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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제와 차별금지법

  • 데스크칼럼
  • 입력 2020.09.25 21:26
  • 수정 2020.09.28 09:02
  • 호수 1555
  • 댓글 8

1~2세기 편찬된 경전에 등장
최하층 천민에서 아라한으로
세상에 차별 받을 존재 없어

법보신문이 얼마 전 불교계 오피니언을 대상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관련 설문을 실시했다. 그 결과 전체 응답자의 81.9%가 찬성을 표명했고, 반대는 3.6%에 그쳤다. 이는 불교계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적극 지지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그 이유로는 ‘불교의 평등정신에 부합한다’가 가장 많았고, ‘현대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두 번째였다. 두 답변 모두 뭇 존재는 평등하고 현대사회는 평등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통했다.

불교는 세상의 어떤 종교와 철학보다 평등을 중시한다. 이 같은 내용은 수많은 불경과 논서들에서 찾을 수 있지만 마명 스님의 ‘대장엄론경’이 대표적이다. 1~2세기경 인도 중부에서 활동했던 마명 스님은 ‘불소행찬’ ‘대승기신론’의 저자로 불교사에 지대한 영향을 준 논사다. 스님이 편찬한 ‘대장엄론경’ 중 니제(尼提)의 이야기는 190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평등사상의 성전이 되기에 충분하다. 내용은 길지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이 제자들과 코살라국의 사위성에 들어갔을 때였다. 똥을 치우는 최하층 천민 니제도 부처님이 성안에 오셨음을 알았다. 똥지게를 짊어진 니제는 사람들이 부처님께 몰려드는 것을 보고 ‘이 몸으로 어찌 청정하신 부처님을 뵙겠냐’고 생각해 부처님을 피해 다른 거리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거리 한복판에 부처님이 있었다. 니제는 도망치듯 다른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놀랍게도 이번엔 부처님이 바로 앞에 서계셨다. 깜짝 놀란 니제는 뒷걸음치다가 똥지게를 벽에 부딪쳤다. 똥물이 흘러 자신의 옷을 적셨다. 니제는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였다. 부처님이 니제 곁에 다가와 말했다.

“니제여, 내 일부러 그대를 찾아 이곳에 왔는데 어찌 피하려 하오. 그대의 마음에는 선한 법이 있어 수승하고도 미묘한 향이 나니 스스로 비천하게 여기지 마오.”

니제는 감격했다. 왕들도 경배하는 부처님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말을 건네고 있었다. 부처님은 니제의 선한 인연이 무루 익었음을 알고 출가를 권했다. 니제는 환희심이 솟았으나 자신이 천민보다 못한 존재였음을 알았다. 니제는 “한없이 미천한 제가 어찌 감히 출가를 꿈꾸겠습니까?” 그러자 부처님은 니제를 위해 그 유명한 평등법문을 설했다.

“나는 어진 왕들만 아니라 천민들도 제도하며, 나는 큰 부자들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도 제도하며, 지혜가 있는 이들만 아니라 지혜가 없는 이들도 제도하며, 나는 욕심이 적은 사람들만 아니라 탐욕스런 이들도 제도하며, 나는 선한 사람만 아니라 극악한 살인자도 제도하오. 나는 남자만 아니라 여자를 위해 법을 설하며, 나는 나이든 장로만 아니라 7살 아이를 위해 법을 설하며, 나는 술을 끊은 사람만 아니라 술에 취한 이를 위해 법을 설하며, 나는 어진 덕을 지닌 사람만 아니라 삿된 소견의 사람을 위해 법을 설하며, 나는 정숙한 귀부인만 아니라 사창가 여인을 위해서도 차별 없이 법을 설하오.”

진리 앞에 어떤 차별도 있을 수 없으며 누구든 정진해 최상의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위대한 선언이었다. 니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출가했고 곧 아라한이 되었다. 니제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똥지게꾼 니제가 비구가 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어찌 저런 비루한 자가 출가를 할 수 있느냐는 거였다. 장자와 바라문들이 곳곳에서 성토했고 파사익왕에게도 전해졌다. 왕은 신하들에게 부처님을 직접 뵙고 그 하천한 자의 출가를 취소할 것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왕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기원정사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한 비구가 널찍한 바위에 앉아 가사를 꿰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기품 있고 성스러웠던지 왕은 크게 감동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왕이 부처님을 만났을 때 그 비구를 찬탄하며 누구인지 물었다.

편집국장
편집국장

부처님은 그가 예전의 니제라고 했다. 왕은 너무 놀라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왕은 스스로를 책망하며 말했다. “내 어쩌자고 이런 대덕을 비웃고 헐뜯었던가.” 부처님은 왕에게 “세상 누구라도 청정해질 수 있으며 우리는 출신과 태어남은 따지지 않고 지혜를 봅니다”라고 말했다. 왕이 부처님과 니제 비구의 발에 존경의 예를 올리고 사위성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고대 계급사회에서 최고 권력자인 왕이 인간 취급도 못 받던 천민 출신 비구에게 절했다는 것도 반전이자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차별은 상처를 남기고 공동체를 병들게 한다. 차별 받아도 괜찮은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차별을 정당화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지독한 치심(癡心)에 불과하다.

mitra@beopbo.com

[1555호 / 2020년 9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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