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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 과정 투명성이 공정함 토대

최근 우리 사회에 공정(公正)이란 말이 부쩍 많이 등장하고 있고, 이 말을 둘러싼 논란도 어지럽게 전개되고 있다. “도가 사라지니 도에 대한 말이 넘쳐난다”고 하는 노자의 말이 아프게 느껴진다. 몇 해 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었다. 한동안 나는 이처럼 이해하기 어렵고 쉽게 재미를 느낄 수도 없는 책이 어떻게 많이 팔리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야 현실에서 정의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니까 정의라는 말도 그립고 그것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 더 강해진 결과라 이해하게 되었다.

공정이란 말에는 치우치지 않고 고르다(공평)는 뜻과 올바르다(정의)는 두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다. 공평하다는 것은 일방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한쪽의 입장에서 한쪽의 관점으로 보고 한쪽의 이익만을 꾀하지 않는 것이 공평함이다. 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도 누구에게는 엄격하고 또 누구에게는 느슨하게 하는 등 내로남불식으로 하지 않는 것이 공평한 것이다. 올바르다는 것은 이치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뜻한다. 무엇이 옳으냐를 누가 어떻게 정하는가가 항상 문제가 된다.

그렇지만 무엇이 옳은가를 정하는 민주사회의 기본적인 원칙은 결정 과정의 민주성과 결론이 국민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가의 여부는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또는 어느 시점에 평가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에 쉽게 판정을 내릴 수 없다. 그러나 결정 과정의 민주성은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확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법이나 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공정성에 관한 시비를 가장 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결정 과정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법이나 정책을 둘러싼 시비가 그치지 않는 것은 누가 어떤 근거로 어떻게 그것을 정했는지도 모르게 제시되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의 장래나 국민의 삶과 크게 연관된 중대한 문제를 정할 때마저도 이처럼 투명하지 않게 비민주적으로 결정하니 시행착오와 갈등이 심각하게 되풀이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원자로 건설과 중단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을 때 그것을 공론화하고 다수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에 결정을 맡김으로써 시비를 종식한 좋은 사례가 있다. 완전히 다른 견해를 가진 전문가들이 각자 충분히 자기주장의 근거와 정당함을 주장하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토론하고 생각하게 한 다음 판정하게 하니 결론의 옳고 그름에 관해서 더 이상의 시비와 논란이 일지 않는 것이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도시에 종합경기장을 짓는 것과 같은 문제를 가지고도 그것을 공론화해서 1년 가까이 논의를 거친 다음 신중하게 결론을 내린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4대 강 건설이나 탈원전 정책과 같은 엄청난 문제를 결정하는데도 그 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민주성이 결여된 채로 결정이 감행되고 있으니, 이로 인한 갈등과 부작용이 실로 막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말로 공정한 정책을 펼쳐 국가와 국민을 위하고자 한다면 근거를 알 수 없는 결론을 가지고 국가나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고 설득하거나 강요하기보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길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한 사람 또는 몇 사람이 밀실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대변하는 다수가 공론을 통해서 투명하게 결정하도록 함으로써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 낸다. 또 법치주의는 한 사람이 지식이나 덕에 의해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시스템에 의해서 통치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으로 질서를 확보한다. 국가와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들을 결정할 때 법과 민주의 원칙에 따라 시스템을 투명하게 작동함으로써 말대로의 공정함이 실제로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실현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정영근 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yunjai@seoultech.ac.kr

 

[1555호 / 2020년 9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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