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 인연 ⑥

기자명 박희택

오직 연기만 있을 뿐 우연은 없다

나비 날개짓이 태풍 되는 건
우연적 사소함의 연기적 변증
코로나19의 세계적인 혼돈도
연기현상에 대한 무지의 결과

“때로는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준다”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명대사로 널리 알려진 것인데, 한 여행서적의 에필로그에 먼저 쓰인 문장이다. 이 문장은 비인과적 연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수행자의 불교공부는 연기의 상의상관성을 이처럼 역동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된다. ‘사랑의 불시착’은 일본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는데, 일본의 비인과적 연기에 대한 이해는 일본속담 “바람이 불면 통장수가 돈을 번다”에 녹아 있다. 바람이 불면 흙먼지가 일어나고, 흙먼지가 일어나면 눈병에 걸리는 사람이 많아진다. 눈병에 걸린 사람이 많아지면 눈이 멀어지는 사람이 발생하고, 눈이 멀어지는 사람이 발생하면 이 사람들은 샤미센(3개의 현으로 된 일본의 대표적인 현악기)을 켜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샤미센의 수요가 늘어나면 샤미센의 재료가 되는 고양이 가죽의 소모량이 늘어나 고양이 수가 줄어들고, 고양이 수가 줄어들면 쥐가 늘어난다. 쥐가 늘어나면 쥐가 통을 갉아먹고, 쥐가 통을 갉아먹으면 통장수가 돈을 벌게 된다. 결국 바람이 불면 통장수가 돈을 벌게 된다는 것이다.

평면적으로 바람이 부는 것과 통장수가 돈을 벌게 되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으나, 연기의 눈으로 보면 명확한 비인과적 연기의 현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제반현상은 어떠한 것이든 연기의 진리를 벗어난 것은 없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우연이라 부르는 것조차 연기의 철칙을 벗어나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자인자과의 인과율은 선인선과와 악인악과로 인과적 연기를 보이나, 전혀 무관하게 우연처럼 전개되는 것도 비인과적 연기의 현상으로 연기의 범주 안에 있다.

이 시대에 심각성을 띠고 다가오는 기후위기도 지구상에 사는 깨닫지 못한 무명인류(無明人類)의 공업(共業)이 빚어낸 연기적 현상이 아니고 무엇이랴. 미국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정리한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는 것도 연기의 날개짓에 다름 아니다. 브라질에 있는 한 나비의 날개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우연적인 한 사소함이 연기적으로 변증된다는 의미이다.

카오스이론(chaos theory)은 초기 조건의 민감한 의존성에 따른 미래결과의 예측 불가능성을 내용으로 하지만 비인과적 연기론의 관점으로 보면 그 예측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시공을 가로질러 어떤 하나의 원인이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예측하기는 용이하지 않지만, 이 세상[法界]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상의상관성을 염두에 둔다면, 그 과정은 바람이 불면 통장수가 돈을 벌게 되는 과정과 같이 혼돈(카오스)에 머물지만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혼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의 발생과 전파 과정은 카오스이론을 실감나게 해주고 있지만, 이는 연기의 현상에 무지함이 빚은 혹독한 결과이며 그 치유는 연기적 접근으로 가능함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찾아가는 것은 연기적 접근으로 상의상관의 네트워크를 통해 모든 존재가 본래의 생명자리에 들게 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무명의 작위(作爲), 연기를 이해하지 못한 행위로 본래의 생명자리를 벗어난 것을 바로잡아 주면 된다.

이 법계(法界)는 심계(心界)의 다른 표현이다. 심계이기에 법계의 모든 현상은 마음(심왕-심소)을 벗어나 달리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으로 연기를 깨치면 그것이 깨달음이고, 그 자리가 법계이다. 법계의 연기성을 마음으로 깨쳐 나가는 삶을 사는 이가 수행자이고 우리 시대의 환경보살이다. ‘유마경’ 불국토품의 “만약 보살이 정토를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마음을 맑혀야 한다(若菩薩欲得淨土 當淨其心)”는 말씀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깨쳐 나가는 법계의 연기성은 있는 그대로의 존재현상인 상의상관성을 의미하지만, 구체적으로는 공성(空性)과 중도성(中道性)을 의미한다. 용수는 ‘중론’을 통하여 이 점에 대해 깊이 통찰한 바 있다. 연기가 공이고, 중도인 점을 경전으로 만나보도록 하자.

박희택 열린행복아카데미 원장 yebak26@naver.com

 

[1554호 / 2020년 9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