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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 법련사 주지 진명 스님

“예술인들의 열정 쏟아부을 문화 공간 조성하는 게 꿈이자 원력!”

아버지가 가져 온 전축
깊은 음악세계로 안내

중학교 때 ‘통증’ 극대
거의매일 링거주사 꽂아

성악가 꿈 접고 ‘사색’
운문사로 출가 단행

클래식 방송 진행 13년
선율에 실은 법담 ‘인기’

무형문화재 가치 통찰
연등회 국가지정 공로

기아해소·환경보호 묘책
발우공양 가정정착 기대

​​​​​​​말씨 하나도 곱게 하는
보살의 삶 다져야 행복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좋아한다”는 진명 스님은 “최근에 즐겨 듣는 건 트로트(trot)”라고 했다. 사진제공=박상훈 작가진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을 비롯한 자신의 철학서가 수백 년 후에나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 내다보았던 니체는 당대에서만큼은 음악가로 알려지기를 바랐다. 가곡, 교향곡, 합창곡 등 70여 곡의 작품을 쓴 그는 말년에 이르러 정신병원에 구금되고도 매일 식당에 놓인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바그너, 하이든, 모차르트, 쇼팽, 비제의 곡들을 연주한 피아니스트였다. 음악사의 새 지평을 연 명곡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그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에 길이 빛나는 명언을 남겼다.

“음악 없는 삶은 오류다.”

진명 스님은 클래식이 품은 음의 흐름을 잔잔히 풀어내 불자들의 귓가로 전해왔다. BBS불교방송 ‘차 한 잔의 선율’을 8년 동안 진행했던 진명 스님은 현재 BTN 불교TV 라디오 ‘아름다운 세상 진명입니다’를 5년째 맡고 있다. 명료하면서도 정감 넘치는 진명 스님 특유의 목소리에 얹어진 메시지는 이런저런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따듯하게 감싸주기에 충분하다. 성악·기악·교향곡의 조화로운 안배가 돋보이는 탁월한 선곡은 클래식 마니아들의 심금까지 울리고 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빌려준 돈 대신 받은 큰 전축을 안고 왔다. 가만 보니 LP판도 여러 장 있었다. 남진, 나훈아, 이미자, 김세라나… 검은 판에 둥글게 난 하얀 길이 턴테이블의 바늘 아래를 지나자 그들의 노래가 들려왔는데 참 좋았더랬다. 그 가사, 그 박자, 그 음정 나름 좇아가다 보니 어느 새 가을이면 열리는 지역 콩쿠르 무대의 ‘가수’로 초청됐다. 클래식을 접하며 성악가 꿈을 꾸었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이내 접어야 했다.

중학교 때 심하게 아팠다. 교복 세 번째 단추 부근의 배가 어딘가에 닿으면 기절할 정도였다. 간이 부어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링거 주사를 꽂아야 했는데 나중에는 혈관도 찾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먼 산을 보며 상념에 잠기곤 했다. ‘저 바위는 언제부터 있었을까? 난 어디서 왔지? 친구들보다 빨리 죽음에 이를 텐데. 죽으면 어디로 가지?’

다행스럽게도 어느 약이 들었는지 호전을 보였다. 그 이후 누가 권한 건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불서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사촌 동생으로부터 부처님 일대기가 담긴 책 한 권을 받았는데, 마지막 장을 덮으며 20대의 여자가 선택해야 할 게 ‘결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출가의 길이 있구나!’

1남7녀의 맏이가 출가한다는 말에 아버지는 결사반대였다. “저, 머리 깎으면 예쁠 것 같지 않아요?” “출가하면 큰스님 될 자신 있는데!” 아버지 마음 조금이라도 누그러트리는데 2년이 걸렸다.

시흥 법련사 전경.

세속의 짐 모두 내던지고 산문에 들어섰지만 음악만은 꼭 안고 있었다. 방학이면 ‘서양음악사’를 펼쳤고, 산을 내려가면 바흐, 슈만, 말러의 숨결이 배인 카세트테이프를 바랑에 넣어 돌아왔다. 학인이 소지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사물함 점검 나올라 싶으면 산책로 계곡의 바위나 버섯 키우는 나무 아래에 숨기곤 했는데, 비 한줄기라도 내리면 그것들은 완전히 망가졌고 어느 바위에 두었는지 헷갈려 못 찾는 게 다반사였다.

