다. 그중의 하나가 ‘숫따니빠따(Suttanipāta)’에 나오는 ‘라훌라의 경(Rāhulasutta)’이다. 그 내용을 소개해 보자.

[붓다] 늘 함께 살고 있다고 현자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냐? 사람들을 위해 횃불을 든 자를 너는 존경하고 있느냐?(Sn.335)
[라훌라] 늘 함께 살고 있다고 현자를 무시하는 일은 없습니다. 사람들을 위해 횃불을 든 자를 저는 언제나 존경합니다.(Sn.336)

우리가 범하는 오류 가운데 하나는 존경할 만한 사람을 멀리서 찾는 것이다. 늘 만나는 사람 중에 진짜 나의 인생에 소중한 사람이 있고, 스승이 있으며, 감사한 사람이 있음에도 미처 알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는 경우가 있다. 부처님은 이제는 출가수행자가 된 어린 라훌라에게 이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출가수행자에게 특히 중요한 덕목은 겸손이며, 존경해야 할 사람을 존경할 줄 아는 태도이다. 출가수행자가 아만심이 높으면 수행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며, 존경할 줄 모르면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아들인 라훌라에게 이렇게 당부하신다.

[붓다] 믿음을 가지고 집을 떠났다면, 사랑스럽고 마음을 즐겁게 하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대상들을 버리고, 괴로움을 종식시키는 사람이 되어라.(Sn.337)
선한 벗과 사귀어라. 인적 없이 외딴 곳, 고요한 곳에서 거처하여라. 그리고 음식의 분량을 아는 사람이 되어라.(Sn.338)
인상을 여읜 경지를 닦아라. 교만의 경향을 버려라. 그리하여 교만을 그치면 너는 고요하게 지내게 되리라.(Sn.342)

붓다의 위 말씀은 출가수행자로서의 라훌라와 아들인 라훌라에 주는 가르침을 모두 보여준다. 그 중에서 붓다는 특히 출가자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출가자는 무엇보다도 ‘감각적 쾌락을 불러일으키는 욕망의 대상’에서 떠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몸만 출가한 채 재가의 삶을 사는 이중적인 생활로, 깨달음의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한결같이 당부하시는 것 가운데 하나인 ‘선한 친구’와 사귀라는 가르침이 나온다. ‘코뿔소의 경’에서 부처님은 ‘선한 벗’이 없다면 차라리 ‘홀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선한 벗은 선한 스승과 더불어 깨달음의 전부라고 부처님은 누누이 말씀하신다. 더불어 음식의 분량을 안다는 것은 욕망을 통제하는 방식을 훈련하는 것이다. 음식에 탐착하는 버릇에서 벗어남은 수행자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그리고 교만이란 번뇌(수면, anusaya)를 버리게 되면 고요해진다는 가르침을 통해 처음 부처님이 질문하셨던 ‘현자를 무시하지 않느냐’는 내용을 다시 되새기게 한다.

부처님은 사랑스런 당신의 어린 아들을 위해 여러 차례 법문을 하시는데, 그 내용은 한결같이 수행자의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이다. 이를 통해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안내함으로써 어린 아들이 온전한 수행자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그 모습에서 자애로운 아버지(慈父)를 보게 된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51호 / 2020년 9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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