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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구본웅의 ‘고행도’ : 감각적으로 재해석된 항마성도

기자명 주수완

유혹·번뇌 물리치고 깨달음 얻었을 때 환희 묘사

간다라 미술 대표작 ‘고행상' 떠오르게 하는 화풍 선보인 구본웅
뱀·벌레 묘사로 인간 싯다르타가 느꼈을 숲속 고독 사실적 표현
주변 존재들 감각적으로 드러내 석가모니 위대함 성찰하게 해

고행도(苦行圖). 종이에 먹, 27×24cm, 1935년.

서산(西山) 구본웅(具本雄, 1906~1953)은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나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았다. 비록 신체적으로 꼽추라는 콤플렉스가 있었고, 나아가 한국전쟁 중에 건강이 악화되어 한창인 나이에 사망했다는 점을 보면 건강상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 같지만, 최소한 그가 활동하던 시기의 이력을 보면 그는 매우 열정적이었다.

그가 불교와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는 정확치 않다. 다만 미술을 처음 배운 것은 종로 YMCA(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였고, 당시 그의 삼촌인 구자옥(具滋玉)이 YMCA의 총무였다고 하니 혹 그의 집안은 기독교에 더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그곳에서 김복진으로부터는 조각을, 고희동으로부터는 그림을 배웠다. 처음에는 조각에 더 치중하여 1927년 선전(鮮展)에 ‘얼굴습작’이란 조각작품을 출품해 특선을 받을 정도였지만, 체력이 약해 조각은 포기하고 서양화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서양화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처음에는 가와바타(川端) 미술학교에 들어가 니혼대 미학과를 거쳐 1933년에는 다이헤이요(太平洋)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스승은 파리에 유학을 다녀온 사토미 가쓰조(里見勝藏, 1895~1981)였는데, 당시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야수파 스타일이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 그의 제자 구본웅 역시 야수파 화풍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구본웅의 대표작으로서 그의 친구였던 이상(李箱)을 그린 ‘우인상(友人像)’은 그가 야수파를 한국에 소개한 화가로서 자리매김 되는데 일조했다.

그런 그가 불교적인 소재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이후라고 한다. 이 무렵 조계사(당시에는 태고사) 주지스님이 구본웅에게 불화를 주문한 적이 있어 유화로 불화를 그린 바 있었다. 그러나 전언에 의하면 작품 속의 부처님이 너무 야윈 모습의 고행상 같은 모습이어서 예불용으로 걸지 못하고 둘둘 말아서 창고에 보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밖에 흑백사진으로만 전해지던 그의 불화 ‘고행도’와 ‘만파(卍巴)’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었는데 이 두 작품은 마침 2019년에 모 경매사를 통해 옥션에 등장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존에 흑백사진으로만 전해질 때는 유화로 추정되었지만, 막상 실제 작품은 한지에 먹으로 그린 작품이었다.

우선 ‘고행도’라고 하면 간다라 미술의 대표작인 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의 ‘고행상’이 먼저 떠오르는데, 아마도 그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상이 발굴된 것이 1894년이므로, 구본웅이 사진 등으로 고행상을 접할 기회는 있었을 것이다.
 

  만파(卍巴), 한지에 먹, 27×24cm, 1937년.

그런데 이 그림은 제목이 ‘고행도’로 되어 있지만, ‘항마성도’ 장면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석가모니의 주변으로 누드의 세 여인이 마치 유혹하듯이 둘러앉아 있는데, 이는 마왕 파순이 제일 먼저 자신의 딸들을 보내 석가모니를 유혹하려고 했던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석가모니 뒤편의 악마같은 존재가 파순으로 보인다. 파순은 왕관을 들고 석가모니를 유혹하고 있는 역할도 겸하고 있다. 또한 석가모니의 주변으로는 지네, 거미 등의 온갖 벌레와 나비, 잠자리 등의 곤충, 그리고 뱀들까지 우글거리고 있다. 그리고 화면은 전체적으로 불길에 휩싸여 있는 듯 요란스럽다.

일반적으로 항마성도 장면을 동아시아에서 묘사할 때에는 마군들이 석가모니를 공격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이 장면과 함께 마왕 딸들의 유혹 장면이 강조되며, 굳이 둘 중의 하나만 남겨야 한다면 유혹 장면만으로 항마성도를 나타낼 정도로 이 도상의 중심 모티프이기도 하다. 과연 구본웅은 어떻게 표현에 있어서나 소재에 있어서 이처럼 인도 미술의 원래 고행상이나 항마성도 장면에 다가갈 수 있었을까? 일단은 일본 유학시절 사진을 통해 인도미술을 접한 것이 아닐까 추정해볼 뿐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뱀과 벌레들을 묘사한 것은 독특하다. 마군들 대신 실제 보드가야 숲속에 득실거렸을 이런 뱀들과 벌레들을 포함시킨 것은 항마성도를 그저 전설 속의 장면이 아니라, 실제 인간 싯다르타가 느꼈을 숲속에서의 고독과 공포를 사실적으로 전해준다. 마치 깊은 밤 숲속에서 나무들 사이로 부는 바람이 귀신의 속삭임으로 들리는 것처럼,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 숲에서 많은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구본웅은 그러한 공포스러움을 감각적으로 드러내 석가모니께서 항마성도를 이루셨던 당시의 그 숲속으로 우리를 소환하고 있다. 유혹하는 여인들의 자태도 사실적이고 노골적이며 감각적이다. 전혀 마왕의 딸 같지가 않다. 설마 처음부터 그녀들이 ‘나는 마왕의 딸이요’하고 나타났을까. 우리 주변의 모든 유혹은 항상 그 속은 숨기고 겉으로는 부드러움만 보인 채 등장하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 아닐까.

우리는 고행상도, 항마성도상도에서 주로 주인공인 부처님을 중심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지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구본웅은 그 주변의 존재들을 감각적으로 되살려냄으로써 그 유혹이 얼마나 뿌리치기 힘든 것이었는지, 그 공포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물리친 석가모니가 얼마나 위대한 분이었는지 다시금 성찰하게 만든다.

함께 공개된 ‘만파’는 제목이 특이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잘 쓰이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만(卍)자를 물결치듯이 묘사하여 복잡하게 뒤얽힌 형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구본웅의 ‘만파’도 누드의 여인과 용이나 공룡처럼 보이는 동물들이 ‘만’자 형태로 뒤엉켜 있다. 그리고 석가모니께서는 앞선 ‘고행도’와 달리 평온한 모습으로 이 ‘만’에서 벗어나 화면 상단에 마치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어쩌면 ‘만파’는 ‘고행도’ 직후의 이어지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그 모든 유혹과 번뇌를 물리치고 드디어 깨달음을 얻었을 때의 환희를 묘사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싯다르타를 유혹했던 존재가 마왕의 딸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 자신이었을 것만 같은 이 독특한 도상은 너무나 현대적이어서 도저히 1937년에 그려진 작품으로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과연 천재로 일컬어지는 이상의 친구였던 구본웅 역시 천재였기에 가능했던 20세기의 불교도상이 아닐까 싶다.

주수완 우석대 조교수 indijoo@hanmail.net

 

[1552호 / 2020년 9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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