한여름 폭우가 지나간 직후의 오후 2시. 학인들의 독경소리가 운문사 금당을 꽉 채웠다. 처마 끝에서 뜰로 직하한 낙숫물이 제 소리를 냈다.

툭! 툭! 툭!

맑고 또렷한 소리는 몸 속 60조의 세포들을 단박에 깨워내는 듯했다. 그 순간, 80여명의 독경소리는 사라지고 금당과 비로전 사이를 가로 지르는 바람소리와 계곡을 굽이쳐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도량에 들어차던 운무가 산허리를 휘돌며 산사와 함께 빚어내는 풍경은 장관이었다.

‘이보다 더 장엄한 오케스트라 라이브가 있을까!’

자연이 내는 날것 그대로의 소리 자체가 선율이었음을 직감하고 보니 무심코 지나쳤던 새 소리, 풀벌레 소리, 다람쥐 뛰는 소리, 낙엽 떨어지는 소리, 눈 내리는 소리가 신비롭게 들려왔다. 그제야 모차르트, 베토벤, 차이코프스키를 잊을 수 있었다. 클래식을 향해 다시 귀를 연 건 4년여가 지난 후 동국대 선학과에 입학해 서양사를 공부하면서다.

‘맑고 향기롭게’ 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진명 스님은 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상생의 길을 걷는 단체들을 소개하는 대담프로를 맡으며 불교방송과 첫 인연을 맺었고 1997년 9월1일 처음으로 ‘차 한 잔의 선율’ 진행을 맡았다. 첫 방송, 얼마나 떨렸을까? 만면에 미소를 보이며 그날을 회고했다.

“미리 준비한 오프닝 원고만 읽어 내면 다음은 순조롭게 흘러갈 것이라 확신하고 생방송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방송 직전부터 저도 모르게 떨고 있었나 봅니다. 손에 들린 원고가 수차례에 걸쳐 마이크에 부딪치는 소리가 그대로 전파를 탔습니다.”

마땅히 머물 곳이 없었기에 서울의 한 사찰에서 법회를 보아주는 조건으로 짐을 풀었다. 두 달 후, ‘IMF 외환위기’가 덮쳤다. 교계 방송국이라 해서 더 나을 게 없었다. 출연료는 고사하고 원고도 써야 했다. 음악분야는 담당 피디가 쓰고, 일상의 원고는 직접 집필했다. 소재 찾기부터 만만치 않았을 터다.

“방송 끝나고 나면 다음 방송 시작 전까지 쉴 틈이 없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전해야 할지도 막막한데 경제난에 힘겨워하고 있을 청취자들을 생각하면 말 한마디도 허투루 할 수 없었습니다. 고민이 눈과 귀도 열어주는가 봅니다. 그날의 날씨, 거리풍경, 광화문글판이 눈에 들어오고, 지인이 전해준 짧은 미담도 뇌리에 쏙쏙 박히기 시작했습니다.”

진명 스님에게 라디오 부스는 전법도량이다.

청취자들과 함께 ‘IMF 한파’를 넘어선 진명 스님은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차 한 잔의 선율’을 이끌었다. 클래식이 선사하는 선물 하나를 전해달라 청했다.

“우리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겁니다. 어떤 선율은 명상의 세계로도 안내합니다. 그러나 클래식만이 이러한 선물을 전해 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가요, 재즈, 블루스도 멋진 멜로디를 전하고 있습니다.”

연등회가 201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장본인이 진명 스님이다. 연등행렬이 일제영향이라는 이유로 ‘지정보류’의 쓴 맛을 본 조계종은 남모를 ‘내상’을 입고 있었다. 문화부장 소임을 맡은 진명 스님은 연등회의 역사와 가치를 세심하고도 정확하게 담은 자료를 심의에 앞서 관련 문화재위원들에게 일일이 전했다. 그 정성이 결국 통했다. 연등회는 올해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기다리고 있다.

진명 스님은 수륙재, 다비, 불복장 등 조계종이 소유하고 있는 무형문화재 전수소사에도 착수했다. 그리고 각각의 문화재에 대한 자료를 축적하기 시작했는데 이 작업은 진명 스님이 총무원을 떠난 후에도 지속됐다. 삼화사·진관사 국행수륙대재는 2013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25·126호, 불복장은 2019년 제139호로 지정됐다. 이러한 업적의 토대는 일찌감치 무형문화재의 진가를 통찰한 진명 스님이 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명 스님은 깊이 간직해 온 ‘소망’ 하나를 전했다.

