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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아들 라훌라를 교화하다 ②

후회 대신 성찰과 참회가 바람직

후회란 번뇌들 가운데 하나
책망과 남 비난으로 이어져
부처님, 거울의 비유를 통해
성찰의 의미와 방법을 설명 

현대사회는 어느 때보다 가장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라고 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미래사회는 지금 보다 더 풍요로울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래의 일은 알 수 없는 일이니, 우리가 할 일은 현재의 삶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하겠다. 부처님은 과거의 일을 후회하지 말고, 미래의 삶을 기대하지도 말라고 가르친다. 후회란 불교에서는 번뇌 가운데 하나이다. 후회는 자신을 비난하고, 남을 책망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후회 대신 참회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어떻게 행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적확하게 말하기가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결국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부처님이 아들 라훌라에게 주신 가르침 가운데 ‘맛지마 니까야'에 ‘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가르친 경(Ambalaṭṭhikārāhulovādasutta)’이 있다. 이 경에서 부처님은 아들 라훌라에게 어떻게 행위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주신다. 

[붓다] 라훌라여, 너는 거울의 쓰임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라훌라] 세존이시여, 성찰을 그 쓰임새라고 생각합니다. 
[붓다] 그렇다. 라훌라여, 성찰하고 또 성찰한 뒤에 신체적으로 행위하고, 언어적으로 행위하고, 정신적으로 행위해야 한다.
[붓다] 라훌라여, 네가 신체적으로 행위하고자 하면, 너는 그 신체적 행위에 대하여 ‘나는 신체적으로 이와 같이 행위하고자 하는데, 나의 이 신체적 행위는 스스로를 해치거나 남을 해치거나 나와 남 둘 다를 해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신체적 행위는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이어서 그 결과도 괴로움이고 그 과보도 괴로움이 아닐까?’라고 잘 성찰해야 한다. 만약 성찰의 결과 ‘신체적 행위가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이어서 그 결과는 괴로움일 것이고 그 과보도 괴로움일 것이다’라고 안다면, 너는 그와 같은 신체적 행위를 결코 해서는 안된다. (MN.I, p.415)

‘성찰하다’란 단어는 ‘paccavekkh ati’를 번역한 말이다. 이 말은 paṭi-avekkhati, 즉 ‘~에 대해서 잘 관찰하다, 보다’란 의미이다. 부처님은 이제 어엿한 수행자가 된 아들 라훌라에게 거울의 비유를 통해 성찰의 의미를 알려주고 계신다. 공자의 제자 중 증자의 말로 전해지는 일일삼성(一日三省)이란 말이 있다. 하루에 세 가지로 자신을 살핀다는 의미이다. 이때 성찰의 내용은 ‘다른 사람에게 정성을 다했는가. 친구를 믿음으로 대했는가?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았는가’이다. 

부처님은 보다 상세하게 성찰의 내용과 방법을 일러 주신다. 몸, 생각, 말(身口意)의 세 가지 차원에서 성찰해야 하며, 각 성찰은 다시 세 가지로 제시된다. 즉 ① 행위를 하고자 할 때, ② 행위를 하고 있을 때, ③ 행위를 끝냈을 때이다. 인용문은 첫 번째를 소개한 것이다. 두 번째에 해당될 경우에는 그 행위를 당장 그쳐야 한다. 세 번째에 해당될 경우에는 스승이나 현명한 동료 수행자에게 드러내고 참회하여 미래를 수호해야 한다.

우리들은 몸으로 하는 행위이건, 말로 하는 행위이건, 생각을 하는 행위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삶속에서 이렇게 행위하는 자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유’라는 이름하에 자행되는 행위들로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을 모두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를 본다. 부처님은 어떤 행위이든 그 행위의 의도와 결과는 나와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계신다. 성찰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행위들은 욕망의 유혹에 빠지기 쉽고,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것을 이익되게 한다고 뒤집어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부처님은 “성찰하고 또 성찰한 뒤에 몸과 말과 정신적으로 깨끗하고 바른 행위를 배워야 한다”고 거듭 가르치고 계신다. 성찰하지 않으면 생각에 빠져 사실과 다르게 판단하게 된다. 자기 생각이란 본디 없는 것이거늘 욕망에 눈이 멀어 멋대로 만들어낸 생각을 부여잡고 자신과 세상을 파멸로 이끌게 된다. 이렇게 부처님은 아들 라훌라를 교화하셨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52호 / 2020년 9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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