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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요시타케 신스케의 ‘보이거나 안 보이거나’

기자명 박사
  • 박사의 서재
  • 입력 2020.10.13 09:55
  • 수정 2020.10.20 17:08
  • 호수 1556
  • 댓글 0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려면

온갖 별 조사한 주인공 시점서
달라도 공감할 부분 있음 제시
자세히 볼 것 권한 부처님처럼
그대로 보고 차별하지 않아야

‘보이거나 안 보이거나’

부처님이 분별하지 않는 지혜를 가르치실 때 염두에 두었던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분별하고 가치 판단하는 인간의 습관은 곧 차별로 이어진다. 자신을 표준으로 삼고 일일이 비교하여 앙상한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서열을 나누는 인간들 때문에 고통은 끊임없이 새로 공급된다. 남을 멸시하건, 자기비하에 빠지건, 칼날의 방향은 달라도 누군가 상처받는다는 것엔 차이가 없다.
 
이 책의 주인공은 온갖 별을 조사하고 다니는 우주비행사다. 그가 도착하는 별마다 독특한 생명체가 살고 있다. 이번에 도착한 별의 주민은 뒤에도 눈이 있어서 앞뒤를 동시에 볼 수 있다. 그들은 주인공이 눈이 두 개 밖에 없어 불편해할 것 같다며 불쌍해한다. “이 사람은 자기 등을 못 보는구나…” “불쌍하니까 등 얘기는 하지 말자.” “우아! 멀쩡히 잘 걷네!” “얘들아, 길을 비켜줘-!”하는 초록색 외계인 모습은 어딘지 익숙하다. 

그는 그동안 다녔던 별에서 만났던 이들을 떠올린다. 그 별에서는 당연했던 것들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다리가 긴 사람의 별에서는 층계를 걷기가 힘들었고, 하늘을 날 수 있는 사람들의 별에서는 안내인을 쫓아가기가 어려웠다. 몸이 흐물흐물한 사람들의 별, 입이 기다란 사람들의 별…. 그러나 아무리 달라도 서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있다. 

눈이 세 개인 주민들의 별에서, 우주비행사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눈이 보이지 않는’ 주민을 만난다. 그는 보이는 사람들과 자신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자신의 일정을 글로 적는 대신 녹음해두고, 밖에서 걸어 다닐 때는 지팡이를 사용하며, 음악처럼 귀를 쓰는 일이나 마사지처럼 손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 자동판매기에서는 뽑기 전에는 뭐가 나올지 알 수 없고, 그릇 모양이 같으면 먹어보기 전에는 무슨 맛인지 알 수 없다. 그는 외계인이지만 사실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를 쓴 이토 아사의 자문을 얻었다. 

저자는 묻는다.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느끼는 방식이 전혀 달라. 그렇다면,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건가?” 그리고 저자는 그보다는 좀 더 미세한 차이를 가진 이들이 보는 세상의 ‘다름’에 주목한다. 키 큰 사람과 키 작은 사람. 친구가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느릿한 사람과 빠른 사람. 얌전한 사람과 활발한 사람. 어른과 아이 등. 그들은 서로 다른 것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본다. 그들만이 볼 수 있는 세계가 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원래 서로 다르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지구에서 살아간다.

특징도, 하는 일도, 세상을 보는 방식도, 해석하는 방식도 다른 사람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같은 점을 갖고 있다. 같은 점을 발견하면 맞장구치고, 다른 점을 발견하면 재미있어하면서 같이 살아간다면 세상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멸시와 혐오의 칼을 겨냥하는 일이 사라진다면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자비경’은 말한다. “빠뜨림 없이 약하거나 강하거나 크거나 작거나 중간이거나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가까이에 있거나 멀리에 있거나 태어났거나 태어날 것이거나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이여. 행복하라. 편안하라. 안락하라.” 친절한 부처님은 우리에게 더 자세히 볼 것을 권한다. 혹시라도 빠뜨리고 무시하는 존재가 생길까봐 염려한다. 다수의 폭력에 소수가 치일까봐, 다수의 결정에 힘없는 이들이 소외될까봐 자상하게 짚어주신다. 그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한다는 면에서는 우리와 다를 것 없음을 상기시킨다. 사람들이 모두 부처님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 그대로 보고 분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면 좋겠지만, 아직 그런 세상은 요원하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지키게 되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목적인 법이.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556호 / 2020년 10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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