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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천대 받는 아라한’

기자명 현진 스님

잔업 남았어도 아라한 경지 오를 수 있어

살생 일삼았던 앙굴리말라도
부처님가르침 따라 수행했기에
현생에서 아라한 경지에 올라

제16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업장을 깨끗이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업장은 단지 일반적인 경우라기보다는, 예를 들자면 어떤 이가 혹독한 용맹정진 끝에 문득 아라한의 경지에 올랐는데 아직까진 맑혀야 될 잔업(殘業)이 존재하는 경우라면, 아라한의 지위에 올랐다 하였으니 다시 목숨을 받고 태어나 그 업을 맑힐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미 지은 업이 근거 없이 탕감될 리도 없는 상황일 때 적용되는 경우라고 보면 적합할 것 같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여!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경전을 받아 지녀 독송하고도 만약 남에게 천대를 받는다면…”이라 하셨다. ‘금강경’ 전반에 걸쳐 ‘사구게송 한 수라도 잘 익히고 남에게 전해주기까지 한다’면 그 공덕은 엄청나다는 것을 여러 가지 표현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누구라도 ‘진짜 그럴까?’ 혹은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야~’라는 의문을 비롯하여 온갖 망상이 마장(魔障)처럼 일어나기 십상이다. 그런데 사구게송을 어찌한 결과로 굉장한 공덕을 받는 경우야 오늘이 아닌 내일의 일이고 금생이 아닌 내생의 일이니 누구라도 확실한 근거를 들이대며 의심스럽다거나 틀렸다 할 수 없겠지만, 누가 봐도 분명 사구게송 하나 이상을 잘 익혀서 남에게 전달까지 잘한 불자나 수행자가 어떤 험악한 꼴을 당하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본 경우라면 그땐 누구라도 의심의 눈초리로 ‘저건 왜 저런가?’라고 할 것이다. 경전을 받아 지녀 독송하고도 남에게 천대를 받고 있으니….

부처님께서 연이어 “그 사람은 전생의 죄업으로 마땅히 악도에 떨어져야 하겠지만, 금생에 남에게 천대를 받은 것 때문에 전생의 죄업은 즉각 사라지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이 그런 의문에 답하신 것이다.

아힘사(ahiṁsā, 不害)라는 이름의 한 젊은이가 브라만의 전통에 따라 많은 학우들과 함께 스승의 집에서 학생기(學生期)를 보내고 있었다. 가장 뛰어난 제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는 훤칠한 외모로 인해 스승의 아내 혹은 학우들로부터 모함을 받아 스승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너는 이젠 마지막 수행단계에 접어들었다. 100명의 손가락을 잘라오면 그 마지막 관문을 통과시켜주겠노라!” 스승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졌던 그는 무자비한 살육으로 앙굴리말라(angulimāla, 손가락 목걸이)란 이름으로 불리기에 이르렀으며, 살인하기 100명 째에 이르러선 자신의 모친을 살해하려까지 하던 차에 다행히 부처님의 교화를 입고 발심 출가하여 비구가 될 수 있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올곧이 수행하던 그는 늘상 사람들의 멸시와 돌팔매질에 시달려 피를 흘리기까지 하였으나 결코 정진을 멈추지 않았다. 부처님 또한 그가 출가한 후에도 천대를 받는 것을 아시고도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으신 것은 그가 이미 지은 악업으로 받을 지옥고를 그것이 대신함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가 죽은 후에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 하는 비구들에게 부처님께선 그가 열반에 이르렀다고 대중들에게 답하심으로써 죽기 직전에 이미 아라한의 경지에 올랐었음을 인가해주셨다.

착실한 학인이었다가 희대의 살인마로 돌변하였고 결국엔 다시 아라한의 경지까지 올랐다는 앙굴리말라의 일화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것을 가르침이나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능정업장분의 내용으로 비춰본다면 응당,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올곧게 수행한 이가 세상으로부터 천대를 받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업장을 녹이는 것에 해당된다는 점일 것이다. 그것은 잔업이 남은 상태에서도 아라한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음을 알려주신 것이기도 하다.

희대의 살인마로부터 부처님께서 보신 것은 스승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에 둔 앙굴리말라의 깨닫고자 하는 마음과 그 굳건한 의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선 능정업장분에서, 올바른 수행의 큰 길을 가는 이에겐 그 무엇도 이미 장애가 될 수 없음을 앙굴리말라의 일화에서 드러난 ‘아라한의 천대'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리라.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53호 / 2020년 9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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