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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아공(我空)에 이은 법공(法空)’

기자명 현진 스님

제도하는 이도 받는 이도 없어야 진정한 보살

불교의 정체성은 무아론에서 비롯
‘나’라는 실체가 따로 없는 것처럼
그런 법 또한 집착 말라는 가르침

제17 구경무아분에는 제2 선현기청분과 제3 대승정종분에 걸쳐 나온 문장과 유사한 내용이 등장한다. 우선 선현기청분에서 수보리가 부처님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이는 어떻게 그 마음을 머물게 하고 항복시켜야합니까?”라고 여쭙자 대승정종분에서, ①모든 중생을 남김없이 제도하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머물게 하되 설령 중생을 모두 제도하더라도 제도한 중생이 있다고 여겨선 안 된다 하셨다. 그리고 ②사상(四相)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마음을 장악하라 하셨으니, 내가 제도했다는 아상(我相) 등이 있으면 이미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라 답하셨다. 그리고 구경무아분에 와서 수보리가 동일한 질문을 부처님께 여쭙는데, 이때 부처님의 가르침은 앞 대승정종분의 내용과 동일한 듯하나 말미에 한 가지 추가된 내용으로 되어있으니, 그 답변을 세 부분으로 나눠보면 다음과 같다. ①아뇩보리심을 낸 자는 일체중생을 멸도케 하리란 생각은 물론이요 멸도케 하고도 멸도한 중생이 하나도 없다고 여겨야 하는데, ②그렇게 아상(我相)이 존재하지 않아야[我無] 보살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며, ③더 나아가 제도하는 이도 제도를 받는 이도 없어야[法無] 비로소 진정한 보살이라 일컬어질 수 있다고 답하셨다.

정종분 이후 무아분 앞까지는 대승불교가 흥기하기 직전에 이미 많이 희미해진 무아법(無我法)의 가르침이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는 곧 ‘나라고 할 만한 고정불변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법의 아공(我空)을 부처님께서 수보리를 통해 일러주시는 것인데, 제7 무득무설분에 이르러선 그렇게 여래께서 설한 법 또한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법공(法空)까지 언급되어 있다. 먼저 ‘아공’이 이뤄진 다음에야 ‘법공’이 이뤄질 수 있으므로 약간의 시차를 둔 것이다. 그리고 무아분에 와서는 정종분과 동일한 질문에 진정한 보살이라면 나라는 것이 없어야 한다는 ‘아공(①, ②)’은 물론 그런 법 또한 결국엔 집착함이 없어야 한다는 ‘법공(③)’까지 답하신 것이다. 이처럼 정종분과 무아분의 가르침은 반복되는 내용 같지만 기실 마땅한 순서대로 펼쳐놓으신 완벽한 가르침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런데 범본을 거의 직역하다시피 한 현장 스님의 한역본에는 무아분은 물론 정종분에도 위의 ③번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즉, 두 곳에 모두 ‘무유소법명위발취보살승자(無有少法名為發趣菩薩乘者, 보살의 수레를 일으켜 나아가려는 자를 위한다고 이름 할 얼마간의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란 문장이 들어있다. 그에 반해 현존하는 대표적인 범어본(梵語本)에는 구마라집 스님의 한역본과 동일하게 정종분에는 ①과 ②만이, 그리고 무아분에는 ①과 ② 및 ③의 내용이 모두 실려 있다.

기본적인 범어판본 및 구마라집과 현장 스님이 각각 저본으로 삼은 범어판본에 대한 판본연구가 없이 이와 같은 차이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뿐이겠지만, 부족한 나름대로 한두 가지 추론은 가능하리라본다. 구마라집 스님의 번역에 생략과 의역(意譯)이 적지 않은 것에 항상 부족함을 느낀 현장 스님이 보다 원전에 충실한 한역본을 추구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금강경’ 또한 사상(四相)이 아닌 구상(九相)으로 보충하여 놓았을 것인데, 그 참에 ③번 내용 또한 저본한 범어본에 없었더라도 혹시 현장 스님께서 정종분에 빠진 것으로 여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그랬다면 이는 ‘아공’과 ‘법공’이 시차를 두고 전개되어야 함을 간과한 스님의 실수가 될 것인데, 삼장법사(三藏法師)께서 그런 교리적인 실수를 하실 일도 만무인 것 같기도 하고….

브라만교에서 불교가 나름의 정체성을 지니고 일어나게 된 힘은 ‘무아론’이다. 그러다가 ‘무아’의 관념이 안팎으로 수자상(壽者相)과 인상(人相) 등으로 인해 희석됨으로써 불교의 근본이 희미해지고 있을 때 불교의 근본을 복원시키고자 부처님 가르침대로의 ‘무아’를 다시 재정비하고 일어난 움직임이 대승불교이다. 그래서 ‘아공'은 물론 아공을 이룬 뒤에 예견되는 집착마저 없애버릴 ‘법공’까지 맥을 짚어 새롭게 불교를 설한 ‘금강경’이 대승불교의 시금석이자 근간이 되는 경전으로 지금까지 꾸준히 읽혀지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54호 / 2020년 9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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