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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양행신종합사회복지관장 성화 스님

오늘도 “나와 인연 맺은 사람 이 순간 행복하신가?” 자문!

가세 급격하게 기울며
대학 포기하고 ‘공무원’

효봉 스님 ‘엿장수’ 기억
업장소멸 위해 고난자초

2년 방랑 끝낸 후 통도사
정우 스님 권유 복지인연

강력 리더십·분석력 겸비
B급 복지관 3년만에 A급

어린이·장애인·노인 등
전 분야서 20여년 헌신

거동불편 주민 한 명도
복지혜택 누리도록 최선

“내 옆 누군가 서 있다!
고독 밀어내 위안·평안”

“좋은 직원·봉사자 만난
나는 행복 누리는 사람“

그 누구보다 앞장서 세상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성화 스님은 “저야말로 좋은 분들과 인연 맺어 큰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규모 사회복지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덕양행신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을  맡고 있는 성화 스님은 어린이집부터 장애인복지관, 노인복지관, 종합복지관 등 사회복지 전 영역에서 20여년간 헌신하며 복지계를 선도해 왔다. B등급의 성남 한솔종합사회복지관을 맡은지 3년만인 2006년 사회복지시설평가 ‘최우수 복지관’으로 탈바꿈시켰고 2009년에도 사회복지시설평가(중앙지표) ‘최우수(A)’에 등극 시켰다. B등급에 머물러 있던 서울 영등포장애인복지관도 2012년 ‘최우수(A)’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공로로 보건복지부장관상(2010), 조계종 총무원장상(2013), 대통령 표창장(2015)을 수상한 성화 스님은 냉철한 분석력과 강력한 리더십을 겸비한 소유자로 정평 나 있다.  

1996년 1월 서울 대치동 선재어린이집 운영에 문제가 있으니 가서 살펴보라는 은사 정우 스님의 권유로 복지와 첫 인연을 맺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엄두도 내지 못했을 법한데 한 장면이 시야에 잡혔다. 

어느 부모로부터 어린이집 선생님 한 분이 강력한 항의를 받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어린이 특별교육’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당시 어린이집이란 ‘탁아소’ 개념으로 인식되던 때라 교육의 질이 유치원보다 현저히 낮았다. ‘교육계획서’를 확인해 보니 A4용지 2장에 담긴 내용이 전부였다.

눈 덮인 경기도 광주 극락사에 들어섰다. 1박2일 동안 선생님들과 함께 토론하며 ‘교육계획서’를 작성했다. 한 해 동안 실시할 교육 중점을 확정하고 월별 계획들을 하나씩 세심하게 채워갔다. 
 

무료급식 대상자를 위한 도시락을 포장하고 있다. 덕양행신복지관 제공

구체적 일정에 따른 현장교육은 학부모도들도 크게 만족할 만큼 대성공이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갔다. 강남을 중심으로 한 서울 소재 어린이집들이 이 프로그램을 토대로 교육계획을 세웠을 정도다.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교육까지 담보한 보육시스템은 이렇게 시작됐다.

IMF 한파 때 서초동 장미어린이집을 맡았다. 우연히 한 아이를 보았는데 얼굴이 새까맸다. 요람에서 잠자는 아이를 노동현장에까지 데려가야 하는 가정의 아기였다. 그때 처음 이웃들을 둘러봤다. 맞벌이 부부지만 야간에도 일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해체된 가정의 아이들도 의외로 많았다. 서울 구룡사의 지원을 받아 강남을 중심으로 서울의 몇몇 거점시설을 확보해 직접 개발한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24시간 보육 및 휴일 보육’을 실시한 것이다.(1997)

한솔종합사회복지관을 맡았을 때도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저소득층 밀집지역의 아이들이었다. 지자체에 요청해 지원금을 받아 큰 쓰임새가 없었던 ‘방공호’를 개조했다. 그 공간에서 아이들은 마음껏 놀며 공부했다. 자원봉사에 나선 대학생들이 지도하는 ‘방과 후 교실’에서 1시간을 공부하면 10대가 놓인 컴퓨터실을 20분 동안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아이들은 최신형 게임을 좋아했다. 피자, 치킨 등의 간식시간이면 아이들은 환호하며 달려들었다. ‘방공호’를 찾는 아이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갔고 자연스레 독서실에서 책을 마주해 갔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복지관을 맡을 때마다 아이들부터 챙기는 성화 스님이다.