“전 세계적으로 매일 8억명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매년 낭비되는 음식물 쓰레기를 돈으로 환산하면 약 2조9000억 파운드, 원화로 4325조8720억원입니다. 현재 기아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두 배 이상 먹여 살릴 수 있는 규모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음식물쓰레기도 하루 평균 1만5600톤이라고 하니 1년에 570만톤이 버려지는 셈입니다.”

진명 스님은 음식물 쓰레기를 줄임과 동시에 기아 해소에도 힘을 보탤 묘책이 우리 불교 품안에 있다고 강조했다.

“음식이 내 앞에 오기까지의 노고와 정성을 기억하기에 한 톨의 밥알도 남기지 않는 발우공양입니다. 저는 이것이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감사의 마음과 절제미가 농축된 이 문화가 승가를 넘어 일반 가정으로 확대된다면 시너지 효과는 엄청날 것입니다. 환경운동, 저는 ‘음식물 쓰레기 줄이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발우공양이 우리 가정, 나아가 세계의 가정에 전해지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여건이 형성된다면 언젠가 문화재단을 설립하겠다는 원력도 내심 세웠다고 했다.

“아담한 빌딩 한 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불교를 소재로 한 작품에 심혈을 기울이는 예인들이 마음껏 노닐 수 있는 건물로 활용하려 합니다. 곡 쓰고, 시 짓고, 소설 구상하고, 악기 연주하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돈 걱정’ 안 하고 작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그런 문화공간을 내어주고 싶습니다. 언제든 전시·공연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는 건 기본이겠지요. 오!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오릅니다.”

아름다운 선율과 사연을 전하는 섬세함과 강단 있는 행정 추진력, 그리고 내 곁의 사람을 챙기려는 그 마음은 어디서 비롯됐는지 궁금했는데 출가인연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사미니계 받고 운문사 사리암에서 머무를 때 아버지가 찾아왔다. 대구에서 친구 딸의 결혼식 주례를 서 주고 걸음 했던 것이다. 하필 그때 누더기 승복을 입고 있었다.

“갑자기 어쩐 일이세요. 여기까지 어찌 올라오셨어요!”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소박한 절집 저녁상이라도 내어드렸지만 물끄러미 보시고는 젓가락도 들지 않고 일어섰다. 해가 서산으로 완전히 기울 즈음 아버지는 묵묵히 산을 내려갔다. 눈길만 잠시 오고갔을 뿐 대화는 없었다. 훗날 할머니로부터 들었다.

“내 아들, 6·25 난리 통에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렸어. 스님 만나고 돌아오더니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3일 밤낮 동안 모로 누워서 울었어!”

그때, 온몸의 뼈마디에 새겼다.

‘중노릇 잘해야 한다!’

방송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궁금했다?

“도량 안에서는 그토록 상냥하시던 불자님들이 절에서 벗어난 순간 싸우십니다. 그러고 보면 절에 들어선 순간 ‘보살’이시고, 일주문 나선 순간 ‘중생’이십니다. 딱 50%씩 반반입니다. 더도 말고 1%만 보살심에 무게를 두셨으면 합니다. 말씨 하나, 행동 하나도 불자답게 하려는 작은 노력이 1%를 확보합니다. 51%의 보살로 일생을 산다면 행복한 삶을 영위하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음표와 음표 사이에 법음을 전하는 진명 스님이 제일 좋아하는 음악가는 누구일까? 아니, 지금 자주 듣는 음악은 무엇일까?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 좋습니다. 그러나 요즘 즐겨 듣는 건 트로트(trot)입니다.”

법련사 곁에 핀 꽃무릇이 자태를 더하는 10월이다. 라흐마니노프가 그랬다. ‘음악은 인생을 위해 충분하지만, 인생은 음악을 위해 충분하지 않다’고. 진명 스님의 전하는 음악이 듣고 싶다면 ‘아름다운 세상…’의 볼륨을 높여 보시라.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진명 스님은
1982년 운문사에서 정심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동국대 불교대학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으며,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베이징 만월사 주지를 지낸 스님은 현재 법련사 주지, 동국대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장,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 검찰청인권위원 등을 맡고 있다.

 

[1556호 / 2020년 10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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