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장률의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
41. 장률의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
  • 문학산 교수
  • 승인 2020.09.29 17:43
  • 호수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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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여행은 자기성찰 위한 도시 속 만행

윤연과 송현, 아무런 준비 없이 술 취해 군산 여행 결정
이방인에 친절한 환대는 낯선 장소의 배타적 이질감 해소
대승심 지향한 송현의 108배 욕망에 핀 한 송이 꽃 같아
장률의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108배를 통해 자신과의 만남 보여준 불교영화. 사진은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스틸컷.

여행은 이곳이 아닌 저곳을 향한 동경이다. 윤영(박해일)과 송현(문소리)은 서울의 노래방에서 취중에 군산 여행을 결정한다. 시를 쓰는 윤영과 조선족 인권 보호를 위한 시위에 참여하던 송현이 만나서 특별한 목적의식도, 준비도 없이 불현듯 여행을 떠난다. 단지 군산은 윤영의 모친 고향이라는 점이 여행의 이유이다. 고향은 어머니의 다른 이름이며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이들은 고향의 자력을 더 강하게 느낀다. 이름도 애매하고 “뭐든 하다 말거나 절반만 하는 윤영”은 삶의 뿌리가 허약하며 그의 심리적 공백은 모친의 부재와 연관된다. 윤영은 서울에서 부친과 함께 살지만 조선족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해병전우회 사무실에 출근하는 부친과 조선족 인권 보호를 위해 시위하는 현장에 서 있는 윤영의 자리만큼 거리가 멀다. 윤영은 부친과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지만 친밀감의 부재로 낯선 둥지에 서식하는 뻐꾸기와 같다.

군산은 윤영에게 어머니의 고향이며 송현에게 낯선 여행지이자 민박집 이사장(정진영)에게는 돌아가고 싶은 고국이고 명궁 칼국수 주인 백화(문숙)에게는 마음을 붙이고 사는 고향이다.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군산은 정서적 둥지이며 정신적 고향이다. 장률 감독은 군산에서 부드러운 장소의 정서를 느꼈다고 한다. 감독에게 군산은 “목포보다 유연한 분위기를 지닌 곳으로 느꼈기 때문에 이 분위기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영화장르는 연애물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군산으로 여행 온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담을 영화의 최적의 장소였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군산이라는 장소가 인물을 받아들이는 환대와 등장인물 사이의 호감이라는 감정을 담아낸 로드무비이자 멜로영화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송현이 서울의 중국집 연래춘 홀에서 108배를 올리고 군산의 민박집에서 이사장에게 108배 방법을 교육하고 동국사 법당에서 예불을 드리는 불교영화의 색채도 엿보인다. 송현의 108배는 군산 에피소드와 서울 에피소드를 서로 마주하게 하는 데칼코마니 형식으로 누빔점을 만든다. 송현의 여행은 서울의 거리에서 중국집을 경유해 군산의 민박집과 동국사에 이르는 도시 속의 만행에 가깝다는 사실을 108배를 통해 우회적으로 암시한다.

첫 장면에서 윤영과 송현은 군산 터미널에 도착하여 관광 안내도를 바라본다. 관광안내도를 바라보는 것은 준비되지 않은 여행이자 이방인의 서먹서먹함을 드러낸다. 그들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칼국수 집 명궁으로 향하며 이곳에서 전라도 반찬에 감탄하면서 식사를 한다. 한 프레임 속에서 두 사람은 식사를 하고 거울 속에 명궁 주인 백화가 배치되어 있다. 장률 감독은 거울 속에 인물을 담아내는 프레임 배치를 선호하지만 이 장면에서 군산이라는 장소에 방문한 이들은 이방인이면서 군산이라는 한 프레임에 소속된 유사 가족임을 암시한다. 윤영과 송현은 자신의 일가친척이 군산에 부재하지만 칼국수집 명궁의 백화라는 ‘이모님’(식당 주인에게 부르는 통상적인 의미에 유사 가족의 의미가 가미됨)과 아버지 같은 민박집 주인인 이사장의 환대를 받는다. 낯선 장소에서 이들의 이방인에 대한 친절한 환대는 낯선 장소가 야기하는 배타적 이질감 해소에 일조한다.

백화는 민박집을 소개하고 그들은 월명터널을 지나 민박집으로 향한다. 터널을 지나는 것은 새로운 장소로 진입하는 입사의식에 가깝다. 민박집에서 이사장은 그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투숙객으로 받아들인다. 송현은 이사장에게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말로 호감을 표시한다. ‘어디서 본 적이 있다’는 발언은 장률의 작품에서 이성에 대한 관심의 표현으로 반복된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민박집에서 윤영은 송현의 쇄골을 만진다. 이는 ‘경주’에서 신민아가 자신의 집 소파에 앉아서 박해일의 귀를 만지는 행위의 변주이다.

그들은 거리에서 송현을 조선족 순이로 오해한 행인을 만난다. 송현은 동국사의 법당에서 예불을 올린다. 송현의 예불장면의 배경음악은 인도 음악도, 한국음악도 아닌 영화 속 현장음으로 연주된 피아노곡이다. 예불과 피아노곡은 대나무 숲에 들어간 윤영의 행위만큼 인과성과 거리가 먼 불일치된 배치이다. 군산의 거리 풍경은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고, 평화로운 사찰의 정원에 전쟁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소녀상이 건립되어 불균질적이다.

장소의 불균질성은 서울의 중국집 연래춘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연래춘에서 술에 취한 송현은 식당 홀 바닥에서 108배를 올리고 윤영은 송현의 요청으로 거위 춤을 춘다. 거위춤을 추면서 읊조린 시가 거위 노래인 ‘영아(咏鵝)’이다. “거위, 거위, 거위야(鵝 鵝 鵝) 굽은 목으로 하늘을 향해 노래해 (曲項向天歌)”라는 거위의 노래와 108배는 연래춘을 공연장이자 성소로 전환시킨다. 연래춘에서 송현의 108배는 성속의 경계를 지우고 음식점을 예술과 성스러운 장소로 변화시킨다. 그의 군산행은 불교영화의 시각에서 자기 성찰과 자신 완성을 위한 만행과 근접한다. 송현은 민박집과 중국집을 예술과 종교의 장소로 변화시키면서 결국 동국사의 법당에 당도한다. 윤영은 군산에서 어머니를 대체하는 송현과의 정서적 일체감을 추구하지만 송현은 성속의 경계가 없는 군산에서 자신과 만남을 갈구한다. 장예모의 ‘영웅’에 대한 월호 스님의 해석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는 큰마음인 대승심”을 송현은 지향한다. 하지만 송현은 아직 세속의 사랑과 번뇌가 여전히 이끼처럼 남아있다. 군산이라는 장소가 고향 같은 환대와 배타적 이질감이 공존하듯이 인물들의 마음도 순수와 욕망이 출렁인다. 송현의 108배는 욕망의 연못과 같은 영화 속에 핀 한 송이 꽃에 가깝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55호 / 2020년 9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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