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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여래현상품' ② - 여래 현상

기자명 해주 스님

부처님 방광에 의한 광명설법의 모든 모습들이 바로 여래현상

부처님은 두루 중생들에게 나타나시지만 보리좌 떠난 적 없다
부처님 출현은 연기 아닌 여래 성품 그대로 일어난 여래성기
승음보살이 읊은 첫 게송은 부처님 바다에 대한 답으로 총상

승음보살이 부처님 공덕을 찬탄하는 게송을 주련에 새긴 하동 칠불사 대웅전. 칠불사 제공
승음보살이 부처님 공덕을 찬탄하는 게송을 주련에 새긴 하동 칠불사 대웅전. 칠불사 제공

‘여래현상품’에서는 모든 보살 세간주들이 다함께 마음으로 생각한 질문에 대하여, 부처님께서 두 번의 방광에 의한 광명으로 설법을 해주십니다. 그것이 부처님께서 모습을 나타내신다는 여래현상입니다. 부처님께서 입과 여러 치아 사이에서 광명을 놓으시는 첫 현상부터, 미간백호의 광명설법에 이르기까지 다 여래현상인 것입니다.

“그 때에 세존께서 모든 보살들의 마음에 생각하는 바를 아시고, 곧 입[面門]과 여러 치아 사이에서 부처님 세계 미진수의 광명을 놓으셨다. (중략) 그때에 시방 세계바다의 일체 회중이 부처님께서 광명으로 깨우쳐 주심을 입고 나서, 각각 비로자나여래의 처소에 함께 와서 친근하고 공양 올렸다.”

부처님께서 입과 치아에서 방광하신다는 것은 설법하심을 뜻합니다. 얼굴의 문이라는 면문(面門)]은 입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광명은 상광(常光)과 방광(放光), 또는 몸으로 광명을 놓으시는 신광(身光)과 지혜의 광명인 지광(智光)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보살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입으로 광명을 놓으시는 것이니, 상광과 지광이 방광과 신광으로 나타난 것이라 하겠습니다.

위 인용문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부처님의 면문치간 광명의 깨우침을 입은 시방세계 보살들이 함께 비로자나여래 처소에 모여왔습니다. 화장장엄세계해의 동방세계에서 온 관찰승법연화당 보살을 위시하여 시방세계의 모든 보살들이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양올리고는, 각각 스스로 갖가지 사자좌를 변화해 만들어서 그 위에 결가부좌하였습니다.

그러자 십억 부처님 세계 미진수의 보살마하살들도 권속보살들과 함께 모여와서 마찬가지로 그 위에 결가부좌하였습니다.

이처럼 ‘세주묘엄품’에서 ‘여래현상품’으로 품이 바뀌니, 질문을 드린 청법대중들 외에 새로운 대중들이 또 늘어남을 볼 수 있습니다. ‘화엄경’에서는 9회 39품의 회·품이 바뀔 때마다 거의 대중들이 새로 모여와서, 온 법계 일체중생들이 다 ‘화엄경’의 청법대중이 됩니다.

이러한 설법을 들을 대중들의 청법에 따라 부처님께서 다시 미간광명을 놓으십니다.

“그 때에 세존께서 일체 보살 대중에게 여래의 가없는 경계와 신통력을 얻게 하시려고 미간(眉間)에서 광명을 놓으셨다. 이 광명의 이름은 일체 보살의 지혜 광명으로 시방을 널리 비추는 창고[一切菩薩智光明普照耀十方藏]였다. 그 모양은 마치 보배 색 등불구름 같아서 시방의 일체 부처님세계를 두루 비추어서 그 가운데 국토와 중생들을 모두 나타나게 하였다. (중략) 이러한 일을 짓고 나서 부처님을 오른쪽으로 돌아서 발밑으로 들어갔다.”

부처님께서 여래의 가없는 경계와 신통력을 얻게 하시려고 미간에서 광명을 놓으신, 이 미간광명은 보살들에게 가장 높은 법을 설하실 때의 광명입니다. 이 광명이 시방의 일체 부처님세계를 두루 비추고 국토와 중생들을 모두 나타나게 하였습니다. 또 세계를 진동하여서 수없는 부처님을 나타내며 법륜으로 여래의 바라밀을 나타내 보이고, 중생들이 생사를 벗어나게 하며, 보현보살 도량의 대중들을 다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이 광명이 부처님을 오른쪽으로 돌아 부처님 발밑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처럼 부처님 미간의 광명이 부처님 발밑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매우 깊고 중대한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부처님 발밑으로 들어간 이 광명이 우리가 앞으로 만나게 될 제2회 설법의 광명인 부처님 양족륜광으로 다시 나오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도 해당 경문에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처럼 광명이 돌고 간 그 때에 부처님 앞에 큰 연꽃이 홀연히 출현하였으니, 화엄회상이 연화장임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이 꽃이 생겨나고 나서 한 순간에 보살마하살들이 또 부처님의 백호상(白毫相) 가운데서 출현합니다. 일체법승음(一切法勝音)보살이 수많은 보살 대중들과 한꺼번에 나와 부처님을 오른쪽으로 한량없이 돌고는 부처님의 발에 예배한 후, 승음보살은 연화대에 앉고 모든 보살 대중들은 각각 연꽃 꽃술 위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승음보살이 깊은 법계를 깨달아 크게 환희하고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관찰하고 부처님 공덕을 찬탄하는 10개의 게송을 읊습니다. 다음은 그 첫 게송입니다.

