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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이 대통령을 만나면

기자명 이병두

대통령이 김희중 대주교 등 가톨릭 지도자들(8월20일)과 김태영 한국교회총연합공동대표 ‧ 한국교회협의회 총무 이홍정 목사 등 개신교 지도자들(8월27일)을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다. 청와대 측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 간담회는 “엄중한 코로나19 위기 상황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기 위해” 마련되었다고 한다.

주목되는 것은, 과거 10여년 넘게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청와대 초청에 응하지 않던 가톨릭 지도자들이 가장 먼저 간담회를 가졌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취임 직후 자신이 다니던 성당의 신부와 수녀를 청와대에 초청하고, 주교회의 의장을 로마 교왕청에 특사로 파견하며, 북한 방문 시에도 다른 종교에 비해 특별한 배려를 하는 등 성의를 보인 것이 주효했는지 몰라도 ‘현 정부와 가톨릭 사이가 매우 좋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언론보도에 따르면 개신교계와의 간담회에서는 언짢은 이야기도 오고간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측에서는 ‘전반적으로 위기의식을 함께 하는 자리’였다며 갈등을 잠재우려는 듯이 보이지만 ‘편안한 자리가 아니었던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하안거 기간이라 불교계 대표 초청은 미루어졌을 것이다. 아마도 이미 9월2일(음력 7월15일) 해제에 앞서 ‘하안거 해제 후 정부와 불교계 사이에 간담회를 갖기로’ 일정을 조율해왔을 것이고, 머지않아 “청와대에서 불교계 대표 초청 간담회가 열린다”는 발표가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종교계뿐 아니라 각계 대표들을 만나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 극복을 위해 협조를 구하는 모습은 칭찬해줄 일이다.

그러나 불교계는 설사 청와대에서 초청을 해도 이번에는 “수해 입은 국민들 살피고,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와중에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였을 터인데 우리를 만날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크고 작은 기업체 대표들‧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등 심각하게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과 의사‧간호사 대표…, 각계각층의 국민들을 만나 ‘그들이 처한 어려움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풀어나갈 수 있는지? 정부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 등에 대해 솔직한 답을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초청해주신 마음은 감사히 받겠습니다만 이번에는 좋은 말씀 들은 것으로 여기겠습니다. ….” 이렇게 의사를 전달하고, 청와대 초청을 정중하게 피하면 좋겠다. 혹 ‘대통령의 초청을 거절할 수 없어서’ 간담회 참석을 하게 되더라도 불교계 현안에 관한 말은 결코 하지 말고, 오로지 현 국가적 위기 극복을 위한 불교적 지혜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아름다운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부처님께서 반열반을 앞두고 기사굴산[靈鷲山]에 머무실 때에 마가다국의 아사세 왕이 사신을 보내어 부처님께 “밧지 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도 되는지?”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오”라든가 “안 되오”라고 직접 말씀하지 않고 시자 아난다에게 “밧지 족 사람들이 ①자주 모임을 갖고 서로 바른 일에 대해 의논하는가, ②임금과 신하가 공명정대하고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을 존경하는 기풍이 있는가, ③옛 풍습을 지키며 예의를 존중하는가, ④부모를 효도로 섬기고 어른을 존경하는가? …” 등의 ‘쇠퇴하지 않는 일곱 가지 길[七不衰法]’을 비유로 들어주었고, 이 가르침을 전해들은 왕은 침략 계획을 포기하였다.

대통령의 간곡한 간담회 초청을 거절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한다면, 가능한 참석자 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그 자리에 가서는 이 ‘쇠퇴하지 않는 일곱 가지 길’을 예로 들어 “대통령과 정부가 앞장서서 화합을 실천하여 국민 갈등을 줄이고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홍수 피해 그리고 경제 위기 극복을 이룩해 달라”는 내용을 부드럽게 전해주는 것 외에 말을 삼가고 주로 대통령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리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52호 / 2020년 9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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