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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신상옥의 ‘무영탑’(1957)

석가탑 조성한 석공 장인의 사랑이야기

구슬아기, 결혼 제도 벗어나 진정한 사랑 아사달 찾아 경주행
불국사 문지기 스님 “연못에 그림자 비출 때 만날 수 있을 것”
불·물 이미지의 이중 인화로 나타난 두 여인 모두 사랑의 대상

신상옥의 ‘무영탑’은 불사의 의미보다 석가탑 장인의 사랑으로 기운다. 사진은 영화 ‘무영탑’ 스틸컷과 영화 포스터.

무영탑은 불국사 석가탑의 다른 이름이다. ‘무영탑’은 소설가 이광수와 현진건이 경주를 탐방하고 채록한 전설을 배경으로 현진건이 집필한 소설이다. 전설은 신라 경덕왕 때 김대성의 불국사 불사 과정에서 석가탑을 조성한 석공 장인의 이야기이다. 석공은 당나라에서 건너온 명장이며 그를 찾아온 아내(누이)는 탑 조성으로 인해 남편과 면회가 불허됐다. 불국사 문지기는 큰 연못(影池)에 가면 석가탑 그림자가 못에 비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알려준다. 아내는 연못을 2년 동안 바라보지만 탑의 그림자를 찾을 수 없어 그만 연못에 투신한다. 석공은 석가탑을 완성한 다음 연못에서 아내를 찾지만 실패하고 아내의 모습을 닮은 불상을 새긴 다음 연못으로 들어간다. 

이 전설을 토대로 현진건은 1938년 7월부터 ‘동아일보’에 ‘무영탑’이라는 이름으로 연재하여 장편소설을 완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소설적 변형이 가미된다. 하나는 석공의 출신지는 당나라에서 백제 부여로 변경한다. 다른 하나는 석공 아사달의 곁에 신라 귀족의 딸을 배치하여 석공의 사랑 이야기를 완성한다. 

신상옥의 ‘무영탑’(1957)은 현진건의 원작에 충실하면서 ‘서울의 지붕 밑’(1961)의 감독인 이형표가 각색해 영화적 구성과 맛을 더했다. 경덕왕은 불국사 불사 현장을 순시하면서 아사달을 치하를 한다. 이 때 함께 수행한 유종의 딸 구슬아기(최은희 분)는 아사달(곽건 분)에게 첫눈에 반한다. 두 사람의 만남 장면에서 아사달을 바라보는 구슬아기의 클로즈업이 두 번 삽입된다. 하지만 마주보는 아사달의 시선이 연결되지 않아 두 남녀의 인연과 감정의 움직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았다. 구슬아기는 탑돌이를 하면서 아사달을 찾아나서는 적극성을 보이며 그녀는 결국 과로로 쓰러진 아사달을 구한다. 구슬아기가 아사달을 간병하면서 두 사람의 감정이 변하기 시작한다. 멜로 영화의 ‘한 남자가 어려움에 처한 여성을 조력하면 반드시 사랑으로 발전한다’는 전형적 서사에서 여성과 남성의 자리가 바뀐 셈이다. 구슬아기의 적극성은 1930년대 말 소설 집필 당시 연애 풍속에 비추어보면 신라를 배경으로 하지만 자유연애를 실천하는 신여성 이미지와 긴밀하게 연관되었다. 