부처님 몸은 법계에 충만하시어
널리 일체 중생 앞에 나타나시니
연을 따라 감응하여 다 두루하시되
항상 이 보리좌에 계시도다.
불신충만어법계 (佛身充滿於法界)
보현일체중생전 (普現一切衆生前)
수연부감미부주 (隨緣赴感靡不周)
이항처차보리좌 (而恒處此菩提座)

부처님께서 법계에 충만하셔서 연따라 두루 중생들에게 나타나시지만 항상 보리좌에 앉아계시고 보리좌를 떠나신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화엄경의 설처 또한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법계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중생연을 따라 교화를 펴시지만 부처님 출현은 연기(緣起)가 아니고 성기(性起)라고 일컬어집니다. 여래의 성품이 그대로 일어난 여래성기가 여래출현인 것입니다. 승음보살이 읊은 이 첫 게송은 부처님바다[佛海]에 대한 답으로서 총상이고, 나머지 아홉 게송은 다른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간주됩니다.

승음보살에 이어서 대중가운데 10보살이 각각 10개의 게송으로 부처님 공덕을 찬탄합니다. 10이라는 수가 화엄의 중중무진 도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원만수인 것은 많이 들어왔고 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0보살의 게송을 차례로 하나씩 인용해보겠습니다. (< >안은 보살 명호)

⓵ “부처님의 몸과 광명과 색상이 부사의하시니, 중생들이 믿고 즐거워하면 따라 응하여 다 보게 하시도다.” <관찰일체승법연화광혜왕>
⓶ “부처님께서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 그 앞에 널리 나타나시니, 중생들의 보는 것이 다 부처님의 신통력이로다.” <법희혜광명>
⓷ “일체 모든 부처님 국토에서 낱낱 모든 보살들이 부처님 몸에 널리 들어가되 가없고 또한 다함도 없도다” <향염광보명혜>
⓸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일체 모든 여래께서 굴리신 미묘한 법륜을 이 법회에서 다 들을 수 있도다.” <사자분신혜광명>
⓹ “모든 부처님의 광대한 음성을 법계에서 듣지 못함이 없으니, 보살들이 요달해 알아서 음성바다에 잘 들어가도다.” <법해혜공덕장>
⓺ “일체 모든 여래께서 온갖 상을 멀리 여의셨으니, 만약 이 법을 능히 알면 이에 세간의 도사를 보리라.” <혜등보명>
⓻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일체 법을 관찰하되, 들어가고 머무르고 나오는 때를 보는 것이 모두 명료하도다.” <화염계보명지>
⓼ “부처님께서 원만한 음성으로 진실한 이치를 천명하시고, 그 이해의 차별을 따라 다함없는 법문을 나타내시도다.” <위덕혜무진광>
⓽ “만약 사람이 신해와 모든 큰 서원이 있으면 깊은 지혜를 구족하여 일체 법을 통달하리라.” <법계보명혜>
⓾ “비로자나부처님께서 원력이 법계에 두루하시어 일체 국토가운데서 항상 위없는 법륜을 굴리시도다.” <정진력무애혜>

이와 같은 시방 보살들의 게찬 역시 광명소리로서, 부처님의 백호상에서 출현한 승음보살의 게찬과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무변경계와 신통력을 얻게 하시려는 미간광명의 지혜가 그 속에 담겨있음을 볼 수 있겠습니다. 광명소리인 게송에서 청법대중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표11>, <표12> 참조
 

부연하자면 광명을 보고 광명을 입는 것이 곧 묘음 설법을 듣는 것이며, 또 부처님의 방광에 의한 광명설법의 모든 모습이 여래현상임을 알 수 있겠습니다.

‘청량소’에서는 광명의 모양이 현상임을 구체적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즉 면문의 광명상으로 시방 대중들을 부르고, 미간의 광명상으로 부처님이 설법주임을 보여주며, 일체세계를 진동하여 여러 근기를 경계하고, 부처님 앞 연꽃의 출현으로 의보의 결과를 말해주며, 백호상에서 승음보살 등 보살대중들이 나온 것은 가르침이 부처님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임을 나타내는 등, 이 다섯 가지 모습으로 여래현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래현상품’에서는 끝으로 이 도량에서처럼 일체 세계바다의 낱낱 사천하의 모든 도량 중에서도 다 또한 이와 같이 한량없는 대중들이 모인 법회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함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품의 마무리에서도 하나가 전체이고 하나 안에 전체가 있어 중중무진인 화엄도리를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 뜻대로 부처님을 친근할 수 있고 부처님의 광명 설법을 들을 수 있음이 환희롭고 환희롭다고 하겠습니다.

해주 스님 동국대 명예교수 jeon@dongguk.edu

 

[1554호 / 2020년 9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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