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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정규의 ‘불두’ : 목판화의 재발견

기자명 주수완

불교목판화 무한 가능성 대중에 알렸던 선구자

부처님 자비·심오한 사상에 대한 표현 보다는 이미지 강조
무상함이 오히려 궁금증을 자아내며 형상통해 ‘공’ 보여줘
사방의 ‘불’자 등으로 부처 형상 빌어 공허함 보여주는 듯

‘불두’, 종이에 목판, 28×24㎝, 1958년.

정규(鄭圭, 1923~1971)는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나 서울의 경기공립상업고등학교(현재의 경기상고)를 1941년에 졸업했다. 이어 일본으로 건너가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으며, 1944년 귀국했다. 해방 후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그의 고향인 고성이나 그가 활동했던 원산 지역은 북한에 속했지만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월남하여 부산에서 국방부 종군화가단에 속하여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휴전 협정 두 달 전인 1953년 5월에는 부산의 르네상스 다방에서 첫 개인전인 ‘정규 소품 개인전’을 열고 15점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당시에는 김환기도 방문하여 교유하는 등 전시임에도 부산에서는 문화 활동이 이어지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그가 서울로 올라올 무렵, 마침 록펠러 재단의 원조로 국립중앙박물관에 부설기관인 한국조형문화연구소가 설립되어 그곳에서 연구원으로 1962년까지 일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 전통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으로 생각되는데, 특히 당시 미술부장이었던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과 만나면서 많은 영향을 받게 된 것으로 보인다. 최순우 선생도 이후 그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게 되는 등 깊은 친분을 쌓았다.

정규는 기독교도였다. 때문에 그가 불교와 관련한 작품을 몇 점 남겼다고 해서 불교를 사랑한 작가였다고 할 수 있을지는 말하기 어려우나, 그에게 불교가 한국의 전통미술로서 큰 영향을 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특히 그의 작품세계는 기본적으로 서양화에서 출발했지만, 나중에는 도자와 목판화에 주력하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목판화는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목판화 분야에 뛰어난 족적을 남기고 있다는 점에 감화된 면이 있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는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을 가진 나라로 평가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정규가 우리 미술 속 목판화의 가치를 알았을 무렵에는 아직 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기 전이었다. 그러나 아마도 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목판으로 인쇄된 다양한 불교경전과 그 안의 변상도를 접한 바 있을 것이다.

목판본 ‘불정심다라니경’ 권상 변상. 명대 판본의 조선 1484년 번각본. 원주 고판화박물관 소장.

특히 1957년 록펠러 재단의 초청으로 미국 로체스터에 1년간 머물게 되었는데 아마 그때의 경험인지 1958년 동아일보에 쓴 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판화는 결코 새로운 분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에게 새로운 미술의 표현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와 같이 판화를 등한시하는 지역의 미술인들에게 또하나의 관심사가 되어도 무방할 것이다.” 아마도 오랜 판화의 전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현대미술로 계승하지 못한 우리 미술계와 반대로 목판화 미술의 전통이 짧은 미국이나 서양미술계가 오히려 판화를 적극적으로 현대미술에 접목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1958년 그는 ‘한국판화협회’ 창립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그의 두 번째 개인전은 오로지 목판화 작품으로만 이루어졌다. 이후 1963년에는 판화가 이항성과, 1969년에는 이항성, 최영림, 석도륜과 ‘목판화 4인전’을 여는 등, 사실상 목판화에 더 주력하여 우리나라 판화미술을 선도하기에 이르렀다. 

본업이었던 서양화에서는 조르주 브라크 등 입체파 미술의 영향을 보이고, 그의 채색판화를 대표하는 ‘노란 새’에서도 그러한 영향이 발견되는 반면, 오늘 소개할 ‘불두’는 매우 전통적인 불교적 목판화의 표현기법을 보여준다. 그가 서양화가이기 때문에 언뜻 ‘불두’조차 한편으로는 입체파 미술의 표현기법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막상 불교의 전통 목판변상도 속에 등장하는 부처의 표현과 비교해보면 서로 유사한 표현기법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목판화 특유의 간결하고 생략적이지만 핵심을 추려내는 성향과, 그림 같으면서도 깎아내는 기법으로 만들어진 필선이기에 느껴지는 더욱 날카롭고 강렬한 선의 묘사는 모더니스트인 그에게 매우 현대적이고 참신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원래 판화는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지만, 정규는 목판화 자체의 표현기법을 추구했을 뿐, 실제로 이들 목판화를 대량으로 찍어내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제 더 이상 대량생산을 위해 목판화라는 기법을 다시금 사용할 필요는 없다. 그가 글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이제 목판화는 그 순수한 표현기법만으로도 존재가치를 지닌다. 루쉰(魯迅, 1881~1936)이 목판화 운동을 통해 사회계몽에 있어 목판화와 같은 시각매체의 중요성을 강조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목판화의 보급적 성격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루쉰의 목판화가 지니는 강력한 호소력이 더더욱 목판화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정규의 ‘불두’에서 부처의 자비나 깨달음의 기쁨과 같은 심오한 사상을 읽기는 어렵다. 목판화는 원래가 선전적이고 도발적인 성격이 강해서 그런지 그저 부처라는 이미지만이 강하게 전해온다. 거기다 사방에다 ‘불(佛)’자까지 적어두었으니, 마치 티베트에서 볼 수 있는 소원을 비는 깃발인 룽따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반면 막상 이 판화 속 부처님은 무심한 듯 너무 단순하여 우리에게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것 같아 오히려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가? 사방의 ‘불’은 ‘나무아미타불’과 같은 염불을 끊임없이 하라는 의미일까? 그러자 이 작품이 속삭이는 것 같다. “아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 원래 모든 것은 공(空)한 것이고, 나는 지금 그 공 자체이다.” 그러고보면 목판의 단순함은 ‘공’을 닮았다. 과거의 불교 목판화가 그렇듯 매혹적인 것은 불필요한 것을 덜어낸 목판화의 기법이 덜어내면 덜어낼수록 공을 닮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사방의 ‘불’자 조차도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오로지 이 작품은 부처의 형상을 빌어 그조차 공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불교에 있어 목판인쇄는 전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고, 또한 큰 불사이기도 했다. 다행히 근래 몇몇 작가들에 의해 불교목판화가 소개되고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고 있다. 아마도 그 선구가 정규였고, ‘불두’는 이 시대 한국의 룽따이자 불교 이모티콘으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이 불교목판화가 가야할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주수완 우석대 조교수 indijoo@hanmail.net

 

[1554호 / 2020년 9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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