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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1965)

영원한 안식에 당도하기 위해 떠나는 로드무비

페르디낭과 마리안, 권태로부터 파리 탈출해 섬으로 도피
독서와 글쓰기·범죄적 일탈로 반복되는 일상 탈출구 마련
인생을 프레임에 소환하고 불교 정신 우회적으로 담아내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는 심리적 열반, 영원성의 성취를 담은 로드무비다. 사진은 영화 ‘미치광이 피에로’ 스틸컷.

감염의 시대는 격리의 시간이다. 강의는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회의도 작은 화면에서 진행한다. 격리의 시대에 집은 안식처이기 보다는 갑옷처럼 일상을 구속한다. 장 뤽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는 일상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도시를 떠나는 로드무비다. 이 영화는 도시의 권태로부터 탈출하는 중산층 남자 페르디낭(장 폴 벨몽도)과 신비한 마리안(안나 카리나)의 파리 탈출기다. 그들에게 파리는 미궁이며 아리아드네의 실은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이다. 그들은 우연한 살인에 연루되어 도시에서 탈출하여 프랑스 남부의 포르크롤 섬으로 도피한다. 그 섬은 육지로부터 자유롭지만 인간의 완전한 안식을 제공하지 못한다. 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안식을 방해한다. 

마리안은 페르디낭을 미로에 갇힌 삶에서 벗어나게 하는 안내자이다. 두 사람이 탑승한 자동차는 신호등 색이 바뀌면서 파리와 현재의 시공간을 벗어난다. 그들의 관계는 아이를 돌보는 보모와 주인에서 오래 전에 인연이 닿은 연인으로 바뀐다. 그들은 테세우스가 되고 아리아드네가 되어 삶의 미궁에서 탈출한 것이다. 그들은 무의미로 가득한 규격화된 삶으로 벗어난다. 

페르디낭은 마리안과 사랑의 도주라는 통로를 통해 일상의 무의미함에서 유의미한 삶으로 이전한다. 세상과 결별하고 그들은 짧지만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정신의 거처를 찾는다. 그곳은 이에르의 포르크롤(porquerolles) 섬이다. 섬은 바다가 품은 알처럼 인류의 모태(바다) 위에 떠 있다. 그들은 마침내 미궁같은 도시에서 벗어나 안온한 곳으로 회귀한다. 세상의 미궁에서 호흡 곤란을 느낀 그들은 파리에서 탈출하여 어머니의 뱃속인 포르크롤로 거슬러가 정신의 짐을 내려놓는다. 두 남녀는 달빛을 받으면서 바닷가 해변에서 태아처럼 웅크리며 누워있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적 합일은 시간의 부식을 견디지 못하고 파열된다. 결국 마리안은 섬에서 삶의 권태라는 복병으로 인해 ‘나는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읊조린다. 그리고 파도처럼 밀려드는 권태에 굴복하여 “바다도, 태양도, 산도 모두 지겨워”라고 실토하기에 이른다. 남녀의 순일한 합일 상태도 반복된 일상이 주는 권태라는 파도 앞에 속수무책이다. 또 다른 탈출구를 페르디낭은 독서와 글쓰기로, 마리안은 범죄적 일탈로 마련한다. 마리안은 페르디낭을 일상에서 범죄 속으로 징집한다. 

저명한 영화평론가 이효인 선생이 ‘멜랑콜리 연남동’이라는 첫 소설을 출간하였다. 영화 감독과 해병대 특수부대 출신 남성이 주인공이다. 특수부대 출신 청수는 숨이 붙어있는 동안 ‘사랑의 완성’을 삶의 숙제로 여긴다. 그의 사랑은 “누구를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사랑을 불태워 버리는 것 그래서 세상에 대한 아무런 미움도 애정도 갖지 않고 죽는 것”이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미치광이 피에로’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으며 이 장면에 대한 소설적 해석으로 다가왔다. 모든 감정을 소멸하고 맞이하는 죽음은 심리적 열반과 가까워보였다. 페르디낭의 자기를 찾는 로드 무비는 불교의 수행과 겹쳐졌다.     

권태와 옛 연인에 대한 미련으로 섬을 떠났다가 다시 항구로 돌아온 마리안과 페르디낭은 배에 승선하면서 ‘페페 르 모코(pepe le moko)’를 읊조린다. 줄리앙 뒤비비에의 ‘망향’의 원제목이며 이 영화는 선원과 카페 여급의 사랑이야기다. 마지막 장면에서 카페 여급은 배로 떠나고 경찰에 잡힌 페페는 떠나는 여성을 바라보며 자살한다. 마리안과 페르디낭의 다가올 미래를 대사로 암시한다. 밀거래를 마친 페르디낭과 마리안은 감정이 고조되어 큰 원을 그리면서 자동차로 질주하며 키스를 한다. 프랑수와 트뤼포의 ‘쥘과 짐’에서 카트린느가 밖에서 짐을 기다리면서 자동차를 거칠게 운전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결국 카트린느는 짐을 태우고 다리 밑으로 추락한다. 두 장면은 ‘미치광이 피에로’의 마지막 장면을 예시한다. 그것은 페르디낭의 자살과 연인의 죽음을 암시한다. 페르디낭은 마리안과 그녀의 연인을 사살한다. 그리고 페르디낭도 얼굴에 다이너마이트를 감고 자폭한다. 이 장면은 영화의 꼭지점이다. 이 장면에 대해 조성애는 ‘한 번의 폭발음은 마치 불교에서 깨달음의 일갈과 같으며, 다음에 이어지는 정적 속에서 하늘과의 경계도 없이 같은 색깔로 파도 한 점 없이, 고요히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중심을 보여주는 불교의 니르바나 상태를 설명한 추상화’같다고 해석하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영원의 이미지인 바다 위에 페르디낭과 마리안의 목소리가 흘러든다. 그들은 독백으로 랭보의 ‘영원’이라는 시의 구절을 읊조린다. 바다의 이미지에 그들은 랭보의 시를 판서한다. “나는 다시 찾았어, 무엇을 영원을, 그건 바다야, 태양과 함께”라는 랭보의 시어는 그들이 영원성으로 편입했음을 암시한다. 영원으로의 귀속은 랭보의 시를 통해 입증하고 그들의 방황은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며 ‘지독한 오후 5시’를 보냈다. 첫 시퀀스 파티 장면에 등장한 감독 샤뮤엘 뮬러의 예언처럼 “영화는 전쟁 같다. 사랑, 증오, 행동, 폭력, 죽음 한마디로 감정이다”를 아름답게 입증한다. 사랑과 행동 그리고 죽음은 인생의 요약이다. 그들은 ‘영화는 삶이다’는 테제와 ‘삶은 영화를 모방한다’는 장 뤽 고다르의 철학에 충실했다. 죽음은 영원성이며 열반이며 또한 ‘삶은 영화이다’는 테제의 완성이다. 영화는 인생을 프레임에 소환하고 불교의 정신을 우회적으로 담아낸다.  

바다는 그들과 우리가 돌아갈 귀의처이자 인류의 모태이다. 그들은 영원 회귀했다. 로드 무비는 ‘우리는 왜 세상에 던져졌는가’와 ‘우리는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질문한다. 그들은 결국 죽음으로 영원한 안식에 당도한다. 타나토스를 통한 삶의 에로스 완성, 심리적 열반, 영원성의 성취이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51호 / 2020년 9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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