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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인류는 운명 공동체

기자명 마성 스님

홀로 존재하는 것·영원한 것·절대적인 것 없다

연기의 법칙으로 연결된 이 세상 장점·단점 공존하는 이유
세계화 시대엔 모든 사람 협력 없인 경제생활 지탱 어려워
전체 속 일부라는 시각 벗어나면 행복조차 영위할 수 없어

스리랑카 고대 수도 아누라다뿌라에 있는 성스러운 보리수. 기원전 288년 붓다가야에서 이식해 온 것으로 지구상에서 인간이 심은 나무 중 가장 오래된 나무로 알려져 있다. 이 보리수는 ‘자야 스리 마하 보디(Jaya Sri Maha Bodi)’로 불리며 스리랑카의 불교도는 물론 전 세계의 불교도들이 가장 성스러운 부처님의 사리로 숭배하고 있다.
스리랑카 고대 수도 아누라다뿌라에 있는 성스러운 보리수. 기원전 288년 붓다가야에서 이식해 온 것으로 지구상에서 인간이 심은 나무 중 가장 오래된 나무로 알려져 있다. 이 보리수는 ‘자야 스리 마하 보디(Jaya Sri Maha Bodi)’로 불리며 스리랑카의 불교도는 물론 전 세계의 불교도들이 가장 성스러운 부처님의 사리로 숭배하고 있다.

한때 지구촌 시대 혹은 세계화 시대가 앞당겨졌다고 좋아한 적이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전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network)로 연결되었을 때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지구촌 소식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경제도 점차 세계화 추세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는 역설적으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같은 세계적 대재앙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오히려 세계화가 전염병 확산의 주범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국경 봉쇄를 통한 방역은 곧 경제적 몰락의 자초를 의미한다. 이처럼 세계화는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갖고 있다.

그러면 왜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가? 이 세상의 현상계는 모두 연기의 법칙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는 연기의 정의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른바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는 관계성의 법칙이요 상의성(相依性)의 법칙이며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다.

이러한 연기의 원리에 의하면 어떠한 존재도 우연히 생겨나거나 또는 혼자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모든 존재는 그 존재를 성립시키는 여러 가지 원인이나 조건에 의해 생겨난다. 서로는 서로에게 원인이 되기도 하고, 조건이 되기도 하면서 함께 존재한다. 반대로 존재를 성립시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변하거나 없어질 때 존재 또한 변하거나 없어진다. 모든 존재는 전적으로 상대적이고 상호의존적이다. 이 현상계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서로 관계를 가짐으로써 성립·지속·소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홀로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영원한 것도 그리고 절대적인 것도 있을 수 없다.

한 개인의 경우만 살펴보아도 그 사람의 현재는 그가 지금까지 경험해 온 모든 것이 축적된 상태를 말한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 다양한 환경에서 양육되고 가정·학교·사회로부터 받은 교육 또 여러 부류의 사람이나 사물과의 접촉으로 얻은 경험이 축적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한 개인의 현존재는 그 사람의 주변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한 개인은 끊임없이 외부로부터의 자극과 영향을 받으면서 동시에 그 사람 주위에 영향을 끼친다. 결국 모든 인간은 과거·현재·미래에 걸친 연기 관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주위 환경이나 사회와도 끊임없이 밀접한 연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학생의 경우 학우나 선배 혹은 교사로부터 영향을 받아 자신의 인격을 형성해 나간다. 만일 그가 착한 친구와 교제하면 향상하고 나쁜 친구와 교제하면 타락한다. 인간은 가정·학교·직장 및 마을과 국가라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주위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주위 환경과의 상호 관계가 곧 상의상자(相依相資)의 연기인 것이다. 이것은 선과 악이라는 윤리 관계는 물론 의식주와 같은 경제 관계에서도 똑같이 작용한다.

세계의 경제는 생산자·운반자·판매자·소비자와의 관계 속에서 유지된다. 쌀 한 톨이나 하나의 스마트폰이 우리의 손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쳤는지, 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해 온 것인지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현대와 같은 세계화 시대에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의 협력 없이는 우리의 경제생활도 지탱하기 어렵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생존하면서 소비하기 때문에 세계의 경제도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국경이 폐쇄됨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보다도 더 무서운 경제적 파탄을 목도하고 있다.

인류의 경제생활뿐만 아니라 문화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문학·예술·학문도 모두 과거의 인류로부터 계승하여 오늘날 사람들의 노력으로 더욱 발전시켜 현재 우리가 향유하고 있다. 즉 우리는 공간적으로는 세계의 모든 문화와 관계를 맺고, 시간적으로는 과거 인류문화의 전 역사와 직접 혹은 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의 현존재는 인격적·도덕적으로도, 정치·경제적으로도, 문화·예술적으로도 우리 자신의 과거 경험의 축적으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와 시간적·공간적으로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의 현존재는 과거 없이 존재할 수 없고, 또 자연환경과 사회환경과의 관계없이 존재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미래를 규정하는 요인임과 동시에 우리의 사회와 역사를 만들어 가는데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우리의 현재 한순간은 자기 및 주변 환경과 일체의 미래 운명에도 중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한 개인은 그 자체로 세계 전체에 통하고 세계 전체는 또 한 개인과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다. 우주 인생의 모든 현상은 종적으로나 횡적으로, 적극적으로나 소극적으로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 이것을 후세 화엄철학에서는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연기라고 부른다.

이와 같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은 우리 자신의 미래를 규정하는 요소일 뿐만 아니라, 주위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 자신의 행위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식의 사고는 허용될 수 없다. 한 개인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은 자신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그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은 어떤 형태로든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렇게나 행동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현상계는 상호의존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은 전체 속의 일부라는 시각에서 벗어나서는 개인의 행복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이 불교적 시각이다.

세상 사람들이 이 연기의 원리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코로나19를 조기에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특히 세계화 시대에는 개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마디로 인류는 운명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ripl@daum.net

 

[1553호 / 2020년 9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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