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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작자미상 ‘감모여재도’

기자명 손태호

가족제사 참석치 못할 때 사용했던 간이 제사상

과거 제사는 친척간 공동체 확인하는 소리 없는 교육현장
사모하는 마음 지극하면 실제 나타난다는 뜻의 ‘감모여재’
위패 자리에 진짜 위패 붙여 실제 제사상 대신 사용키도

작가미상 ‘감모여재도’, 지본채색, 103×85cm, 19세기, 일본민예관.
작가미상 ‘감모여재도’, 지본채색, 103×85cm, 19세기, 일본민예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이 벌써 코앞입니다. 항상 이맘때면 고향에 내려갈 교통편도 준비해야하고 어르신들 선물 준비와 벌초 등으로 마음이 바쁜 시기입니다. 추석은 우리 민족 명절 중 가장 큰 행사입니다. 그러나 올해 명절 풍경은 예전과는 조금 다를 듯합니다. 방역당국과 언론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추석 연휴 때 여러 사람이 모이는 행사를 자제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명절에 친척이 모이는 것도, 제사 참석도 자제하라는 의미입니다. 현재 방역당국 입장에서는 아슬아슬하게 방역 전선을 유지하고 있는데 명절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크게 확산될까 걱정하여 모임 자제를 권고하는 것은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대다수의 국민들도 그런 조치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스갯소리로 ‘조상님은 어차피 비대면, 코로나 걸리면 조상님 대면’ ‘불효자는 옵니다’라는 말들이 퍼지며 웃음을 짓게 합니다. 저희 집도 제사는 지방에 계신 종손 형님댁에서 조촐히 지내고 저희는 내려가지 않기로 했지만, 한편으로 이런 상황이 조금은 아쉽기도 합니다. 흩어져 살고 있는 친척들이 명절에 모여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를 나누며 부모형제의 정을 나누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추석에는 가족 모임도, 제사 참석도 못한다하니 이런 상황에 딱 맞는 민화 한 점이 떠올랐습니다. 일명 ‘사당도’라고 부르는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입니다. 두루마리 형태의 그림으로 커다란 팔작지붕을 강조한 건물이 중앙에 있고 가운데 문은 분합문을 표현하려는 듯 위로 들려있습니다. 안쪽에는 병풍이 있고 그 가운데 위패가 놓여 있습니다. 건물 앞에는 상이 차려져 있는데 제기와 초, 음식이 놓여 있습니다. 위패 앞에는 제사에 필요한 과일이나 제사도구인 향, 향합, 촛대, 술잔, 꽃병으로 제사상을 배치하였으며 사당 주변에는 소나무, 꽃, 새, 평화롭게 노니는 물고기 등으로 장식하기도 합니다. 양 옆으로는 난 그림이 그려진 고급스런 화병에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꽃이 만발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누가 봐도 제사상의 모습으로 이렇게 제사를 올리는 건물이니 이 건물은 사당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도 될 것입니다. ‘사당도’에서 사당 문 표현은 위 그림처럼 분합문도 있지만 휘장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사당 뒤로는 보통 성벽이나 담이 그려져 있습니다. 벽 뒤로는 큰 나무가 있어 사당 건물을 호위하듯이 펼쳐져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사당 제사의 모습을 표현한 것 같은 이런 민화를 ‘사당도’ 또는 ‘감모여재도’라 부르며 이때 나무는 소나무나 대나무만 표현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민화는 단순히 감상용 그림이 아닙니다. 실제 제사를 대신한 그림이었습니다. ‘감모여재도’는 보통 기와집으로 표현된 사당 중앙에 빈 위패가 그려져 있는데 그 위에 진짜 위패를 붙여 놓고 사용했습니다. ‘감모여재도’에 등장하는 꽃은 대부분 연꽃과 모란인데 연꽃은 번창을, 모란은 부귀를 상징합니다. 제사상에는 수박, 석류, 유자, 가지, 포도 등이 있습니다. 실제 제사상에 올리는 사과나 배 등은 없습니다. 이렇게 과일이 다른 이유는 ‘감모여재도’의 과일들은 과일들이 가지고 있는 길상적인 의미 때문에 그려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자손번창을 바라는 간곡한 마음으로 다산을 상징하는 씨 많은 과일들을 그려놓은 것이 특징입니다.

조선시대 제사는 조상의 음덕을 빌어 우리를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제사를 통해 부모 사후에 자칫 소홀해질 수 있는 형제들과 친척간의 공동체를 확인하고 그 일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여야 한다는 소리 없는 교육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중요한 제사인데 집안에 사당이 없거나, 제사를 지내지 못할 형편이거나, 멀리 떨어져 제사에 참여할 수 없을 때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감모여재도’는 조선시대 제사에 참석해야하지만 어떤 사정으로 제사에 참석하지 못하거나 제사상을 차리지 못할 때 사용했던 간이식 제사상이자 이동식 사당입니다.

이 ‘감모여재도’는 우리 민족이 얼마나 조상, 특히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끼니조차 제대로 먹지 못할 만큼 가난하여 번듯한 제사상을 마련하지 못해도 정성스레 목욕재계하고 ‘감모여재도’ 앞에서 물 한잔 따라놓고 엎드려 절하며 부모님을 그리워했을 것입니다. 그림으로나마 대감집 사당처럼 번듯한 곳에서 제사상 가득 음식을 차려놓고 부모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애틋한 마음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가슴을 더욱 뭉클하게 하는 것은 ‘감모여재(感慕餘在)’가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그의 모습이 실제 나타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음속 깊이 사모한다는 뜻의 감모(感慕), 앞에 나타난다는 뜻의 여재(餘在)가 합하여 누군가를 동경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뼈에 사무치도록 간절하다면 그 마음이 하늘을 움직여 앞에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전해지고 있는 ‘감모여재도’는 누군가의 간절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그림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볼수록 더 감동스럽습니다.

삶의 먼 길을 걸어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인연들과 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합니다. 그중에서 한 가족으로 만난 인연의 소중함은 어찌 말로 다 표현 할 수 있겠습니까? 꼭 부모형제가 아니라도 삶에서 그리운 사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죽어서가 아니라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림’은 ‘그리움’에서 생겨난 낱말입니다.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마음을 온 정성으로 기원한다면 그리워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감모여재도’. 가슴 시리게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오늘 밤 ‘감모여재도’ 앞에서 기원해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정말 그분이 올지도 모릅니다.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thson68@hanmail.net

 

[1555호 / 2020년 9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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