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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광명 찬란한 생명의 빛, 광덕 스님의 발원

기자명 고명석

불법이 사회‧국가 구원하고 빛내길 발원

광명 찬란한 생명의 빛 월간 ‘불광’ 창간‧불광법회 개설해 전법
“보현행원으로 불국토 성취” 발원하며 일상에서 ‘보현행원’ 강조
“자기 발원 충족 그치지 말고 불법 세상 넘쳐나기를 서원” 당부

광덕 스님은 월간 ‘불광’을 창간하고, 불광법회를 개설해 전법활동을 펼치며 일상에서의 보현행원을 강조한 이 시대 보살로 추앙받고 있다.
광덕 스님은 월간 ‘불광’을 창간하고, 불광법회를 개설해 전법활동을 펼치며 일상에서의 보현행원을 강조한 이 시대 보살로 추앙받고 있다.

공(空), 모든 규정, 그 어떤 한계에도 틀 지워지지 않는 생명의 바다가 허무적 관념, 한없는 부정의 늪으로 빠지려 할 때, 그것을 다시 생활 속에 움직이는 활공(活空)으로 굳건히 세워 이 삶의 현장에서 빛나는 나의 모습으로, 너의 얼굴로 광명을 발하도록 한 것은 한국불교의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희망이었다. 공은 보현행자의 원행으로 피어나고 전법으로 구체화되었다. 거기에 광덕 스님이 자리하고 있었다.
   
광덕(光德, 1927~1999 ) 스님은 1927년 경기도 오산의 고씨 집안 2남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속명은 고병완(高秉完)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매우 가난하여 어렵게 학업을 이어나가 고학으로 야간 대학에 들어가게 된다. 그 와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형, 누나와도 사별하는 고통과 마주한다. 그는 폐 하나를 떼어낼 정도로 몸마저 병약했다. 그의 주변에 일상화된 죽음과 아픔은 절망에 가까웠다. 시대상황도 일제강점기, 태평양 전쟁, 6‧25 전쟁 등으로 암울하기 그지없었다. 

1950년 24세의 청년 고병완은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병 치료차 부산 범어사로 들어간다. 곧바로 출가하지 않고 10년간 고(高) 처사로 지내며 동산 스님의 가르침으로 선방에서 화두 참선에 들었으며 신소천(申韶天) 스님을 만나 ‘금강경’ 공부에 매진한다. 그것은 관념으로서의 불교가 아니라 자기 삶 자체로서의 불교를 받아들이기 위한 탁마의 과정이었다. 고병완은 소천과 더불어 ‘금강경’을 통해 내면적인 고통을 넘어 사회의 아픔과 갈등을 치유하고자 했다. ‘금강경’의 반야 지혜만이 중생의 대립 감정, 미혹한 감정을 깨뜨려 세상에 평화를 불러오기 때문이었다.   

광덕은 1960년 34세 때 동산 스님 문하로 정식으로 출가하여 비구계를 받는다. 그는 1965년부터 2년 동안 봉은사 주지를 맡으며, 대학생수도원을 설립하고 젊은 인재들을 양성한다. 그는 도래하는 역사를 쓴다. 1974년(48세) 11월 월간 ‘불광(佛光)’을 창간하고 이듬해에 불광법회를 개설했다. 그는 ‘불광’ 창간호에서 말한다.

“아침 해, 바다를 솟아오른 찬란, 억겁의 암흑이 찰나에 무너지고 광명 찬란, 광명 찬란 광명만이 눈부시게 부셔지는 광명만의 세계”

광명 찬란한 생명의 빛, 그것이 불광이다. 그 빛은 내 마음에 갖추어져 있는 불성이요 부처님의 생명이다. 이것은 다함없는 공덕의 바다이며 지혜의 곳간이다. 그래서 광덕은 “태양은 차라리 저물 날이 있어도 우리의 본분 생명은 저물 줄 모르는 구원 태양”이라고 말한다. 이 불성은 말 이전의 존재의 실상이다. 그렇지만 그 말 이전은 말이 터 잡은 이곳에서, 우리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햇살처럼 피어오른다. 이러한 불성에 대한 믿음, 그 빛나는 공덕에 대한 신뢰, 그리고 그 행위와 증명을 한 마디로 담는 것이 ‘마하반야바라밀’이다. 반야는 공이다. 오염된 견해를 없애면서 다시 세상을 탁 트이게 환하게 비추는 것이 공이다. 광덕은 이러한 공의 적극적 측면을 강조한다. 그것이 광명 찬란한 불광이요 마하반야바라밀이다.

