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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에릭 사티의 피아노 음악

기자명 김준희

절제된 음악 추구한 사티, ‘소유지족’ 수행자와 닮아

낭만주의 열정과 인상주의 섬세함 모두 떠나 명료함 추구
기교 없는 단순함 “음악 공부 안했다” 혹독한 비난 받기도
음악의 ‘미니멀리즘’ 시초로도 평가되며 21세기 들어 각광

1910년 드뷔시와 함께한 에릭 사티. 장소는 드뷔시 소유의 아파트로 추정되며 동양 문화재에 관심이 많았던 드뷔시가 수집한 것으로 보이는 불상도 눈에 띈다.

우리는 종종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 기분전환을 하거나 어떤 진한 감동을 느끼기 위해 음악을 듣는다. 빠른 템포의 열정적인 음악을 들으면 자극을 받거나 쾌감을 느끼고, 서정적이고 달콤한 선율에 매료돼 행복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음악이 주는 대표적인 정서적 효과이다. 하지만 여러 복잡한 관계에서 피곤한 생활의 연속인 현대 사회에서는 따뜻한 위로가 되는 음악이 필요할 때도 있다. 

20세기 들어 바그너로 대표되던 후기 낭만주의 이후, 독일음악이 지배적이던 시기에서 벗어나 드뷔시, 라벨 등 새로운 종류의 음악이 두각을 나타낼 시기에 상당히 독특한 음악이 있었다.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 (Erik Satie 1866~ 1925)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인 ‘3개의 짐노페디(Gymnopédies)’를 들어보면, 특별한 이유 없이 묘한 이끌림을 느낄 것이다. 1888년에 작곡된 이 곡은 플로베르의 소설 ‘살람보(Salammbô)’와 콩떼미뉘의 시 ‘고대인(Les Antiques)’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짐노페디’는 고대 그리스와 스파르타에서 아폴로 신을 찬미하는 축제, 혹은 그 축제에서 추는 남성의 춤을 뜻한다.

첫 곡의 네 마디는 두 번째 박자를 강조한 왼손 반주 패턴으로 시작된다. 시종일관 반복되는 G음과 D음 베이스는 일반적인 화성적 기능은 느낄 수 없다. 나른하게 시작되는 오른손 선율은 그야말로 ‘시크(chic)’한 느낌이다. 전체적으로 7화음의 예비와 해결이 없기 때문에 음악적 긴장감과 화성감이 없는 이 곡은 상당히 정적이다. 감정의 변화와 고조감을 느끼기 어렵고 오히려 어떤 절대적인 것을 표현하려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어쩌면 초연함 마저 느껴진다.    

사티는 방대한 스케일의 과장된 음악으로 대표되는 바그너의 음악에 반기를 들었던 프랑스 인상주의의 모호하고도 암시적인 분위기와 복잡한 화성, 시적(詩的)인 제목의 음악에도 반대적인 입장이었다. 그가 추구했던 음악은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그러면서도 단순 명료한 음악이었다. 즉 낭만주의의 지나친 열정과 인상주의의 극도의 섬세함, 두 가지 모두의 대치점에 있던 음악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 기승전결을 알기 힘든 이 곡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무심함’일 것이다. 그가 태어났을 무렵에는 이미 베토벤과 슈만, 브람스를 거쳐 리스트와 바그너에 이르기까지 무게감 있는 음악들과 기교적으로 화려한 연주가 가득했던 시기였다. 예술이 주는 강렬한 메시지가 중요했던 시기에 사티는 음악에 대한 나름대로의 개념이 있었던 것 같다. 12살의 나이에 상당한 실력을 인정받아 파리 음악원에 입학한 그는 시대에 맞지 않은 음악 스타일로 주위에서 계속 핀잔을 들었다. 

에릭 사티.

그가 작곡한 곡들은 너무 간결하고 단순해서 상상하기 힘든 비난을 받았다. “혹시 음악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이게 음악인가”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나름대로 정교한 음악적 내용이 있었다. 각 악장을 같은 형식으로 구성하고, 짧은 악구를 반복한 단조로운 선율들은 선명한 색채의 음향 표현에 중점을 두었다. 또한 간단하고 단순한 텍스처로 꼭 필요한 최소한의 음들로만 음악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지를 표방했다.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절제된 음악을 추구한 그는 삶에서도 그런 면모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유행하던 음악과는 전혀 반대가 되는 음악을 발표하여 주위의 혹평을 듣고, 생계를 유지하는데도 어려움을 겪던 사티는 음악가이면서도 평생 몽마르트의 바에서 시급을 받으며 일하였다. 작품 활동으로 얻은 수입도 크게 생활에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그래도 인간적인 평판은 좋았는지 드뷔시, 라벨, 장 콕토와 등의 예술가들이 그를 위해 ‘사티의 밤’ 과 같은 음악회를 열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그는 음악가로서 이렇다 할 삶을 살지 못했다.

하지만 사티는 실패와 성공에 크게 의의를 두지 않고 가난하고 궁핍한 삶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의 음악처럼 소박한 삶을 살았던 그는, 유품으로 12벌의 양복과 가방 하나에 전부 담을 수 있는 짐을 남겼다. 당대의 음악인으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의 음악과 삶을 살펴보면 ‘유교경(遺敎經)’의 내용이 떠오른다. “수행자들이여, 만약 고뇌에서 벗어나려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적은 소유에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어디서나 넉넉하고 즐거우며 평온하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맨땅에 누워있어도 편안하고 즐겁지만, 늘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천당에 있어도 불편하다고 불평만 일삼는다. 수행자는 소유지족(少有知足)을 미덕으로 삼아야 한다.”

‘짐노페디’를 작곡하고 2년 뒤에 만들어진 ‘6개의 그노시엔느(Gnossiennes)’ 역시 그의 음악적 특징이 드러나 있다. ‘고대 그리스인’ 이라는 뜻(사티가 임의로 만든 말이라고 한다)을 가진 ‘그노시엔느’ 역시 ‘짐노페디’와 상당 부분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첫 곡은 1890년대의 파리 분위기를 다룬 영화 ‘콜레트(2018)’와 우리나라 영화 ‘블랙머니(2019)’ OST에서도 사용됐다. 또한 게임 유저들이 좋아하는 ‘The End is Nigh(2017)’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대화와 침묵, 그 두 가지 사이 어느 지점에 있는 것만 같은 이 곡은 허공을 응시하는 것 같은 허무한 시선을 담고 있는 것도 같다. 

사티의 음악은 이렇듯 21세기에 들어 많은 각광을 받고 있다. 혹자는 이런 음악을 있는 듯 없는 듯 배경으로 존재하는 ‘가구음악(Furniture Music)’이라고 부른다. 또한 20세기 음악계에서 화두가 되었던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시초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겨 듣는 뉴에이지(New Age)음악을 예견한 것이라고도 한다. 

사티의 삶과 음악은 수행자가 지켜야 할 마음가짐, 욕심을 부리지 않고, 화를 내지 않고, 작은 것에 대해 만족하고, 조용한 곳에 머무르고,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정진하라는 부처님의 유훈과 닮았다. 동시에 한 세기가 지나서야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은 예지적인 음악으로 명상적이며 위안이 되는 음악이기도 하다. 꼭 있어야 할 음표들과 반드시 나타내고자 했던 기본적인 것들만으로도 충분한 에릭 사티의 작품들을 선정과 지혜를 담은 음악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의 피아노 작품중 가장 친숙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가진 곡 중 하나인 ‘Je te veux(1902)’를 들으며 소유지족(少有知足)의 삶을 생각해 보는 가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52호 / 2020년 9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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