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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찰 보수 때 ‘자부담 20%’ 법적근거 없었다

  • 교계
  • 입력 2020.10.08 12:43
  • 수정 2020.10.08 20:25
  • 호수 1556
  • 댓글 1

1997년 국고지원 반영 때 자의적으로 정한 요율
관행처럼 굳어져 템플스테이·방재 사업에도 적용
과도한 자부담, 전통사찰을 옥죄는 또 다른 규제
조계종 “국고 반영 법적 명문화·자부담 인하 요구”

민족문화유산의 보고이자 국민문화 복지에 기여하는 준공공시설인 전통사찰이 보수정비 사업 때마다 과도한 자부담으로 큰 부담을 겪고 있다. 사진은 봉정사 만세루
민족문화유산의 보고이자 국민문화 복지에 기여하는 준공공시설인 전통사찰이 보수정비 사업 때마다 과도한 자부담으로 큰 부담을 겪고 있다. 사진은 봉정사 만세루

전통사찰이 전각 등 시설물을 보수정비하기 위해 국고를 지원받는 경우 전체 사업비 가운데 20%를 자부담하도록 한 정부의 방침이 법령에 없는 자의적 판단에 따라 정해진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전통사찰은 낡은 전각을 보수하거나 단청 등을 할 때마다 법적인 근거도 미약한 자부담 20%를 의무적으로 납부해왔던 셈이다.

더구나 총사업비의 20%는 전통사찰이 책임지기에는 부담스러운 금액으로 재정적으로 열악한 일부 사찰 주지스님들은 과도한 자부담으로 보수정비를 포기하거나 편법으로 자부담을 해결하려다 범법자로 내몰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 때문에 조계종은 최근 정부 측에 전통사찰 보수정비 사업과 관련해 사찰의 자부담을 없애거나 크게 완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조계종 등에 따르면 정부가 전통사찰 보수정비 사업에 국고 및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반영한 것은 1997년 전통사찰보존법이 개정되면서부터다. 국회는 전통사찰보존법을 개정하며 국가 또는 지자체가 전통사찰의 보존·관리를 위해 필요한 경비를 보조할 수 있도록 했다. 전통사찰은 역사적 의의와 문화적 가치를 지닌 민족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이를 보존·관리하는 데 국가와 지자체가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 법에 따라 정부는 ‘보조금관리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전통사찰의 보수정비 사업에 국고를 지원하도록 했다.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은 “국가 외의 자가 수행하는 사업에 대하여 국가가 재정적 원조를 위해 지원하는 보조금 기준”을 정한 것으로 대통령령을 통해 그 기준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대통령령에서 120여개의 사업에 대한 ‘보조금지급 대상 사업 범위와 기준 보조율’을 정하면서 전통사찰 보수정비에 대한 지급 기준을 따로 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반여권 발급’ ‘가축분뇨처리시설 지원’ ‘농기계임대사업’ ‘풋거름 작물 종자대금’ ‘전국체육대회 운영’ ‘사회적 기업 육성’ ‘문화시설 확충 및 운영’ ‘사방사업’ 등 세세한 보조금 사업에 대한 지급 기준을 마련하면서도 국민 문화 복지에 기여하는 준공공 시설인 전통사찰 보수정비 사업에 관한 기준은 마련하지 않았다.

다만 정부는 “그 밖에 국가와 지자체 상호 간에 이해관계가 있는 보조금 교부가 필요한 사업의 경우 기획재정부장관이 수립한 예산안 편성지침에 반영”하도록 했다. 결국 전통사찰 보수정비 사업에 관한 국고보조금 지급 기준율은 기획재정부가 1997년 임의대로 정한 총사업비 40%로 정해졌다. 이에 따라 전통사찰 보수정비 사업의 총사업비는 국고 40%, 지자체 40%, 사찰 자부담 20% 요율로 확정됐다.

명확한 법적 근거도 없이 마련된 것이지만 ‘40:40:20(국고:지자체예산:사찰 자부담)’의 전통사찰 보수정비 사업 국고 반영 기준은 이후 관행처럼 굳어져 전통사찰의 다른 국고보조금 지원 사업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정부가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민족문화유산을 통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추진된 ‘템플스테이 시설 건립사업’과 전통사찰의 방화나 문화재 도난을 예방하기 위해 2008년부터 10여년 간 진행된 ‘전통사찰 방재시스템 구축사업’에도 ‘40:40:20’기준이 반영됐다.

그러나 이 같은 과도한 자부담 기준은 각종 규제법령과 함께 전통사찰을 옥죄는 또 다른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전통사찰 보수정비 사업의 대다수는 목조건축물에 대한 것으로, 상대적으로 총사업비가 높게 책정된다. 총사업비가 커질수록 사찰의 자부담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사찰의 자부담을 선납부하지 않으면 국고 및 지자체 예산이 지원되지 않는다.

이렇다보니 재정적으로 열악한 일부 전통사찰 주지스님들은 공사업자에게 보수정비 사업을 맡기는 대신 자부담을 대납하도록 하는 편법을 동원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국고보조금이 스님들을 범죄자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는 “일부 사찰을 제외하고 대다수 전통사찰의 예산규모가 현저히 낮아 20%의 자부담은 사찰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며 “전통사찰은 민족문화 유산의 보고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관광자원이라는 점에서 이를 보존·관리하는 책임은 우선적으로 국가에 있다. 명확한 법적 근거도 없이 전통사찰에 과도한 자부담을 요구하는 것은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종은 현재 정부 측에 전통사찰 보수정비 사업과 관련한 자부담을 없애거나, 당장 여의치 않다면 “보조금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해 국고 보조율을 50%로 명문화하고, 사찰의 자부담을 10%로 낮추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556호 / 2020년 10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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