“사회의 그늘진 곳에 놓인 아이들은 탈선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친구나 이웃사람들이 무심코 던지는 한 마디에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내상의 깊이는 자신 외에 그 누구도 모릅니다. 그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비하나 조롱 섞인 말 한마디가 또 하나의 생채기를 냅니다. 아이들도 절망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곁에 다문화가정의 아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독거노인에 대한 배려도 남다르다. 아울러 계층이 서로 다른 주민과 주민 사이의 소통을 이어주는 역할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  

한솔종합사회복지관장을 지낼 때다. 어느 날 동네 한복판으로 엠뷸런스가 급히 들어왔다 나갔다. 독거노인 한 분이 전구를 교체하던 중 받쳤던 의자가 넘어져 추락했는데 대퇴부를 심하게 다쳐 눈앞에 놓인 전화기조차 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다친 지 하루 만에 발견돼 치명상은 입지 않았다.

직원들과 의기투합했다. 복지관 주변 영구임대아파트를 중심으로 1520세대를 전수조사해 보호가 필요한 100여명을 선정했다. 직원 13명이 관리했는데 1주일에 세 번 전화했다. 자원봉사자들과 연계해 건강음료를 전달하는 등 2주에 한 번은 가정을 방문했다. 응급조치까지 신속하게 이뤄지다 보니 늘 침울해 있던 어르신들이 점차 삶의 의지를 다져가며 활력을 찾아갔다. 그에 따라 고독사도 현격히 줄었다. 성화 스님이 선보인 이런 형태의 ‘맞춤형 노인돌봄 서비스’는 현재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고양 일산노인종합복지관장으로 있을 당시에도 일산 동·서구 내 6000여명의 독거노인을 살펴 750여명을 돌보았다. 집안 청소를 지원하는 ‘홈크리닝’과 세탁을 도와주는 ‘희망드림세탁’ 프로그램은 큰 ‘인기’를 끌어모았다. 지금도 치매, 우울, 자살예방 등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 운용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복지관을 자유로이 출입하며 이용하시는 분들은 ‘복지혜택’을 받고 있는 겁니다. 화두는 어떻게 하면 거동하기 어려운 분들까지도 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는가입니다.”

복지관에서 준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한몫하겠지만 ‘자원봉사’에 방점을 찍는다고 했다.

“손자 같은 아이가, 자식 같은 젊은이가, 친구 같은 노인이 ‘그 사람’의 손을 잡아 주는 겁니다. 자신을 도와주는 누군가가 내 옆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삼을 수 있습니다.”

독거노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터다. 나와 내 이웃에 대한 이야기다.  

성화 스님은 ‘어려운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일수록 청결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고양 일산노인종합복지관을 맡았을 때도 이용자 중심의 복지관으로 거듭나게 했다. 식당 공간 확대기 시급함을 간파한 후 2013년 5월 지상 2층, 연면적 1050㎡, 1회 수용인원 400석 규모의 ‘호수레스토랑’을 개관했다. 식사 시간 외에는 북카페와 음악 감상실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복지시설을 ‘혐오시설’로 보는 주민들이 많았습니다. ‘복지문화’ 시설로의 인식전환이 필요했는데 ‘작은 도서관’은 그 해법 중 하나였습니다. 2007년으로 기억합니다. 문화관광부 지원을 받아 한솔종합사회복지관 내에 1만여권의 도서와 최신 기능을 완비한 정보센터를 운영했습니다. 임대아파트 외의 많은 주민들도 이용하셨습니다.” 
 

국내 최고 시설의 고양시립 덕양행신종합사회복지관 전경.

덕양행신종합사회복지관으로 자리를 옮긴 성화 스님은 그동안 체득한 경험을 온전히 되살려 주민들에게 최고의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려 직원들과 애쓰고 있다. 이 복지관은 국내 최고의 시설을 구비하고 있으며 관리 또한 나무랄 데 없이 우수하다.

하여 성화 스님은 생태환경 등 삶의 터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주민들 스스로 직시하며 해결점도 모색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주민들이 직접 촬영하고 글을 써 편집해 내놓는 마을소식지 ‘행복소담’에 그 바람이 오롯이 투영돼 있다. 

하천, 아날로그 감성을 품은 마을, 향수 깃든 옛 건물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행복소담’ 네 번째 호에 ‘비어있는 행신2동 우체국’을 ‘동네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 달라는 글이 게재돼 있었다. 소유자인 과학기술통신부와 고양시가 계약을 맺으면 임대료 할인까지 받으며 주민시설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정보도 함께 담겼다.
 

