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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형주의 ‘사향 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

기자명 박사

모든 생명이 인드라망 그물 속에 있다

사자‧호랑이‧돌고래 등 무차별
학대받는 동물 실상 파헤친 글
먹고 즐기는 모든 게 생명 연결
부처님 “동물도 같은 생명” 강조

‘사향 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고양이들의 하루를 가까이서 지켜보게 되었다. 대부분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인간이 하루 종일 붙어있으니 고양이들도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그러나 곧 우리는 함께 지내는 시간에 익숙해졌다. 종이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아도 서로에게서 위안을 찾으며 이 험난한 시기를 초미니사이즈 방주를 타고 천천히 흘러간다. 늘 그래왔지만, 재난은 인간에게만 오지 않는다. 인간이 위기를 만날 때 어떤 동물은 같이 움츠러들테고 어떤 동물은 기지개를 펴기도 할 게다. 특히 그동안 인간의 학대를 받아 온 동물들이라면.

이 책은 지독한 인간 중심주의 세상에서 학대받는 동물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노골적인 학대도 괴롭지만 간교한 변명도 괴롭다. 남아프리카에서는 농장에서 사자를 길러 좁은 공간에 풀어놓은 뒤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무차별 사살하는 ‘통조림 사냥’이 성행하는데, 동물학대라는 비난에 “농장에서 사육된 사자 한 마리가 사냥 될 때마다 야생의 사자 한마리가 산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자신들의 학대행위가 야생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는 변명이다. 이 조삼모사의 논리는 그나마도 통하지 않는다. 사육되는 사자가 열 배 가까이 늘어나는 동안 사냥으로 목숨을 잃는 야생 사자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사냥의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동물학대에 나서는 것은 사냥꾼만은 아니다. 태국의 유명한 호랑이 사원 ‘왓 파 루앙 타 부아’ 또한 호랑이 학대에 나섰다. 입장료 수입만도 1년에 30억원이 넘는데도 더하여 멸종위기종인 호랑이를 불법거래하고 장기밀매를 자행했다. 태국 정부가 조사한 결과 사원의 냉동고에서는 새끼 호랑이의 시체 40구가 발견되고 호랑이로 담근 술도 나왔다고 한다. 호랑이를 내세워 관광수익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호랑이뼈, 가죽, 고기 등을 팔아 돈을 축적해온 것이다. 이 사원은 폐쇄되었지만, 수도원장은 아직 동물원 면허를 갖고 있다며 다시 시설을 운영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돈의 맛은 이토록 강렬하다.

지구의 한편에서는 동물학대가 성행하고, 또 한편에서는 학대를 막기 위한 사람들의 열렬한 반대운동이 펼쳐진다. 일본의 돌고래 사냥도 잔인한데, 한곳으로 몰아넣은 돌고래를 학살하느라 바다가 온통 시뻘겋게 물든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어 국제적인 비난을 받자 학살을 멈추는 대신 칼로 찌른 부분을 코르크 마개로 막는 임시방편을 생각해냈다. 그나마 눈치라도 보는 게 다행일까. 포획한 어린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해 몸보다 작은 나무상자에 구겨 넣고 일주일간 쇠꼬챙이로 찌르고 매질하고 굶기고 잠을 재우지 않는 ‘파잔’은 여전히 성행한다.

이 책의 제목에도 등장한 사향고양이, 알비노 동물들, 무차별 학살되는 코뿔소, 인간의 재미를 위해 죽어가는 투우장의 소, 산채로 껍질이 벗겨지는 악어와 뱀, 배에 구멍이 뚫린 채 쓸개즙을 채취당하는 곰…. “지구”라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방주 안에서 일어나는 학대와 학살의 피비린내는 몇 번이나 책을 덮게 한다. 정말 인간은 이토록 끔찍한 존재일까? 인류가 멸망하는 것만이 학대를 멈추는 유일한 방법인 건 아닐까?

이 책의 부제는 “나의 선택이 세계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이지만, 내가 이러한 상황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암담하다. 하지만 저자의 대답은 명쾌하다. “내가 먹고, 입고, 즐기는 모든 것이 다른 생명과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다.”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살지 우리가 매일 하는 사소한 결정들이 지구 저 편의 동물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그의 통찰은 우리가 부처님에게 배운 것을 다시 일깨운다.

“나만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다른 생명을 위한 선택이 필요하다. 작은 불편을 감수하고, 재미있고 신기하고 예쁘고 맛있는 것에 대한 욕구를 줄이고, 동물도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나와 같은 생명임을 잊지 않는 것만으로도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삶 속에 있다. 우리의 무수한 선택 가운데 있다.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552호 / 2020년 9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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