이러한 반야의 생명은 보현행원을 통해 이 세상에 역사와 삶으로 드러난다.  보현보살의 10가지 행원 말이다. 보현행원은 삶의 현장에서 불성, 그 청정한 깨달음의 빛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몸짓이다. 깨닫고 나서 실천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가 본래 갖추고 있는 본래 부처자리를 믿고 그것을 꺼내서 쓰는 보살행 그 자체가 깨달음을 보여주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광덕은 “보현행원을 통해서 제불여래가 출현되고 정불국토가 열려 간다. 보현행원을 통해 부처님을 이루고 불국토를 이루거늘, 그밖의 것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라고 말한다. ‘보현행자의 서원’ 일단을 보자.

“보현행원은 나의 영원한 생명의 노래이며, 나의 영원한 생명의 율동이며, 나의 영원한 생명의 환희이며, 나의 영원한 생명의 위덕이며, 체온이며, 광휘이며 그 세계입니다. 나는 이제 불보살님 전에 나의 생명을 다 바쳐서 서원합니다. 보현행원을 실천하겠습니다. 보현행원으로 보리를 이루겠습니다. 보현행원으로 불국토를 성취하겠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이 서원을 증명하소서.”

광덕은 발원과 발원문의 가치를 중요하게 인식하고 불광법회 형제들에게 주지시켰다. 그가 지은 ‘법회요전’을 보면 다양한 발원문이나 축원문이 나온다.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마음을 다잡아 주는 여러 가지 일상 발원문을 보면 그가 보현 행원의 원력을 발원문을 통해 얼마나 강조했는지 알 수 있다. 

“대자비 세존이시여! 이제 저희들은 부처님의 끝없는 은혜 광명 속에서, 지성으로 감사드리고 환희 용약하오면서 서원을 드리옵니다. 저희들은 반야 법문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생명의 바닥에서 영원히 빛나는 부처님의 끝없는 은혜를 잠시도 잊지 않겠습니다. (중략) 미혹의 구름이 덮여 올 때, 믿음의 큰 바람이 일게 하시며 고난과 장애를 보게 될 때, 바라밀 무장애 위덕이 빛나게 하여 주옵소서….”(‘축원문 반야보살의 행원 기도’)

광덕은 자신과 관계되는 원을 세워 그것을 충족하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그치지 말고 부처님의 진리 광명이 온 누리에 넘쳐나기를 발원하라고 했다. 그렇게 발원하는 불자는 성인(聖人)이라 했다. 성인이란 내 안의 불성 발현이요 보현행이지 않을까.

“… 저희들 이제 이 땅에 감로법을 널리 펴 부처님 정법이 영원히 머물며, 겨레와 국토를 법성광명으로 빛낼 것을 굳게 서원하오며, 거듭 자비하신 삼보전에 계수하옵나이다.”(‘호법발원문’ 중)

이렇게 광덕은 불법이 사회와 나라를 구원하고 밝게 빛내길 발원한다. 그는 불법을 전하는 전법은 단순한 포교가 아니라 인류를 깨우치는 생명의 빛이라고 강조한다. 법의 등불인 법등(法燈)이 나를 밝히고 세상을 밝혀 노동의 현장, 복지의 현장, 고통과 아픔의 현장으로 스며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1982년 송파 석촌호수 인근에 자리한 불광사는 고통과 대립이 소멸하고 새 역사가 움트는 현장이지 않은가.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554호 / 2020년 9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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