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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32칙 풍혈고곡(風穴古曲)

“노래 형식 초월하려면 어찌 해야 하나”

납자가 수행을 초월하면서도
견해 보여줄 방법 물은 승에게
상식 밖 질문 그에 초월해 응수
표현 못하면 의미 없음 보여줘

승이 풍혈에게 물었다. “옛 곡조에 음운이 없으면 어찌해야 그 음운에 화합하여 상응하겠습니까.” 풍혈이 말했다. “나무로 만든 닭은 밤중에 울고, 풀로 만든 개는 대낮에 짖는다.”

여주 풍혈연소 선사는 처음에 경청도부(鏡淸道怤, 864~937)에게 참문하였고, 다음에 남원혜옹(南院慧顒, 860~930)에게 참문하여 그 법을 이었다. 법맥은 임제의현–흥화존장–남원혜옹–풍혈연소이다.

여기에서 승은 노래가 노래의 형식을 초월하여 제대로 불리려면 어찌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그것은 마치 납자가 납자의 본분에 해당하는 수행을 초월하고 깨침을 초월하면서도 납자로서 지녀야 하는 진정한 견해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질문한 것이다. 그러나 답변자에 해당하는 풍혈은 이미 그와 같은 질문에 대하여 가장 상식적인 답변으로 변환시켜놓고 있다. 풍혈은 우문현답의 방식으로 질문자에 대하여 능수능란하게 답변의 낙처를 제시해주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일체의 질문과 일체의 답변이 모두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가령 풍혈이 처음으로 참문했던 경청도부의 일화가 전한다. 경청은 젊은 시절에 현사사비(玄沙師備, 835~908)의 문하에서 열심히 수행하였지만 무슨 까닭인지 아무리 해도 선에 들어가는 단서도 만나지 못하였다. 어느 날 스승인 현사에게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고 가르침을 청하였다. 그 때 현사는 갑자기 계곡의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대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가’라고 물었다. 경청은 ‘예, 들립니다’라고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자 현사는 ‘저 졸졸졸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에 자신이 직접 들어가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계곡의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무한한 선이 들어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인 그 순간에 영원한 것을 터득했다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철저하게 자각할 것이 요구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음률이 없는 옛 곡조에 상응하여 화음을 맞추려면 어찌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항상 자신이 직접 옛 곡조를 부르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로서 그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느냐는 승의 질문에 대하여 풍혈은 눈에는 눈이고 이에는 이라는 방식으로 답변을 대신해주고 있다. 풍혈은 라라리리 리리라라 마음대로 노래를 부르며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살림살이에 대하여 나무로 만든 닭은 밤중에 울고, 풀로 만든 개는 대낮에 짖는다고 응수하고 있다. 이 말은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음률이 없는 경지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치야말로 천고의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하자면 상식을 초월한 질문은 상식을 초월한 답변으로 응수해야 하는 까닭에 새벽에 울어야 하는 닭은 밤중에 울어대고 밤중에 짖어대야 하는 개는 대낮에 짖어댄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찍이 깨침의 경지에 대하여 동산이 말한 것처럼 눈으로 소리를 듣고 귀로 색상을 보아야 가능하다는 이치를 이해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이겠는가 하고 묻는 모습과 통한다. 따라서 언어로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고 분별심으로는 어떤 식으로도 엿볼 수가 없는 심행처멸(心行處滅)의 깨침이라지만, 중생세계에서 중생을 상대하고 있는 이상 어떤 방식으로든지 궁극에는 그것이 언설로 표현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이 바로 풍혈이 겨냥하고 있는 답변의 방향이었다. 이에 풍혈은 옛 곡조가 없는 노래에 제대로 화답하는 방식으로 새벽은 물론이고 밤중에도 울어댈 줄 아는 수탉의 소리와 밤중은 물론 대낮에도 짖어댈 줄 아는 개를 출현시켜줌으로써 자칫하면 언어유희로 흘러버릴 위험으로부터 썩 훌륭하게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질문하는 승에게 보기 좋게 한 방 먹이는 여유를 보여주었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52호 / 2020년 9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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