지역주민들이 편집해 선보이는 ‘행복소담’

“덕양행신종합사회복지관은 지역 주민들 사이의 소통 창구입니다. 빈부, 남녀노소, 다문화가정 등의 편견을 벗고 주민들 서로서로가 안부를 물으며 가진 지식정보를 나누고 있습니다. 현대사회가 절실히 요구하고 있는 ‘공동체 인식’이 전 지역으로 확산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삭발염의한 인천의 사표가 취약계층에 눈길을 보내는 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성화 스님의 눈길에는 따듯함과 애틋함이 서려 있다. 성화 스님은 옛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갑작스러운 자동차 사고로 아버지가 유명을 달리하며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성화 스님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구걸하다시피 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9급 공무원 길로 들어섰다. 모범 공무원 표창(1990)도 수상했다. 

시절 인연이 도래했던 것일까! 시청 기획관리실 법무담당관직을 놓고 길을 떠났다. 일반회사에도 두어 번 들어가 보았지만 성에 차지 않아 금세 그만두었다. 그러던 중 효봉 스님의 출가인연이 떠올랐다.

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판사가 되었지만 재판과정에서 사형선고를 내린 후 밀려온  회의감에 법복(法服)을 벗고 엿판을 들었다. 전국을 3년이나 돌았음에도 고뇌가 가시지 않아 38세 때 금강산 신계사로 들어가 석두(石頭) 스님을 친견한 후 출가했다.

‘두터운 내 업장이라도 소멸해 보자!’

원양어선을 타기로 작심하고 제법 이름난 수산업체의 면접을 보았다. “내일 나오라”는 확답을 듣고 여인숙에 머물렀다. 화장실에 들어가 앉았는데 벽에 박힌 못에 꿰어진 휴지 대용의 오려진 신문지가 눈에 들어왔는데 제목이 가관이었다.

‘선상 폭력….’ 자칫 잘못했다가는 바다 한가운데 수장될 수 있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이른 아침 일어나 배로 향하는 길 반대편으로 나갔다.

강원도 고한의 탄광촌에 들어섰다. “내일부터 일하라”는 확답을 듣고 인부들이 머무는 방에 들어가 몸을 뉘었다. 술과 가래, 먼지가 뒤섞인 특유의 냄새가 폐부를 찔렀지만 꾹 참았다. 이튿날 아침 현장으로 가니 갱도에서 인부들이 막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이 어찌 저렇게 새카맣단 말인가!’

깊이도 모르는 땅속에 웅크린 공포가 지상으로 올라와 엄습하는 듯했다. 바로 뒤돌아섰다. 지금도 그 기억 생생하다고 한다. 탄광촌에서 고한 읍내까지 울면서 걸어 내려온 그 기억 말이다. 그 공포, 그 울음 삼키고 통도사 산문을 열었다.

사회에서 말하는 복지란 ‘행복한 삶’ ‘안정되고 만족한 삶’ ‘생활 욕구가 충족된 삶’을 말한다. 그러고 보면 그 누구보다 앞장서 이 세상에 행복을 전하는 성화 스님이다. 

“제 능력이 출중해 복지관을 잘 운영해왔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아니었습니다. 저인들 일하던 중 화를 낸 적이 없었겠습니까? 급하게 밀어붙이는 일도, 차일피일 미룬 일도 많습니다. 그 모든 것을 감내하며 묵묵히 따라준 복지관 직원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도 없습니다. 자원봉사에 나서주시는 분들이 없다면 주요 프로그램은 작동할 수 없습니다. 특히 대학생을 비롯한 청·장년들의 자원봉사활동이 지역에 불어넣는 활기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문화, 체육, 의료, 환경, 행정 등 전 분야에 걸쳐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맡은 한솔종합사회복지관장직을 놓을 때 예정보다 한 달이나 늦게 퇴임했다. 주민들이 애써 준비한 이임식을 끝내 마다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파트단지를 걷다보면 15층에서 내려다보시는 어르신들이 손을 흔든다. 

“저야말로 좋은 분들과 인연 맺어 큰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자문합니다. ‘나와 인연 맺은 사람들은 이 순간도 행복하신가?’ 갈 길이 아직 먼 듯합니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성화 스님은
중앙승가대·동국대 불교대학원 졸업. 성남 한솔종합사회복지관, 서울 영등포장애인복지관, 고양 일산노인종합복지관 관장 역임. 현재 고양 덕양행신종합사회복지관장, 장안사 주지. 조계종 총무원장상, 보건복지부 장관상, 서울신문 올해의 종교인 대상, 대통령 표창장, 경기도지자 표창장, 고양시장 표창장 등을 수상했다.

 

[1554호 / 2020년 9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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