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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김덕성의 ‘뇌공도’

기자명 손태호

세상의 불의·무명의 어둠 벼락같이 내리치다

뇌공신의 벼락도끼 사악한 기운 물리치는 영험함 가져
서양식 음영법 사용해 동양의 금강역사 웅장하게 표현

김덕성 作 ‘뇌공도’, 종이에 채색, 136×70㎝. 18세기 후반. 국립중앙박물관.
김덕성 作 ‘뇌공도’, 종이에 채색, 136×70㎝. 18세기 후반. 국립중앙박물관.

오랜 장마가 끝났다 싶더니 큰 태풍이 연이어 한반도로 몰려왔습니다. 태풍의 위력도 매우 강력해 많은 비와 강풍, 벼락을 동반하였습니다. 올해는 이상하리만치 강력한 태풍이 자주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 이야기로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적도 부근의 해수면 온도가 다른 해보다 높아 태풍이 더 자주 발생하고 더 강력해진다고 합니다. 참으로 환경문제는 인류 공통의 숙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벼락으로 하늘이 번쩍이면 잘못한 일도 없는데 괜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간혹 산과 들에서 사람이 벼락을 맞았다는 뉴스를 접하면 정말 운도 참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뭔 잘못을 했을까 싶기도 합니다. 고대 사람들은 천둥과 벼락이 신들의 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도 그런 생각이 이어져 ‘조선왕조실록’에서 천둥과 번개를 지칭하는 뇌전(雷電) 관련 기록이 무려 1096개나 기록돼 있습니다. 조선의 왕들은 기상이변이 천변재이(天變災異·하늘에서 생기는 변고와 재앙이 되는 괴이한 일)라 생각해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기상이변이 발생하면 신하들은 왕에게 하늘의 경고라며 더욱 몸과 마음을 닦고 잘못을 되돌아볼 것을 상소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시대 옛 사람들은 뇌전이 하늘의 경고라 두려워하며 신격화를 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호랑이는 산신으로, 천연두는 마마로 신격화했던 것과 유사합니다. 그런 신격화로 탄생한 그림이 바로 ‘뇌공도’입니다. 

범상치 않은 모습의 인물이 오른쪽 다리는 아래로 향하고 왼쪽 다리는 들고 있습니다. 상반신에는 천의 또는 조백으로 보이는 천을 두른 채 거의 나신이고 하의는 짧은 반바지 차림입니다. 허리춤에는 호리병을 매달고 있고 왼손은 칼을 잡고 있으며, 오른손은 손바닥을 펼친 채 아래를 향해 힘껏 뻗고 있습니다. 머리카락은 위에는 거의 없고 옆에만 짧게 펼쳐져 있으며 눈은 묘하게 치켜뜨고 있고 입은 큰 소리를 내듯 크게 벌리고 있습니다. 등에는 북을 매달고 있어 천둥의 신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어깨 위로는 망치 모양의 어떤 물체를 매달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서양식 음영법이 적극적으로 사용되었고 금강역사나 신장상 느낌과 비슷합니다. 근육질의 몸에서 풍기는 강한 힘과 기묘한 얼굴, 역동적인 자세, 망치 모양의 도구 등에서 인간과 달리 신격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인물은 바로 뇌신(雷神), 즉 천둥과 벼락의 신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뇌신은 주로 불화에서 볼 수 있는데 통도사 ‘감로도’ 중앙 향좌측에 뇌신이 등장합니다. 새의 얼굴에 몸은 사람으로 인두조신(人頭鳥身)의 가릉빈가(迦陵頻伽)와 반대이고 팔이 없는 가릉빈가와 달리 두 팔이 있으며 겨드랑이 날개가 있습니다. 두 손에는 그림과 같은 망치형태의 물건을 들고 있습니다. 이 물건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 물건은 망치가 아니라 정확히는 뇌공신의 지물인 도끼, 즉 뇌부(雷斧)입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벼락이 떨어진 곳에서 발견한 돌도끼를 벼락도끼라고 불렀습니다. 천둥과 번개를 다스리는 신의 도끼라는 뜻이 담겨 있는 이름입니다. 이 벼락도끼가 바로 뇌신의 지물이자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신비로운 능력이 있는 영약이라고 여겼습니다. 중국 명나라 때 의학서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다양한 벼락도끼의 약효에 대해 기술되어 있으며 이런 인식은 조선으로 전해졌습니다. 

세종실록 23년(1441년) 5월 기사에 ‘(도끼를) 베개 속에다 넣고 자면 마귀 꿈을 없앨 수 있고, 어린애에게 채워주면 놀란 기운이나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 임신한 부인이 갈아먹으면 아이를 빨리 낳게 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벼락도끼에 대한 언급은 조선왕조실록 전기에 7번이나 등장합니다. 15세기 문인 이육은 그의 문집 ‘청파집’에서 ‘별이 떨어져 돌이 되고, 벼락치고 천둥이 울려 돌을 얻으니 칼 같기도 하고 도끼 같기도 하다’고 언급 했습니다. 

조선중기 선비화가 윤두서(尹斗緖)가 남긴 ‘격호도(擊虎圖)’에도 뇌신이 등장하는데 역시 벼락도끼를 들고 있습니다. 뇌신이 도끼를 지니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8세기경 중국의 당나라 때입니다. 중국 송대의 학재 채원정(1135~1198)은 벼락과 돌과의 관계에 대해 “벼락도 불기운이다. 불(火)이 다 타면 흙(土)이 되고 흙이 뭉쳐져서 돌(石)이 되는 것이 바로 그 이치다”라고 기록하였고, 이런 문화코드는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돌도끼가 꾸준히 뇌신의 지물로 여겨졌습니다. 김덕성의 ‘뇌공도’에서는 벼락도끼뿐 아니라 벼락칼(雷劍)까지 들고 있으니 그 영험함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측 제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은 김덕성이 그린 뇌공도이다. 산을 뽑을 것 같은 힘과 세상을 다 덮는 기운이 역대 최고이니 이처럼 웅건한 신장이 과연 누구인가. 맹분(孟賁)과 하육(夏育) 같은 장사라 하더라도 이에 이르지는 못하리라, 갑자년(1804) 8월”

김덕성(金德成, 1729∼1797)의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현은(玄隱)으로 사정(司正) 김두근(金斗根)의 아들이며 화원 남리 김두량(金斗樑)의 조카입니다. 조선후기 궁중화원으로 활약해 첨사(僉使)까지 올랐습니다. 그의 ‘풍우신도(風雨神圖)’에 표암 강세황(姜世晃)이 “필법과 채색법에서 모두 서양화법의 묘의를 얻었다”고 화평을 쓸 정도로 그림 솜씨가 남달랐는데 이 ‘뇌공도’가 그의 능력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와 함께 천둥 번개가 내리치는 아찔한 순간에도 뇌공신이 나타나 사악한 기운을 물리쳐주고 임신한 부인의 순산을 돕는다고 여겼던 초긍정적인 우리 옛 어른들의 지혜를 본받아 우리 후손들은 벼락도끼로 세상의 불의와 무명의 어둠을 내리치면 좋겠습니다.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thson68@hanmail.net

 

[1553호 / 2020년 9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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