‘무영탑’은 석가탑 조성의 설화와 아사달의 사랑, 신라의 아사달 이야기와 백제의 아사녀(한은진 분) 상황이 두 갈래로 펼쳐지면서 새끼줄처럼 한 이야기로 엮어진다. 아사달은 석탑 조각에 매진하고 구슬아기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자신의 혼담을 물리치는 일에 마음을 쓴다. 구슬아기는 정략결혼을 강권하는 금성의 무리로부터 벗어나면서 고비가 넘어간다. 하지만 부친 유종은 구슬아기의 정혼자로 충신이면서 화랑정신에 투철한 경신을 낙점한다. 구슬아기는 아사달에게 찾아가 신라를 함께 떠나자고 간청한다. 당시의 결혼제도에 비추어볼 때 구슬아기의 사랑을 위한 도피의 결단은 대단히 파격적인 결정으로 비추어진다. 구슬아기와 아사달의 사랑은 아사달의 소극적인 그리움 표현과 구슬아기의 적극적 표현과 행동이 대조적으로 부각되면서 1950년대 후반 한국영화의 보기 드문 장면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장면은 한형모의 ‘자유부인’(1956) 흥행 성공으로 인한 자유부인 오선영 이미지의 일정한 영향권에 있는 것 같다. 푸코는 그 시대를 지배하는 무의식적인 것의 존재에 주목하였다. 무의식적인 지배 의식인 한국의 에피스테메는 1950년대 후반은 여성의 적극적인 감정 표현이라는 문화적 무의식이다. 여성의 적극적인 감정의 표현이라는 에피스테메는 ‘무영탑’에서 구슬아기의 사랑을 향한 적극적 행보로 표출되었다.  

구슬아기는 집안에서 정혼한 충신 경신과 결혼식을 올린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신의 사랑인 아사달에게 돌아간다. 결혼 제도의 억압으로 벗어나 자신의 사랑을 지키는 구슬아기의 행위는 1950년대 한국영화에서 이례적이다. 당시의 멜로 영화는 부모의 정혼으로 인한 결혼제도의 억압이라는 장애와 스스로의 사랑을 지키기 위한 투쟁과 고통을 관습적으로 담아냈다. 구슬아기의 결단으로 아사달과 구슬 아기는 재회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하지만 상황은 또 다른 장벽으로 인해 구슬아기의 사랑 완성을 방해한다. 아사녀는 부친과 사별하고 아사달을 찾아 경주로 향한다. 불국사에 도착한 아사녀는 문지기 스님의 무책임한 조언으로 인해 곤경에 처한다. 문지기가 아사녀에게 한 안내는 전설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영화에서는 문전박대하는 스님 이미지로 원작의 의미전달을 다소 훼손한다. 불국사의 문지기 스님은 “탑 조성을 마칠 때 까지는 면담할 수 없으며 연못에 가서 기다리면 물 위에 탑 그림자가 비출 때 만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퉁명스럽게 전한다. 아사녀는 더 이상 애원하지 않고 연못으로 향한다. 아사녀는 연못에서 석탑의 그림자를 기다리지만 그림자는 떠오르지 않는다. 아사녀는 노파의 집에 기숙하면서 탑 그림자를 기다린다. 노파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현실적인 인물이며 아사녀에게 아사달의 변심 가능성과 심지어는 아사녀의 혼처를 알아보겠다는 제안까지 한다. 아사녀는 노파의 부정적 상황을 암시하는 말과 떠오르지 않는 그림자로 인해 연못에 투신한다. 투신 장면은 연출의 힘을 뺐다. 아사달은 아사녀의 소식을 전해 듣고 연못으로 향한다. 구슬아기는 파혼하고 아사달을 찾지만 아사달은 이미 연못으로 향한 후이다. 

마지막 장면은 연못에서 아사달이 구슬아기와 아사녀의 환영을 바라본다. 이 장면은 ‘무영탑’을 아사달의 어긋난 사랑으로 축소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한다. 원작에서는 “아사달의 머리는 점점 어지러워졌다. 아사녀와 주만의 환영도 흔들린다. 두 환영은 마침내 하나로 어울리고 말았다. 아사달의 캄캄하던 머릿속도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아사녀와 주만의 두 얼굴은 다시금 거룩한 부처님의 모양으로 변하였다”로 묘사되었다. 두 얼굴이 부처님의 모양으로 변하였다는 표현은 불교적 색채를 강하게 풍긴다. 영화에서는 불과 물의 이미지의 이중 인화로 두 여인이 아사달 앞에 나타난다. 아사달 환영 속에서 아사녀와 구슬아기를 모두 사랑하는 대상으로 갈구 하고 있다. 두 여인 모두 아사달의 사랑의 대상으로 프레임에 배치된다. 영화 ‘무영탑’은 탑 조성이라는 불사의 의미보다는 석가탑 장인의 사랑으로 기운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53호 / 2020년 9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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